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밤발밤 흘러, 경주

한 영혼의 여행 2022년 2월

by 글한송이

갈등이 싫다. 그런 건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다름을 존중한다. 차이를 이해한다. 물론 순간적으로 의견이 비판받게 되면 욱하는 어린 모습이 남아 있지만, 그렇기에 성장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끝까지 상대를 찡그린 미간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우는 상대가 존중을 안 하거나, 비난을 할 때다. 강요하지 않는 태도와 대안이 제시된 의견 피력이 옳다는 건 초등학생 때부터 배웠지만 쉽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서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과 끼리끼리 어울리나 보다. 같은 걸 보고 웃고, 울고, 화내고, 주장할 때 얻는 동질감이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가. 경주는 그런 의미에서 방문객들을 하나로 만드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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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무궁무진한 역사가 주는 감동은 벅차다는 표현으론 부족했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단순히 수학여행 장소로만 기억을 남기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 국민들을 위한 왕이 남긴 유산과 이를 보존하는 역사의식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음을 느끼자 뿌듯하고 또 앞으로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음에 책임감이 생겼다. 역사학과를 진학하고자 했던 고등학생 시절, 훗날 과연 직업으로 갖고 살 수 있을까 하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모르는 척했던 게 부끄럽지만.

고등학교 동창 중에 역사학을 전공하고 이와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기를 희망하는 친구가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하지 않아 골머리를 썩히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마음을 바꾸지도 않았다. 묵묵히 초심을 지켜나갔다. 친구의 미래를 응원한다.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이렇게 잊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배우고 직접 방문하는 등 노력하겠다. 그저 놀러 왔다가 한 번쯤 불국사에 방문하고 박물관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은연중에 생겨나는 자부심은 책상에 앉았을 때보다 뛰어다닌 거리 주변에 있는 한옥, 기와, 석탑일 테니.

아쉽게도 석굴암은 방문할 수 없었지만, 백성을 위해 정부의 권력을 내려놓을 줄 알던 신라의 리더십을 다시금 확인했다. 날이 좋아서 그런가 선명한 멋이 눈에 확 들어왔다.

외국에서는 손에 휴대폰을 쥐고 뒷짐 지고 걸으면 소매치기당한다지만, 경주는 얼이 담긴 장소였기에 아무런 걱정 없이 선비처럼 뒷짐을 지고 걸었다. 공사 중이라 무료 개방된 동궁과 월지를 한 바퀴 돌며 동행인은 속상해했지만 난 그저 그대로 마음에 들었다. 추운 날씨에 고개를 내밀다 만 새싹들이 반가웠고, 바람에 날리는 모래 바람도 시원했다. 내부 인공 호수의 물이 다 빠졌음에도 자태는 아름다웠다. 항상 풍요로울 수만은 없다, 외로움도 겪고 쓸쓸함을 감내하면 비로소 꽃이 필 테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온다는 어구가 확 와닿았다. 애처로움이 민족의 한을 담은 것 같았고, 꿋꿋함이 몇 번이고 일어서는 민족성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 친구들은 경주라는 도시를 안다. 외국에서 사귄 친구들이 "한국에 가면 서울도 좋지만 경주를 꼭 가보고 싶어. 정말 멋있다던데."라고 말했을 때 뜨끔했다. 사실 내게 국내 여행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해서 썩 새롭지 않았기 때문에 잊고 살았음을 비로소 인지했다. 익숙해지면 소중함을 잊게 된다는 말이 어울렸다. 그래서였을까, 가족들이 그리웠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늘 '나'를 먼저 생각하는 가족의 사랑이 보고 싶었다. 가치관이 갖고, 서로를 존중하기에 맞춰나가는 재미가 쏠쏠한 가족을 대체할 만한 건 없는 듯하다. 멋진 문장 중에, 역사는 곧 미래라는 말이 있다. 다만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만 납득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역사를 가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틈날 때마다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한 번 마주했을 때 자랑스러운 가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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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시간>이라는 영화에서 다룬 것처럼, 시간을 멈추고 나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모든 게 멈춰버린 공간 속에서 평생 산다면 그 역시 괴로울 수 있겠지만, 피터팬처럼 더는 크고 싶지 않기도 하다. 시간은 쉴 새 없이 흐르며, 1초 후의 나는 어느 순간 1초 전의 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상은 과거와 미래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한 걸음 한 걸음 느리더라도, 제대로 걸어 나가보려 한다. 짧은 미래가 순간의 오판으로 좋지 못한 과거로 남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발밤발밤, 천천히, 그래서 나중에 내려놓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하겠다. 미소 속에서, 역사 속 위인들처럼, 경주가 내게 준 안정감을, 다음 세대가 가질 수 있도 흘러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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