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한 희망, 포항
한 영혼의 여행 2022년 2월
당연해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부모님의 절대적인 사랑, 형제간의 무조건적인 지지, 친구의 변함없는 응원. 혹자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하며 그래서 소중하다. 날이 밝으면 해가 뜨듯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게끔 믿음을 준 나의 지인들에게 감사하다. 그 덕분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청춘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저들만의 규칙 속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즐기는 갈매기들의 자유가 깨나 부러웠다. 서울로 돌아가면 다시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똑같은 챗바퀴를 굴리며 살아야 했다. 화려한 셀럽들의 삶과는 대비되는 당연한 하루가 반갑지 않았다. 반복적이기에 실수를 할 때면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깎아내리게끔 만드는 이 '당연함'을 어떻게 밝게 맞이할 수 있을까.
포항은 부산, 울산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겼다. 같은 바다 동네임에도 어딘가 더 고요했다. 부산의 뜨거움과는 완벽히 대조되었으며, 울산의 조용함과는 비슷한 듯 어긋났다. 차분함이었다. 바다를 봤는데도 들뜨거나 하지 않았다. 완전한 경치에도 감탄보다는 마음이 가라앉는 평온함을 느꼈다. 포항을 찾은 다른 방문객들도 유사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가는 미소를 담아내었다.
거북바위부터 청아한 물까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포항은 청명했다. 왜 색깔을 표현할 때 '바다색'은 없고 '하늘색'은 있는 것일까 의아할 정도로 단려한 모습이었다. 물을 보면서 살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친구는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푸른 산이 훨씬 나았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초록 정원 안에 있는 주택에서 살고 싶다. 2층으로 올라가면 바다가 훤히 보이는 그런 곳에서 말이다. 언제부턴가 도심보다 자연을 원하고 있다. 한적함 속에서 강아지, 고양이들과 작은 동네 한 바퀴 하고 돌아와 아침을 먹고, 날이 좋아 빨래를 널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글을 끄적이는 것. 건너뛴 점심에 슬슬 허기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영화 한 편을 보다 잠드는 삶. 마음에 여유를 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포항 호미곶은 새해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임이 분명하다. 왜 새해에 다짐을 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내려오는 걸까 궁금했다. 남들 다 하는 거 해보고 싶어서 나 역시 해돋이를 보고 온 2022년이었지만, 성숙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다짐을 하는지 알고 싶다. 막연한 소원을 빌기보다는 목표를 '선언'하고 갈 것 같다. 해내겠습니다, 해낼 수 있도록 지치지 않게 힘을 주세요-라든가. 코로나가 더 이상 치명적이지 않은 시대가 도래해 모두가 자신의 각오를 단단히 할 수 있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해가 지나고 한참 뒤, 그것도 일몰 시간에 찾았는데도 젊은 여행객들이 종종 보였다. SNS 릴스를 찍는 중인지 각자 개성을 뽐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20대인 나는 왜 저런 것에 흥미가 없나 머리를 긁적였다. SNS를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린 그림을 올리면서 한 마디씩 적기도 하고, 과거에는 페이스북을 하면서 친구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탓에 중독되다시피 할 걸 알기에 적당 선에서 끊어버렸다. 게임 기획자면서 게임을 섣불리 시작하지 않는 이유도 그와 같다. 중간 정도만 하면 좋겠는데, 그 타협점이 참 어렵다.
틈 날 때 유튜브에서 <무한도전> 다시 보기를 검색하곤 한다. 바보들의 계속되는 도전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예능 프로그램답게 어딘가 어설픈 출연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고 있다. 나도 때로는 바보처럼 어설퍼질 때도 있고,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도 있다. 잘하지 못하는 그림 그리기를 매주 계속해서 해내고, 써지지 않는 글을 한 글자라도 더 적어내려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한다. <무한도전>이 도전에 의의를 두고, 끝내 완주하는 것처럼 나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삼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 보면 내 시즌이 오기 마련이니까. 화합하고 화해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뻗어 나온 호미곶의 손을 잡아 그러한 사회에서 더욱 발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