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 울산

한 영혼의 여행 2022년 2월

by 글한송이

모든 게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지 않고,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어낼 수 없어서 무기력해지는 때가 있다. 쉬고 싶지만 쉬어서는 안 되고, 쉬고 있어도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해서 자꾸만 어둠 속에 숨고 싶다. 미드 <프렌즈>에서 "피비, 너 아직 살아있었구나? 좀 어때?" 하고 묻는 레이첼에게 피비는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게 지쳐"라고 답한다. 평소였으면 웃어넘겼겠지만, 어쩐지 씁쓸함이 감돌았다. 쉽지 않은 세상살이가 불현듯 차갑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차가운 바닷바람을 느끼려 차에 올라탔다.

어찌 된 영문인지 바다는 온기를 품고 있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 너머에서 흩날리는 뻗어 나온 구름이 손으로 뜯은 솜사탕처럼 넘실댔다. 햇살이 따갑지 않은 꽃 피기 좋은 날씨였다. 낯설었다. 꽁꽁 언 흙 속에서 준비도 채 되지 않은 씨앗에게 일어날 때라며 재촉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친한 친구가 잘 될 거라며 든든하게 옆에 있어준다 한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울산의 온화함은 조금도 위안이 되질 못했다.

대학생 때는 대학원에 가고 싶었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는 논문을 게재하고 싶었다. 대학원에 진학했고, 올해 초 국내 컨퍼러스에 논문을 게재했는데, 왜 여전히 마음은 텅 비어있는지, 그럼에도 가슴이 막막하기만 한 이유는 뭔지 도통 해결책이 나지 않는다.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는 차라리 외계인이 지구에 침공해 둘리처럼 자기만 데리고 가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정말 UFO가 있다면, 나도 꼽사리 껴야겠다. 우스운 생각을 하면서 바라본 울산 바다는 잔잔했다. 갈매기를 연상케 하는 앙증맞은 풍차만큼이나 올곧고, 평온했다.

출렁다리를 방문했다. 바닥을 내려다보면 정신이 아찔해져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하필이면 이후 코스는 바위를 산처럼 넘나들어야 하는 지형이었다. 쉬운 길도 있었는데 사서 고생했다. 지금의 나를 극복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열심히 비틀대다가 신나게 도착했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밥 때라는 게 없어 지인들의 걱정을 사는 나조차도 여행을 가서는 굶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잘 먹는 편에 속한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왔을 때 만두처럼 퉁퉁 부어 있던 얼굴을 기억해봤을 때, 마음이 편안하면 배도 고픈 편인 듯하다. 손님을 심드렁하게 반기는 고양이와 반신반의했다가 "오, 맵다."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 식당에서 점심을 해치웠다. 면 요리 중에 두 번째로 좋아하는 칼국수라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고, 서울의 말도 안 되는 물가가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는 울산의 정이 은은히 와닿았다. 사실은 고양이 때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행복했던 것도 같다. 울산 명물이라는 쫀드기도 먹었다. 분식집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찾지 못해서 봉구스 밥버거 체인점에서 구매했다. 온라인 구매도 가능하다고 들었으며, 경주 쪽에서도 판매하는 것으로 보아 울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희귀 간식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들리면 먹어볼 것을 권장한다. 라면의 짭조름함과 쫀드기의 달짝지근함을 좋아한다면 말이다.

울산은 돌이 많아서 어딘가 단단해 보인다는 느낌을 끝없이 받았다. 출렁다리를 너머 펼쳐진 광경도 멋있었고, 그저 넓고 한적한 공원조차도 낭만이었다. 그리고 그 속은 돌덩이로 꽉 알찼다는 인상을 남겼다. 또다시 마주한 풍차 역시 휘어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떤 풍파를 겪더라도 끄떡없음을 선전 포고하는 기세가 부럽기만 했다. 하지만 길 정도 잘못들어도 기어코 목표 지점을 찾아내는 사람이야말로 부족하기에 아름답지 않던가.

2월의 울산은 서울보다 늦게 지는 해를 볼 수 있었다. 지난 1월 1일 해돋이를 보면서 해는 뜰 때도 천천히 뜨고, 질 때도 느긋이 인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도 해와 같아서 천천히 뜨려나보다 생각하며 붉은 노을을 뒷배경 삼아 멋지게 숙소로 향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다 보니 감정 교류가 어려웠다. 감정은 휘발성이 강해서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니 매사에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야속할 때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뭘 하든 잘 될 사람이라는 과대평가로 일관되었다. 나는 사실 누구보다도 어리고, 외롭고, 두려운 게 많은 청춘일 뿐인데 늘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엇 하나 자유롭게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짓눌려 도망치기에 급급하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행복하고 싶다는 열망이 욕심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황량하다 싶을 정도로 널찍하고 아직은 누리끼리한 잔디 길을 걸으며, 이따금 보이는 맑은 호수와 물에 청량함을 눈에 담았다. 콘텐츠라는 사실은 너무도 광범위한 단어 속에서 기획자로 살아남기란 울산대공원에서 개미 한 마리 찾기만큼이나 어렵다. 글 쓰는 걸 좋아해 지금도 여전히 혼자 습작을 끄적이고 있는데, 이번 여행에 기꺼이 함께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도움이 못 되어줘서 미안해. 그렇지만 힘낼 수 있게 늘 옆에 있을게."

일전에 말했지만, 취업난 속에서 취업을 시켜줄 수 있는 친구는 실업자에게 도움이 된다. 논문 결과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교수님의 피드백은 학생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자아가 흔들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마음은 고맙지만 누군가의 응원조차도 희망고문으로만 받아들여진다. 즉, 나는 이게 내 문제이므로 나 외엔 해결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는 감사했다. 그가 툭 뱉은 진심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어떻게든 되겠지. 망하면 뭐 어때." 하는 마인드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사람들 저마다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듯, 울산도 마찬가지겠거니,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한자에서 비롯되었다는 유래도 있고, 지형 모양으로 따왔다는 설명도 확인 가능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우리를 줄여서 말하는 '울'이 울산임을 주장하고 싶다. 울 엄마, 울 아빠, 울 동생... 울이라는 단어가 주는 포근한 이미지로 가득했던 따뜻한 바다, 넘실거리는 다리, 도도하게 자리를 지키던 고양이, 후한 인심의 식당 메뉴, 우뚝 솟은 풍차, 낙엽으로 가득한 산길, 한가히 시간을 즐기는 갈매기. 울산이기에 어울리는 울산스러움이었다.


한송이스러움은 무엇일지, 찾아야겠다. 찾아내서, 반드시 멋대로 살겠다. 사람에 휘둘리거나,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나답게 일어서겠다. 당신도 그러길 바란다. 뚝배기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먹고, 곧 몰려올 꽃샘추위를 맞이해서, 꽃을 피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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