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연우 씨는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 달을 본인 퇴근 후 찾아와 나와 저녁을 함께 했다. 모르는 척 병원 식당으로 내려가면 주변 시선 때문에 내가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 밖으로 나왔다. 그게 헛소문에 날개를 달게 만들 것임을 알면서도 최선이었다.
"밥 먹다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습니까?"
양도 어마어마했다. 송이만 보다가 송이와 완전히 대비되는 여성을 만나니 신세계였다. 요새 인기라는 먹방 유튜버로 데뷔하면 상당한 인지도를 쌓겠거니 가늠할 정도였다. 잘 먹는 게 보기 좋았지만, 아직 적응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엇, 어떻게 아셨어요? 사실 맞아요."
아. 실수했다. 어딜 가든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말씀은 틀린 게 없었다. 사실이라면, 난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전에 송이에게 비슷한 실언을 했다가 여태 쌓아 올린 좋은 관계를 다 망쳐버린 경험이 있었다. 가위에 자주 눌려 홀로 잠드는 걸 무서워함을 몰랐을 때 얘기였다. 그날 이후 절대 이런 소리는 농담으로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참 발전이라는 게 없는 인간이다, 나란 놈.
"그 표정은 뭐예요. 진짜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 완전히 역으로 당했다. 거기다 이젠 말리기까지 한다. 심각할 이유 없다며 마침 나온 국밥을 보고 박수까지 치는 해맑은 이연우 씨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엔 불편하기만 했는데, 이젠 나름대로 익숙해졌다. 입안 가득 뜨거운 순대를 오물거리는 이연우 씨는 왜 웃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턱으로 먹던 거 계속 먹으라는 시늉을 해 보인다. 그러면 개의치 않고 다시 밥에 집중한다.
'귀엽네.'
뭐? 뺨을 한 대 쳤다. 쳐도 너무 세게 친 바람에 짝 소리가 식당 내부를 울렸다. 시선 쏠리는 게 무엇보다도 불쾌한데, 자청해서 그 짓을 해버렸다. 하여튼 이연우 씨랑 있으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
"괜찮아요. 아무도 이상하게 안 봐요. 나는 차 선생님이 왜 그랬는지 알고."
내 생각을 읽었다는 소린가 싶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잠깐 잘못 든 생각이라고 정정해야 하나, 오해라든지 착각하면 곤란하다고 선을 그어야 하나 입안이 바싹 말랐다.
"이열치열이죠? 입안 뜨거울까 봐, 미리 볼 데워놓은 거. 그쵸?"
피식.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저를 들었다. 먹는 내내 웃음소리를 터트리지 않으려 왼손으로 허벅지를 꼬집느라 바빴다.
병원으로 돌아와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하려는데, 아직 가지 않은 이연우 씨가 주차장을 서성이고 있었다. 짐짓 심각해 보이는 표정은 처음이라 살짝 신경이 쓰였다. 어쨌거나 한 달을 봐서 그런지 못 본 척 차에 올라타기가 어정쩡했다. 내 차 앞을 서성이고 있기도 했고.
"왜 아직 여기 있습니까?"
그러자 얼굴에 드리웠던 검은 그림자는 확 걷히고 또다시 긍정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차 선생님! 마침 딱 선생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제가 아까 밥 먹으러 가면서 차키랑 휴대폰을 선생님 차에 두고 온 거 있죠? 병원 도착하고도 몰랐지 뭐예요?"
내가 어디 있는지 알면서 병원으로 올라왔으면 됐지, 거의 두어 시간을 기다리다니. 넘치는 배려심은 미련하기까지 했다. 송이라면 단박에 불러냈을 텐데,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지만 나라면..? 나였어도 이연우 씨처럼 행동했겠지. 사랑을 받는 입장인지, 하는 입장인지에 달려있는 패턴이었다. 그러니까, 이연우 씨는 내가 송이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두말 않고 차 문을 열었다. 차키와 휴대폰을 냉큼 집는 그를 불렀다.
"이연우 씨."
"네! 다 찾았어요, 고맙습니다!"
"이연우 씨."
"네?"
차에서 내려 문을 잠갔다. 이례적인 행동에 이연우 씨가 눈만 끔뻑끔뻑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참 솔직한 사람이었다. 나에게선 엿볼 수 없는 순수함이 가득했다.
"저 좀 태워주시죠. 피곤해서 운전을 못하겠네."
잠깐 버퍼링이 걸려 답답한 인터넷 창처럼 백지상태였다가, 이윽고 이해한 듯 하얀 표정에 다양한 색깔이 입혀졌다. 비가 오려는 건지 공기가 습기에 젖어 무겁기만 했는데, 내 주변에만 노란 햇살이 나타났다.
"네! 좋아요."
송이야, 난 이제 네 행복을 진심으로 빌 수 있게 됐어. 네 옆에 유시환 씨가 있어서도 아니고, 내가 지쳤기 때문도 아니야. 네가 행복하다고 하니까. 그게 단 하나의 이유야. 그리고 어쩌면, 착한 마음을 먹어서인지 세상이 나한테도 다른 행복을 주려는 것 같아. 파란색과 남색이 모난 데 없이 조화롭겠지만, 남색과 노란색이라는 보색이 만들어낼 또 다른 색도 기대가 돼. 너도 내 행복을 응원해줬으면 해. 훗날, 행복한 네 사람이 모였으면 좋겠어.
"차 선생님! 근데, 우리 가는 길에 야식 어때요? 저 기다리다가 에너지 다 썼어요."
넌 싫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모인다면 우리 밥부터 먹자. 이연우 씨는 아무래도 먹을 때 제일 예쁘거든. 아직 알아갈 모습들이 많지만, 지금 생각엔 그래. 이해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