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103
똑똑한 건 나를 위한 것이고, 다정한 건 상대방을 위한 영리함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떠오르는 몇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절대 자신을 높이지 않고, 상대방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되려 스스로를 낮추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이 높다는 느낌을 풍겼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 역시 이들을 찾았다.
어떤 무리 속에서든 잘 녹아들어, 항상 바쁜 삶을 사는 건 질색하지만, 다정함은 퍽 부러웠다.
나누고 베풀 줄 알며, 감정에 공감을 잘하고,
친절한 말투를 쓰고.
이런 거 말고, 다정한 사람은 무엇인가 달랐다.
약간은 모자란 듯싶어 보이게 행동하면서도
내면은 단단히 가득 차있다.
무뚝뚝하면서도 세심하게 상대방의 특징을
기억해 내는 친구가 있었는가 하면,
특정 인물이 무안하지 않게 본인에게
화살을 돌리고는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드는
친구도 있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이들을 싫어할 수가 없다.
해외라고 해서 뭔가 다르지 않다.
결국 다 사람 사는 세상인 만큼,
다정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기가 좋다.
밴쿠버에서 만난 한국인 언니는
절친한 친구처럼 내게 다가왔고,
내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간혹 언니의 진가를 몰라보고 막 대하는
학생들을 보게 되면 화가 난다.
정작 언니는 태연하다.
내 인생 가장 다정한 20년 지기 절친에게 물었다.
왜 너도, 언니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거냐고.
"진짜 괜찮아서 그래. 나는 잃을 게 없으니까."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으면,
가치를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면,
소중히 대하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친구에게 내가 마치 갑인 양 굴게 되면, 다시는 귀인을 얻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들이 바보라서 내게 다정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AI가 우리보다 지식으로 앞서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AI보다 다정하게 서로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