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지. 내가 이렇게 시끄러운 사람을 알고 있던가.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처음 보는 게 확실했다.
"누구시죠?"
"아, 저는 이연우라고 해요! 친구 따라왔다가 놓쳐버렸지 뭐예요? 근데 여기 이렇게 딱! 잘생긴 의사 선생님이 나오시고 하니까 또 오고 싶어지네요. 혹시 만나는 사람 있으세요?"
간호사들이, 그리고 복도를 거닐던 환자와 보호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처음 겪는 당황스러운 경우에 말문이 턱 막혔다. 단정한 옷차림에 발랄한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촌스러운 작업 멘트는 전혀 어우러지지 않았다. 진중하지 못한 태도는 가벼워 보였다. 상대할 마음도 안 들었다.
"친구분 찾아갈 길 가시길 바랍니다."
환자 두어 명 둘러보고 퇴근할 생각이었다. 송이 때문에 놀라 저녁을 거른 탓에 오늘 한 끼도 먹질 못해 힘이 축 쳐졌다. 오전 오후에 배가 안 고프단 이유로 굶지를 말았어야 했다.
"음, 그럼 친구 찾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제가 여긴 초행길이라."
휴대전화는 뒀다 뭐하며, 안내만 따로 하는 직원도 있었다.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주변의 시선이 거슬렸다.
"어휴, 엄청 까칠하시네."
툴툴대면서도 이연우 씨는 나와 함께 걸었다. 같이 가겠다고 한 적 없는데 대놓고 옆에 붙어 쫓아오는 게 황당해서 어금니를 악 물었다. 세상엔 별에 별 사람이 다 있다지만, 초면부터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건 웬만하지 않고서야 어려운 일이었다. 멈춰 섰다.
"왜-"
"응? 네? 왜요?"
"왜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겁니까?"
말을 할 때마다 꼭 맨 앞에 감탄사를 붙이는 게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연기를 하는 사람인가 싶다가도 오버스러움이 부담되어 절로 몸이 떼어졌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멀어진 만큼 다가오는 뻔뻔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뒤로 돌아가면, 아까 온 길인데, 거기 유시환은 없었거든요."
유시환. 왜 전혀 예상조차 못했던 건지, 근본 없는 활발함이 너무도 똑같았다. 고로, 나는 한 공간에 있기만 해도 기가 빠질 거란 얘기. 이런 때에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단 하나였다. 도망. 펼쳤던 차트를 탁 닫고 냅다 달렸다. 입원실 앞이라 소리도 못 지르고 속삭이듯 나를 부르는 쉰소리가 안 들릴 때가 돼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송이가 퇴원을 하고 싶어 한다기에 그것까지 마무리하고 퇴근하려 했다가 완전히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병원 내 식당에서 빠른 저녁을 먹으려는데, 앞자리에 딱 앉아 버리는 아까 그 또라이, 이연우 씨다.
"선생님, 아까 그렇게 도망가시면 제가 못 찾을 줄 알았죠?"
초행길이라는 사람이, 친구를 놓쳐 이 길 저 길 헤매던 건 남일인지 능숙하게 식판 위 고기를 집어 먹으며 내게 친한 척을 해왔다. 무시하자는 생각으로 옆자리로 식판을 밀어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이연우 씨도 똑같이 행동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마찬가지로 내 시야는 이연우 씨로 가려졌다. 주변 동료들까지 수군대기 시작했다. 작은 오해조차 싫어 모두에게 무신경하게 보내왔던 지난 시간들이 고작 한 사람의 등장으로 무의미해지는 꼴을 보고 있자니 밥이 얹혔다.
"그쪽 제 스타일 아닙니다. 여기서 시간 낭비 마시고 유시환 씨한테 가보시죠."
그럼 그렇지. 여자 혼자 좋다고 들러붙은 거다 아니다로 나뉘던 여론이 당연한 전개에 피식 웃으며 이젠 이연우 씨를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다행이었다.
"옴맘마? 내가 어떤 스타일일 줄 알고 이래요?"
보통 이 정도 하면 그만두고 돌아가기가 태반인데, 망했다. 완전히 잘못 걸렸다. 한국에 돌아와 생활에 적응해나갈 때 송이가 몇 번 도와준 적이 있었다. 자주 가던 카페 직원이 나와 유사 연애를 한 탓에 스토킹에까지 시달렸는데, 송이 아니었으면 인류애마저 잃을 뻔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송이 옆엔 유시환 씨가 있었고, 이 여자는 그와 친구 사이다. 하여튼 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 놈이야.
"뭐가 됐든 그쪽한테 쏟을 시간 없습니다. 먼저 일어나죠."
"그런 거 안 해도 돼요."
반쯤 남은 밥은 아깝지 않았지만, 이연우 씨의 뒷말은 식당을 나서려는 나를 붙잡기에 충분했다.
"어떤 연애를 했던 건지 감은 잡히네. 차은형 선생님은 그냥 가만히 있어요. 가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오키?"
이연우 씨가 먼저 등을 보였다. 동료 몇 명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를 비웃는 건지, 드라마틱한 일에 동경을 표한 건지 중얼댔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병아리를 연상케 하는 연한 노랑빛 재킷이 모습을 감출 때까지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