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도록 상쾌한, 강릉
한 영혼의 여행 2022년 1월
사실 이 세상엔 틀린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많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린 게 아니라 나는 나고, 너는 너인 경우가 다반사다. 해서 상대방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결국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 타인을 벽으로 만들어버려서는 안 된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대화를 피한다는 건,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다. 원래부터 대화가 안 되던 사람인 건가? 아니라면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고민했을 때 후자인 경우라면,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볼 필요가 있다.
강릉 여행은 처음이 아니었다. 거의 매년 국내 여행을 떠났다 하면 강원도였고, 대부분이 강릉이었다. 바다가 있고, 산이 있고, 반면에 사람은 많지 않은 공기 좋은 곳. 여름이건 겨울이건 추천하는 여행지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뷰 좋은 숙소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곤 한다. 어디든 일상을 탈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최적의 휴양지가 되겠지만, 내게는 강릉이 그렇다. 넘실대는 파도가 집어삼킬 듯이 거칠게 다가올 때 조차도 감격스럽다. 속 안의 썩어 문드러진 마음 하나가 물에 깎인다. 그 과정이 거듭될수록 날카롭게 깎인 마음 조각이 피를 흘리고, 구멍을 내고, 심지어는 옆 마음을 찌르기까지 한다. 이윽고 떨어져 나간 그곳은 허한 구멍이 자리한다. 그런데 괜찮다. 이상하리만치 상쾌하다. 꼭 강릉의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닷물처럼 시원하다. 내게 강릉은 이처럼 마법 같은 곳이다.
서울과 달리 지방은 느긋하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깨지 않고 내리 잘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한 치 앞도 모르겠는 우리의 일상보다 그 흔들림이 안정적으로 느껴져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은 서울이 아니라 지방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서울 여행도 하나의 테마가 될 수 있겠지만, 서울이 휴양지의 느낌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휴양지의 기준을 보라카이, 몰디브, 스위스에 둔다면 말이다. 매일 여유롭게 살면 좋겠건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평온을 찾아 떠나왔다. 그럼에도 동생은 내가 여전히 쫓기고 있다 말한다. 휴양을 떠나는 사람이 계획을 세워서 돌아다니는 게 말이 되느냐는 취지에서다. 떠날 때만 해도 정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여행이다 확신하는데, 돌아와서 보면 참 이것저것 많이도 했다. 아무 계획 없이 돌아다니자는 계획이 실패했다. 그래서 괜찮다. 내 계획은 강릉의 바람에 날아가버렸으니.
늘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음식에 대한 계획은 있었던 적이 없다. 어떤 날은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면서 뭔가 씹고 싶다가도, 어떤 날은 배가 고픈데도 씹는 게 귀찮아 음료로 대충 끼니를 때우곤 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 담긴 꾸지람을 들었지만 혼자 있는 날이면 귀찮음이 모든 걸 지배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건강식을 찾았는데, 그중 하나가 두부였다. 콩은 싫어도 두부는 사랑하는 이해불가인 입맛을 저격한 두부는 전국에 딱 두 곳, 양평의 기와집과 강릉의 동화가든이다. 담백함과 얼큰함이 어우러진 짬뽕 순두부는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맛볼 수 있었지만 충분히 가치 있었다. 기다리면서 두부 젤라또를 먹었는데, 이 역시 후회하지 않을 맛이었다. 전날 먹었던 회의 비린내와 닭강정의 기름을 싸악 잊게 해주는 깔끔함이 혀를 살살 녹였다.
물론 유명한 맛집은 한둘이 아니다. 시장에서 파는 음식들은 물론이거니와, 해물뚝배기도 입소문이 자자했다. 근처에 하슬라아트월드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쪽으로 향했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이뤄낼 수 없는 작품들이 가득했다. 철사로 사람보다 큰 조형물을 봤다면 다들 동의할 것이다. 과연 나는 무엇에 미쳐보았는가 성찰하게 됐다. SNS 용 포토존이 있어 나와 일행도 한참을 기다렸다. 사진 욕심이 많지 않아서 세 컷 찍고 나와버렸지만 만족스러웠다.
좋은 사람과 예쁜 사진도 찍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칼 같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행을 정리할 때쯤, 검게 뚫려버린 마음 구멍에 하얀 색깔이 칠해졌다. 벽이 되어 누군가를 답답하게 만들면서까지 방어기제를 펼치느라 잔뜩 솟았던 어깨가 추욱 떨어졌다. 그리고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않아서 벽으로 느껴졌던 거라고, 네가 맞고 내가 틀리다는 가치 평가에서 비롯된 오만인 거라고, 나는 그저 상처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해 그런 것뿐이라고. 남에게 탓이 되는 세상에 스스로를 탓하는 건 잔혹하기 때문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살아온 사람이, 똑같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온 사람보다 사회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연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감사하게도 주변 사람들은 나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을 뿐 동일하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누군가에게 벽이 되지 않으려 부단히 애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됐다고 해서 홀로 끙끙 앓느라 속을 텅 비울 생각도 없다. 하얗게 칠해진 마음 구멍을 다시금 나만의 색으로 채워낼 거다. 순두부의 새하얀 빛깔일 수도 있고, 맥주 거품처럼 시원한 파도 빛일 수도 있다. 무슨 색이 나를 만들어낼지는 미지수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알록달록한 색으로 다양한 본인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다고, 색 없이 살아갈 이유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준 강릉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