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76
나를 아이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좋다.
순수하게, 때로는 유치하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끔
편안함을 주는 사람.
그래서 언니/오빠라는 존재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애정 듬뿍 받으며 성장했지만,
첫째에게 주어지는 의무 및 부담이 컸던 탓이다.
성격은 그렇게 형성되고 굳어져버려서
대부분의 지인들은 내게
어른스럽다. 성숙하다. 언니/누나 같다,
심지어는 엄마 같다는 이야기도 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애 같은 게 나라고.
내게는 칭찬이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고,
독하다는 평가를 지독하게 듣곤 한다.
그러나 남들은 나와 다르다는 사실 역시 인지한다.
해서 때때로 어떻게 칭찬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충고만 늘어놓는 스스로를 마주할 때면 당황스럽다.
아이처럼 굴고 싶어 하면서,
막상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 다루듯
따뜻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내가 종종 밉다.
타지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는
내면의 내가 본체가 되기를 바랐다.
있는 대로 감정을 표현하고, 칭찬하고, 칭찬받고.
한국에서는 어색한 그 순간들을
이곳에서는 해낼 수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밴쿠버에서 듣는 나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어른스럽다".
외모는 동안인데 내면은 성숙하니
그게 바로 베이글 아니겠냐며
긍정적으로 표현해 주는 친구들의 말은
재밌으면서도 씁쓸하다.
부모님이 아닌, 누군가의 어린 딸이 되고 싶다.
철없는 어린 시절 느꼈던 무한한 애정을,
어른스러운 나이기에 받는 게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 어린이라서
이해받고 용서받고 사랑받고 싶다.
그저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싶다.
어른스럽다는 건,
그만큼 무게를 많이 지고 있다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