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한송이 Sep 08. 2024

혼자라서, 푸르게

어쩌다 보니 밴쿠버, D-41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서인지 혼자서도 거뜬히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시작부터 외로웠기 때문에 혼자가 편한 사람도 있다.

완전히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나는 첫 번째의 경우이지 않을까 싶다.

다른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깨나 엄격한 기준 속 성장했으나 그래서 자유로웠다.

자율성이 보장되었고, 내가 벌인 일에 대한 책임도 내가 졌다.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충고나 조언, 잔소리도 들어본 적 없다.

정신과 친구 말로는 내 편두엽은 굉장히 예민해서 잘 놀라는 만큼 세심하다고 했다.

고로, 나는 혼자가 훨씬 편하다.


언제든 이별할 수 있을 때 연애 하라,

혼자서도 잘 살아갈 때 결혼하라는 말이 충분히 공감되는 요즘이다.

밴쿠버에서의 5개월이 지나가는 중이다.

10시간의 비행으로 다리가 퉁퉁 붓는 대신,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좋은 인연을 풍성히 마주했다.

깨끗한 자연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하면서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 나쁜 인연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독립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피곤한 집안일에 한숨을 쉬었지만, 식단이 건강해졌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던 영어 대화도 이제는 될 대로 돼라 내뱉게 됐다.

점점 발전해 가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뿌듯함이 자리 잡았다.

혼자서는 왠지 불안했던 내 삶이 멋지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이라는 것은 늘 두렵다.

그러면서도 설레고, 흥미롭다.

통제 불가한 상황이 불편해 나름대로의 하루 루틴을 만들어 살아가는 계획형 인간이지만

아무렴 어때-하고 넘어가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매일이 새롭다.

파랑, 하양, 초록으로 둘러싸인 평온한 밴쿠버의 분위기 덕분일까.

곧 가을이 찾아온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푸름.

작가의 이전글 불필요한 배려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