한 영혼의 여행 2021년 11월
MBTI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친구와 식사를 하는 도중 옆 테이블에서 잔뜩 흥분한 다른 손님이 MBTI를 찬양하는 목소리를 냈다. 몰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다 맞는다고 보긴 어렵지만, 개념적 틀로만 봤을 때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에너지가 충전된다는 것, 계획적이라는 것 등도 그러했지만 가장 와닿은 부분은 따로 있다. "세상이 멸망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동물들만 대피시킨다"는 거였다. 반려견과 함께 산 지 햇수로 14년이 됐다. 못해준 게 더 많다는 생각에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애틋해지다가도 방을 어질러놓은 녀석을 보면 참을 인을 떠올려야 하는 애증의 관계지만, 사랑하는 막내 동생임은 분명하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보다는 동물을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지만, 단지 에너지를 집에서 충전하는 전형적인 I 유형이다. 몇 파렴치한 사람들이 동물을 학대하거나 그저 상품으로만 대한다는 뉴스를 접할 때 험한 말이 가장 심하게 나온다.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는데, 대개 인간이 빌런이기 때문에 환멸감을 갖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전생에 동물이었지 않았을까 우스갯소리로 대신하곤 한다. 그렇다고 동물을 보며 힐링하지도 않는다. 내게 힐링은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 다른 장소로 떠나는 것이다.
이번 힐링은 글램핑으로 결정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추세였기에 인구 밀집 지역으로 떠나는 건 모두에게 위험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거리 확보가 되는 야외 놀거리를 찾다보니 캠핑이 대두됐고, 가평에 괜찮은 글램핑장을 찾아냈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덜덜 떨리는 차가운 겨울 공기도 바비큐 불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루돌프처럼 빨갛게 익은 코끝이 숯불에 사르르 녹을 때쯤 고기도 서서히 익어갔다. 네온사인이 화려한 글램핑장에서 먹는 바비큐는 과연 일품이었다. 식탐 없는 내가 고기, 소시지, 라면을 그대로 흡입해버렸다. 분위기에 취한 건지, 와인에 취한 건지 잔뜩 상기되어 자정 너머까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술만 마셨다 하면 잠드는 우리였기에 아무래도 장소 영향이 컸던 듯하다.
글램핑은 Glamorous (화려하다)와 camping (캠핑)의 합성어다. 인터넷 사전 정의에 따르면 고급스러운 야영을 뜻한다는데, 그저 별도로 도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캠핑으로 여기면 되겠다. 차가 없어 차박은 패스, 캠핑은 챙겨야 할 게 많아 귀찮으니 글램핑이 딱이었다. 추가금을 지불하면 안 되는 게 없다. 조리 도구가 준비되어 있고, 씻을 곳도 개인 숙소 별로 준비되어 있고,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서 불멍도 가능하다. 다음에 또 캠핑을 가기로 한다면, 글램핑을 추진하겠다.
어렸을 때 가족끼리 갔던 자연 휴양림도 그립긴 하다. 좋은 곳을 돌아다닐 때면 가족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혼자만 색다른 경험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추억을 쌓는 느낌이 들면 며칠간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장녀라는 책임감을 살짝 뒤로 젖혀두고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지금이 좋아 무심하게 모르는 척할 때도 있다. 죄송스러운 마음은 아주 조금만 더 짊어져야겠다.
다음 날엔 홍천으로 떠났다.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바이나, 주변 사람들이 종종 담비, 뱁새, 삵, 토끼, 알파카를 닮았다고 말한다. 친구들이 놀리기 위해 하는 말이겠거니 쿨하게 넘겨왔다. 심지어 귀여운 동물도 있으니 내심 기분 좋기도 했다. 그런데 동생이 알파카를 친히 소개했고, 인형을 사거나 SNS 영상에 태그를 거는 등 공격적으로 세뇌시켰다. 일행도 세뇌되어 나를 홍천 알파카 월드로 이끌었다.
알파카는 털이 복슬복슬하고 똘똘한 눈빛을 가진 낙타다. 낙타의 긴 속눈썹과 게슴츠레한 눈이 아닌 게 다행이면서도 여전히 낙타과라는 사실이 반갑지만은 않다. 알파카는 라마와도 다른데, 라마는 더 크고 길게 생겼다. 알파카는 뾰족함보다는 둥근 느낌이다. 함부로 말 걸지 말라는 분위기를 풍긴다는 첫인상 평과 대조되는 외모인가 싶어 조금 당황스럽다. 닮았다는 동물들의 공통점이 뭔가 보면 다들 어딘가 멍해 보이는데 난 멍 때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고로, 뭐가 닮았다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지금도 외모가 닮았다는 소리는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있으나 알파카 월드에서 만난 알파카들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밥 달라고 쫓아오는 큰 녀석들과 사랑받는 게 귀찮은 아기들을 보며 어느 누가 눈살을 찌푸릴 수 있겠는가. 어른도 아이도 알파카들의 배를 채워주며 마음에 온도를 높였다. 인기가 가장 많았던 하얀 아기 알파카가 내게 애교를 부리며 드러눕기까지 하니,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알파카 월드에서는 알파카 외에도 양, 염소, 포니, 새, 공작, 토끼, 사슴 등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다. 가둔 채로 사육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마음이 덜 무거웠다. 물론 영역 다툼으로 인해 발생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댕강 잘린 사슴뿔을 봤을 땐 명치가 퍽 답답했다. 이상하게 나는 동물에게는 한없이 관대해지는데, 영화 <각설탕>이나 <마음이> 같은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절대 보지 못하는 것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동물에게 악당은 결국 인간이기에, 동족에 대한 환멸을 품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알파카 그림을 칠하는 공간이 있어 몸도 녹일 겸 들어가서 색칠을 했고, 추가금을 지불해 알파카 산책을 돕는 체험도 했다. 먹이를 주면 따라와 걷는데 이게 사람을 위한 건지 알파카를 위한 건지 의문이었으나 함께 걸은 “쥴리”가 시종일관 웃고 있어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또 이들을 책임지는 담당자들의 애정이 상당해 보여서 괜한 다큐멘터리 사고는 버릴 수 있었다. 한 직원 분께서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아기 알파카 먹이 주기 일을 맡기셨는데, 이때 침 뱉는 녀석을 처음 만났다. 영상으로만 봤었는데 실제로 보니 신기하면서 웃겼다. 하나하나 챙겨줄 수 없어서 미안했고 경계하지 않아 줘서 고마웠다.
알파카는 외로움을 많이 타서 꼭 둘 이상이 지낸다고 한다. 나 또한 독립적인 성격이고, 과거 연인에게 혼자 있을 시간을 달라고 할 정도로 각자의 시간 존중이 필수적인 사람이지만 안전한 고독을 즐길 뿐, 누군가가 옆에 있지 않으면 외롭다. 밤마다 불면증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동생에게 의지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내킬 때만 찾는 성격에 어머니는 이기적이라고 비판했고, 동생은 개보다는 고양잇과라고 순화해서 표현했다. 겸허히 평가를 받아들인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별로인 부분이다. 고치려고 해도 안 고쳐져서 지금은 그냥 받아들였지만, 남들에게까지 관용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어쨌거나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두툼한 알파카의 털처럼, 내 마음의 온도를 유지시켜 주는 건 주변 사람들 덕분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비슷한 사람들은 가족, 친구로 남아 있을 테다. 그래서 더욱 그들을 신경 쓰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동물들처럼 아낌없이 내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충성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