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장이들에게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왔어요. 알고 지낸 지 벌써 10년이 넘는 오래된, 하지만 언제 만나도 낯설지 않은 좋은 친구죠.
열일곱, 하얗기만 하던 친구와 시리도록 각진 세상에 멍든 모습으로 마주한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었어요.
대학원 스트레스, 취업 스트레스, 회사 스트레스, 인간관계 스트레스…
뭔가 하나가 해결되고 나면 왜 다른 곳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펑펑 터지는 건지, 열띤 토론을 벌여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희망보다는 절망이, 칭찬보다는 모욕이 돌아오는 요즘이 너무 괴롭다는 친구에게 건넬 수 있는 말도 더는 생각나지 않았죠.
다시 살 수 있다면, 20살로 돌아가서 아예 다른 전공을 택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사뭇 다른 감정을 느꼈어요.
물론 지금 생활이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에요. 현재를 받아들여버린 터라, 돌아가서 그 치열한 인생을 되풀이하는 게 자신 없을 뿐이죠.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 했어요. 부족함이야 늘 제 뒤를 졸졸 쫓아다니지만,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해요. 저는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멈춰버리거든요.
부모님께서 아무리 좋은 성과를 보여도 칭찬 한 번 안 해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칭찬을 받지 못해서, 타인을 칭찬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게 저예요. 그래서 표현에 인색하다는 말도 여럿 들었어요.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감정 표현을 잘 못 하는 것도 이 영향을 받은 거 같네요. 반면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살게 됐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100점이 아니어도 실망하지 않죠. 대신에, 노력은 100% 하는 거예요. 가장 작은 부족함만 남을 수 있도록. 남들에겐 어딘가 어설플지 몰라도,
나 스스로는 이 정도면 됐다고 만족할 수 있도록.
회사 연차로 푹 쉴 수 있는 날이었는데, 이슈가 터져 하루 종일 재택근무를 한 오늘도 ‘에휴. 고생했다.’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주니어의 패기도 여기서 나오는 것 같아요.
단순히 제 실수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로운 걸 수도 있겠지만, 다음에는 이 부분을 더 신경 쓰면 된다고 다독일 수 있는 힘이 있거든요.
오늘도 추가된 부족함이란 그림자가 작고 옅게 보이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끝난 일인걸. 더는 크지 않도록 막아내면 됩니다. 제가 더 커져도 되고요.
타인의 상황에 놓여본 적이 우리 모두 없기 때문에, 이해한다는 말은 오만한 표현이라고 해요. 공감해요. 그래서 친구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오랜 시간 대학원 논문 작성에 매달리고, 취업을 준비하느라 모든 행복을 잃어버린 친구에게 얼른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어둠의 그림자는 빛이 있기 때문에 보이는 거니까, 네 앞에 그만큼 강렬한 빛이 놓여있는 거니까,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요.
마찬가지로 부족함에 매일 배워나가고 있는 제가 늘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이 세상 모든 노력장이들을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