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경험하다 2부 - 무통주사와 제왕절개
양수를 터뜨린 후, 문제가 발생했다.
양수를 터뜨린 후 대략 40~50분 정도 지났을 즈음 갑자기 아기의 심장 박동수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큰 폭의 불규칙한 그래프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다.’
상황은 심각해지고, 레지던트가 뛰어와 내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바로 담당의에게 호출을 했다.
급히 뛰어온 담당의는 아기와 나의 상태를 보며 심상치 않음을 확인했다. 그는 말했다. "아기의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제왕절개를 통해 바로 분만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곧 수술 들어가겠습니다."
**참고로 미국은 태아 위주의 출산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 산모가 제왕절개 분만을 스스로 선택해 진행할 수 있는 한국 문화와 달리, 태아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대부분 제왕절개 수술을 해주지 않는다.
마음의 준비는커녕 제왕절개는 아예 생각도 안 했는데, 아기의 상태로 인해 갑작스레 상황은 전환되었다. 아기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니 생각할 것도 없이 신속한 결단을 내려야 했고, 곧 제왕절개를 위한 준비가 진행되었다.
제왕절개이다 보니 임산부들 사이에서 3대 굴욕이라 일컫는 1) 내진 2) 제모 3) 관장 이 셋 중에 관장은 다행히도(?) 없었으나, 수술 부위 제모는 피할 수 없었고, 마치 ‘잔디인형’처럼(?) 들쑥날쑥 듬성듬성 깎인 상태로 OR (Operation Room; 수술실)로 이동되었다.
('임신 29주 차, 임신 후기 나에게 맞는 분만법 찾기' 참고 요망)
산모의 복부와 자궁을 차례로 절개해 분만하는 수술법이다. 국내 제왕절개 분만율은 35~40% 정도이며 마취시간 6~8시간을 제외한 수술시간은 1시간 전후이다. 대개 무통 주사를 맞게 되는데 이때 80% 정도의 통증이 경감된다. 수술 후 일주일 가량 입원을 통한 회복기간을 갖는다.
- 제왕절개는 자연분만에 비해 회복이 느리다.
- 제왕절개 출산을 하면 원칙상 다음 출산에도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 **의학의 발달로, 과거 제왕절개로 출산한 산모가 이후에 자연분만을 시도하는 브이백(VBAC) 출산이 가능하다. 단, 주치의와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진행해야 하며, 브이백 성공률은 60~80% 정도이다.
- 수술을 통한 분만법으로 과다 출혈 위험이 있다.
- 자궁이 수축하지 않는 자궁 무력증 위험이 있다.
- 장이나 방광의 유착 가능성이 있다.
- 피부 절개로 근막 감염과 자궁 감염 위험이 있다.
- 요로 감염의 위험이 있다.
- 다태아, 거대아 혹은 저체중아
- 36주가 지나도 역아(둔위) 일 경우
- 30주 후 태반이 자궁 입구를 막는 전치태반 경우
- 이전에 제왕절개 분만했을 시
- 자궁 파열 경험
- 성병이나 헤르페스로 인한 산모의 질 감염
- 심각한 임신 중독증
- 자궁근종 수술 경험자
- 태아의 불규칙한 심장박동
**나의 경우 태아의 불규칙한 심장박동에 해당된다.
- 탯줄이 태아보다 먼저 나올 경우
- 태아가 산도를 빠져나오지 못한 경우
- 태아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태반 조기 박리
- 태아 머리가 산모 골반에 비해 클 경우
OR(수술실)에는 신랑만 입장할 수 있다. 신랑과 입원실에서 수술실로 함께 이동했다가 OR 입구에서 신랑은 소독 및 수술복 환복을 위해 분리되었고, 나는 바로 OR에 입실해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상황이 긴박하다 보니 많은 의료진들이 투입되었다. 담당의와 마취과 의사를 비롯해 대략 12명 정도 되는 의료진이 투입되어 수술 준비를 진행했다. 입원실 침대에서 수술실 침대로 나를 들어 이동시킨 후 마취 약물을 정맥주사(IV)를 통해 투입시킨 뒤, 내 두 팔과 다리를 묶기 시작했다. 약물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그때부터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담당의와 마취과 의사는 수술 상황에 대해 설명을 했고, 계속 소통을 하며 수술 준비를 진행했다. 사실 이쯤 되니 말 그대로 멘탈이 붕괴가 되는 '멘붕'상태가 되어버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고, 질문에 맞게 대답은 한 건지 잘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처음 마주한 낯선 상황 속에서 예기치 못한 수술을 진행하려니 공포와 두려움이 극대화된 상태였다. 마취는 수면 마취가 아닌 하반신 부분 마취로 진행되었고, 의료진의 수술 준비가 완료되자 파란색 천으로 내 목 부분부터 천장 높이까지 가림막을 친 뒤, 신호를 주자 신랑이 입장했다.
"빨리 와 오빠, 무서워"
신랑 입장 후, 수술은 즉각 진행되었다.
여전히 사지(四肢)는 덜덜 떨렸고, 신랑과 의사소통 시에도 턱과 치아가 덜덜 떨려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였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랑은 계속 위로의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그 덕분인지 조금은 안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수술 중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어느 쪽에서 무언가 진행되고 있구나’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갑자기 하체 전체가 움직일 정도의 강한 압박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대망의 "응애"라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높이 쳐진 가림막에 소리만 들릴 뿐 아직 아기를 보진 못했지만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 둘 다 감격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기가 나왔나 봐, 우리 아기가 나왔어 오빠"
아직도 그 순간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감격이자 감동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태어난 아기는 감동에 젖은 우리 부부를 지나쳐 급히 이동해 대여섯 명 정도의 의료진에 둘러싸여 꽤 오랜 시간 무언가(?)가 진행되었다. 나와 신랑은 어리둥절한 채 요지부동 상태로 상황을 지켜봤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신랑이 호출되어 먼저 아기를 만날 수 있었고,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빠른 진행을 위해 양수를 터뜨렸을 당시, 아기가 뱃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본인의 변을 먹어, 변이 입안부터 꽉 찬 상태로 하마터면 기도가 막혀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그로 인해 심장 박동수가 불규칙했었고, 제왕절개를 통한 빠른 분만 진행이 아니었다면 기도 막힘으로 인해 위급상황이 되었을 거라며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현재는 위세척을 통해 변을 제거했고, 아기는 건강한 상태라고 했다.
신랑을 통해 확인된 제거된 변은 검지 손가락만 한 길이의 비커가 가득 찰 정도의 양으로, ‘큰일 날 뻔했구나’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긴급했던 상황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한다.
변 제거 뒤, 곧장 탯줄 제거를 위해 신랑은 다시 한번 호출되었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탯줄 자르는 연습을 해왔다는 신랑의 말마따나 실전에서도 실수 없이 한 번에 완벽하게 진행했다고 한다.
“참 잘했어요!”
탯줄 제거 후, 아기는 체중계에 올라 무게를 쟀고 그제야 드디어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출생 시 신상아의 평균 몸무게는 3.3kg이며 신장은 50cm이다. 출생 시 아기의 몸무게는 땀과 오줌 등의 배출로 인해 10%까지 줄어들 수 있다.
아직 제왕절개 봉합으로 수술이 진행 중이었던 터라 아기를 두 팔 벌려 안을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얼굴이 맞다음에 미소를 띠며 인사를 전했다.
"나의 아가야 반가워, 나오느라 수고했어!"
제왕절개 수술은 대략 한 시간 좀 넘게 소요되었다. 수술을 마친 뒤 다시 입원실로 복귀했고 신랑과 아기도 함께 이동했다. **미국은 출산 후 산모와 아기를 따로 분리 없이 한 공간에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시설이 구비되어있다.
이동된 아기는 상태 확인 후, 따뜻하게 데워진 아기 침대에 눕혀 출생증명서에 발도장을 찍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의상(배넷저고리)으로 착복한다. **미국은 병원에서 출생신고를 하기 때문에 아기 이름은 미리 지어놓는 것이 좋다.
그 뒤 아기는 내게 이동해 나의 가슴팍 위에 놓이는데 이는 캥거루 케어를 위한 Skin-to-skin 과정으로, 아기는 엎드린 자세로 나와 맞닿게 되며, 레지던트의 도움으로 본능적으로 젖을 찾아 먹도록 유도된다. 아기가 젖을 찾으면 보통 한 시간 정도 계속해서 젖을 물리는데, 아기가 스스로 그만둘 때까지 계속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제왕절개 출산 시 항생제 및 진통제 투여로 인해 며칠간 젖이 잘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이때, 방치하면 젖이 뭉치거나 심할 경우 젖몸살까지 생길 수 있으니 지속적으로 젖을 물리는 것이 중요하며, 마사지를 병행하면 더 좋다. (진통제나 항생제 투여는 모유수유 시 아기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왕절개로 인해 모유수유 자세가 불편하거나 통증이 있을 수 있으나, 자궁수축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보통 2~3시간 간격으로 모유수유를 진행하는 것이 산모의 회복에 도움을 준다.
1983년 콜롬비아 보고타 지역에서 시작한 케어 방법으로, 부족한 인큐베이터 시설을 보충하기 위해 엄마가 아기를 밀착해 안아주어 케어하는 방법인데 아기가 실제로 인큐베이터보다 더 빠른 회복을 보이자 캥거루 케어라는 이름으로 확대된 케어법이다.
이는 엄마와 아기가 피부를 맞대어 가슴으로 아기를 감싸 안아 엄마의 심장소리를 듣게 하고 엄마 냄새를 맡게 하여 아기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게 만드는 것으로 Skin-to-skin이라고도 불린다.
엄마가 상의를 입지 않은 상태로 약간 몸을 젖혀 누운 상태로 아기를 가슴 위에 올려 아기와 엄마 서로의 피부를 완전히 밀착시키는 방법이다.
- 출생 직후 1시간 이내 하는 걸로 시작해 수시로 해주는 것이 좋다.
- 만삭 출산한 아기는 생후 3개월, 미숙아의 경우 생후 1년까지 시행하는 것이 좋다.
위의 과정이 끝난 후, 드디어 대기하던 가족들이 입원실로 입장했다. 아기와 가족들이 인사를 마치자, 곧바로 레지던트에 의해 주사 접종 및 안약 투약이 시작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아기는 허벅지에 비형 간염인 Hepatitis B(Hep B) 주사를 접종하게 되는데,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결핵(BCG) 주사 접종은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출생 한 달 이내 결핵(BCG) 접종이 필수이나, 미국은 제외된다. 어릴 때 결핵 접종을 하면 결핵 반응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게 되는데, 미국에서는 결핵 환자 취급을 받으며 몇 개월 동안 알약을 처방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비형 간염 주사는 1차 접종으로 퇴원 후 한 달 후에 2차 접종을 하게 되는데, 이때는 종합병원 분만실이 아닌 접수 및 등록 시 병원 측에 공유했던 지정된 소아과 병원에 가서 접종하면 된다.
미국에서는 위와 같이 예방접종 기록 수첩을 제공하는데, 이 예방접종 기록(Immunization Recod)은 훗날 아이의 학교 입학 시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필수 서류 중 하나이다.
미국에서 아기에게 필요한 예방접종 관련 정보를 확인하려면, 미국 보건복지부의 질병관리본부 사이트에서 National Immunization Program(NIP)인 국가 면역 프로그램을 참고하면 된다.
이렇게 40주 + 1주 = 총 41주의 기나긴 여정은 마무리되었고, 드디어 나의 천사 같은 아기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처음 겪는 과정이라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컸는데 아기를 만나 결실을 맺는 순간 그동안의 어려움들은 환희와 행복으로 전환되었다.
엄마가 된다는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할 오묘한 기분이다. 행복하면서 동시에 강한 책임감도 갖게 되고 그러면서도 신랑과 더불어 또 한 명의 내 편이 생겼다는 든든함과 꼭 좋은 엄마가 되리라는 다짐 등.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메운다.
이제 입원실에서 회복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