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89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존중하기란 도전과도 같다.
어렵지만 그래도 노력해 볼 수는 있다.
복잡한 시험 문제처럼 나를 헷갈리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힘들다.
아무래도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생 때까지도 따로 나와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는
자취는 물론이거니와 기숙사 공동생활도 해보지 않았다.
가끔 학교에서 주관하는 수학여행 정도가 전부인데,
모두들 어린 나이에도 매너 있게 행동했기 때문에
상식을 넘어버리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대처법은 알지 못했다.
친절하게 설명하고, 직접 장소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한번 일러두고.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였던 건지,
몇 주 간 소음과 불빛, 음식물 냄새에 시달려
한밤 중에 깼던 탓인지,
폭발해 버렸다.
돈 문제가 얽히고,
친구가 피해를 입었는데 되려
당당하고 뻔뻔한 태도로
거짓말을 일삼는 행동에 대해서
나는 더 이상 이를 실수로 여길 수 없었다.
이기적인 인간의 표본을 목격하고 겪고 나니
스스로가 무력하게 느껴졌다.
내가 화가 많은 거라고 생각했고,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남들만큼 다정하지도 못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변명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비하를 하던 몇 주 전의 내가 불쌍하다.
나는 참을 만큼 참았고, 할 만큼 했다.
"똑같이 하면 너도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야."
무슨 뜻인지 아는데,
똑같은 사람 되는 게 나을 때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차피 그래봤자 상대방은
반성은커녕 남 탓만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펼치는 건
그만큼 상처받았기 때문이라던
친구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온다.
남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아는 상태여야 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았고,
상대방 역시 스스로를 존중할 줄 몰라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셈이 됐다.
약 한 달간 상처받은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