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2월 11일, 천안의 딸 부잣집에서 또 딸이 태어났다. 여섯 째를 맞이한 큰 언니는 그러려니 하고, 아직 작은 언니들은 시뻘건 핏덩이가 신기하고 엉엉 울어대는 힘찬 목청이 반갑기도 하건만, 녹초가 된 어머니는 한 번 더 치러야 할 거사에 벌써부터 몸이 무겁다. 거창한 환영식 없는 곳에서, 그렇게 성희가 태어났다.
성희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이미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어머니의 영양분을 쪽쪽 뺏어먹었기에 체구도 작고 힘도 부족했지만, 밝고 영특했다. 하지만, 성희의 영특함을 알아차리기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 먹여 살리느라 바빴다. 오직 언니들에게 맡겨진 성희는 어려서부터 모든 일을 혼자 척척 해냈다. 아무도 공부해라, 숙제해라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다. 집도 있고, 부모도 있고, 언니들도 있지만,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다.
정직하게 쌀가게를 운영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단 한 번도 백미를 먹지 못했다. 팔리지 않는 질 나쁜 쌀이 식탁에 올라왔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밥상 앞에만 앉았다 하면 왁자지껄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꽃이 시들지 않았다. 엄격한 아버지였지만, 성희에게는 관대했다. 눈이 크고 맑은 애교쟁이 막내딸은 아버지에게도 옅은 미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성희는 아들을 낳게 해 준 귀한 막내딸이 되었다. 그때부터 불합리함에 화를 품기 시작했다.
막내 자리를 빼앗기면서 예쁨을 독차지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막내라는 이유로 새 옷은 본 적도 없고, 항상 뒷 순서였던 성희였다. 그런데 동생은 진정한 막내였음에도 아들이라는 이유로 밥을 더 많이 먹었다. 맛있는 반찬은 아버지 다음으로 동생부터였고, 공부도 남자가 하는 거라며 성희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영특함에 선생님은 "넌 머리 나쁜 곳에 쓰지 마라. 도둑이 된다면 대도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 시험만 봤다 하면 1등이었고, 음악 선생님은 목소리가 좋다며 성악을 권했으나, 그저 공부가 좋았다. 특히 한자가 재미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문자를 외울 때면 온몸의 세포들이 번뜩이며 깨어나는 것 같았다.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집이 많이 기울었고, 동생 대학 보낼 돈도 없는데 무슨 여자가 공부냐며, 일이나 하라는 게 답이었다. 둘째 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을 다녔고, 셋째 언니도 방학 때마다 서울로 올라가 돈벌이를 하고 돌아왔다. 막내딸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정 공부가 하고 싶으면 실업계를 가라는 어머니 말에, 성희는 밤낮 할 것 없이 울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가장 먼저 사회에 나가 차디 찬 칼바람을 맞은 첫째 언니가 동생을 다독였다.
"고등학교는 가야 해, 그래야 뭐라도 할 수 있어."
첫째 언니는 대학에 진학하고자 한다면 그때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한 번 결정한 일에 번복을 하는 건 자존심이 상했기에 원하는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역시나 성적은 최우수였고, 아까운 인재의 기구한 팔자에 주변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그놈의 남동생이 뭐라고, 마음속엔 커다란 불씨가 화병이 되어 자리 잡았다. 성희가 당시 꽤 알아주던 복사기 회사에 입사해 홀로서기에 한창일 무렵, 부모님의 사랑인 남동생은 성적 미달로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똑똑한 딸은 갈 수 있어도 못 갔는데, 귀한 아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니, 이것 참 우스운 일이었다.
"억울해. 억울해 미치겠어!"
동생이 맞고 오면 쥐뿔도 없으면서 동네를 누비고 다니며 내 동생 때리지 말라는 엄포를 놓았던 멋진 누나였지만, 남녀로 대립될 때는 속이 썩어만 갔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게 인생이라지만, 이유가 성별이라는 게 억울했다. 부모님에 대한 울분이 쌓였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다 덮고, 오늘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문득 떠오르는 그날의 억울한 상황에 속상했지만, 열심히 살았다. 가정을 꾸린다면 절대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2의 인생을 열 한 남자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