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82
3,6,9.
무언가에 슬슬 적응하고 지루해질 시기가 찾아오는 타이밍.
밴쿠버에 온 지 딱 3개월이 되는 7월 한 달이 내겐 꼭 그랬다.
사실 사람 때문에 지쳤던 게 더 컸다.
그래서 또다시 다 리셋하고 싶어지는 나날들이 계속됐다.
후회 없이 하루를 보내는 데에 최선을 다하건만,
언제나 그렇듯 다 무너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속에 잠드는 날들이 많아진다.
없어졌으면.
사라졌으면.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일몰보다 일출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래서일까.
저물어가는 하루보다 시작할 수 있는 순간에
더 벅차오르는 감정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내 결과에 만족할 줄 모르고 매번
다시를 외치는 게 정말 나를 위한 것인가.
짧고 굵게 터지는 불꽃놀이를 감상하면서
우와- 감탄사를 연신 외치는 내가
가늘고 길게 이 세상에 잔류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인지 여태 모른다.
결국 다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한국에서나 밴쿠버에서나 나는 나고,
세상은 나를 변두리에 둔 채 잘만 굴러간다.
누구는 성격도 변하고, 더 밝아지고,
살아남기 위해 성장한다는데
역시 모두 남 얘기였던 듯싶다.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이며 잠들어가는 오늘.
파란 하늘 아래 뜨거운 태양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걸 보면서
여름 다 가고 가을이 오는구나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머리가 무겁고 어깨가 묵직하면서도 고개를 푹 숙이지 않고
힘을 내 하늘을 쳐다볼 수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줄 좋은 사람들과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권태기에 접어든 밴쿠버와 다시금 잘해 볼 용기를 내기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