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rry go round Mar 26. 2021

와인잔의 중요성

유난 떠는 그들의 진심

이미 일주일은 되었을, 남은 화이트 와인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날 위한 요리가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내가

날 위해 새우를 굽고, 가지를 굽는다. 


구워진 새우와 가지를 접시에 담고, 냉장고에서 꺼낸 와인을 잔에 따른다. 

넉넉히 넷은 앉아야 덜 쓸쓸할 것 같은 테이블에 혼자 앉아

오늘 하루 허기진 배를 채우겠다고 

오물오물 새우를 씹고, 가지를 씹는다. 

목을 축이려고 와인을 입 안에 한 모금 털어 넣는다. 


어,


뭐야. 

이거,


.. 어? 

이 향은.... 

... 그 날이잖아. 

그래 , 그 날. 


.. 그 날.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그 날.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던 그 시절의 , 그 날.

당신과 마셨던 그 날. 


코 끝이 시큼하다. 

와인의 향이 시큼해서일까,


아니지, 

와인의 향이 코 끝에 때려 박힌다. 

이 와인을 숱하게 마셨는데,

그 코 끝에 차오른 향이,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 둔 기억을 불러온다. 


며칠 전, 큰 맘 먹고 산 와인잔의 대한 영향일까. 

잔 안에서 피어나는 이 3만원대의 와인이

내가 그동안 그냥 그렇게나 퍼 마시던 그 와인이 아니었다. 

잔 하나로, 그 날의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와인잔의 중요성,

유난떠는것 같은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시켜보고픈,

지금 이 콧구멍에 맺힌 향기가 다 달아나기 전에

제 멋대로 손가락이 움직여 남기고 있는 

와인잔의 대한 내 경험담. 

이십대 중반 즈음에, 


와인이 배우고파서 와인 동호회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쨋거나 내 전공은 요리였고,

한창 와인 열풍이 불 때였고,

난 호텔에서 근무하는 조리사였고,

와인과 푸드의 마리아주 어쩌구 저쩌구가 그렇게나 유행어처럼 

업계에 떠돌던 때였다. 


아니, 무려 내가 "호텔"에서 일하는 "조리사" 인데

이 정도 고급 퀄리티의 요리들에 (뷔페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음_뷔페 비하 아님)

어울리는 와인 정도는 알아야 (_를 핑계삼아 술이 마시고 싶었는지도 모름)

하는것 아닐까? 

- 가 내 와인 동호회의 시작이었다.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아카데미도 검색해서 찾아봤으나

배움에는 도움이 되지만, 별로 좋은 와인은 안준다더라 ㅡ 하는

카더라 후기를 통해, 과감하게 나는

아카데미를 등록하려던 돈을 죄다 동호회에 쏟아 붇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무려 회당 5-10만원가량 하는 모임들을

계속 신청해서 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동호회에서 

"쟤 어느 그룹 손녀딸이라더라" 라는 요상한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아마도 두 번째 즈음 나갔던 모임이었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무튼 부르고뉴 와인 몰아마시기 - 뭐 그런 모임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 모임의 회비가 거의 20만원 가까이 했었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바로 그 전 모임에선 3만원의 회비를 내고 갔었고,

20만원의 회비를 내는 곳에서의 와인 맛이 궁금했다. 

아깝다 비싸다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 때 내 통장잔고에는 아카데미를 등록하려던 돈 500만원이 들어 있었고,

그 돈은 죄다 와인에 쏟아부을 생각이었어서 

(지금 하라면 할 수 있을까 싶다 어려서 호기부린걸까 싶고 하하)

뭐 한 번 즈음은 가보자 ! 해서 신청한 모임이었다. 

그 때 내 나이 겨우 스물 여섯이었다. 


삼성동의 어느 레스토랑의 도착해서

모임을 주최하신 분의 성함을 입구에서 말하고

예약된 룸에 들어서니, 그 곳은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모임에 오신 분들이 정말 거짓말 1그램도 보태지 않고

여성분들은 이브닝 드레스(?) 같은 차림이셨고

남성분들은 죄다 정장 차림이었다

나만, 청바지에 티셔츠, 백팩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정말로.


호텔에 아침조 출근해서 퇴근하던 스물 여섯의 조리사는

와인 모임에 가겠다고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 힐을 신고 스커트를 입을 생각은 못하니까. 

그리고 .. 차림새는 정말 생각 조차 하지도 못했으니까. 허허 


쭈뼛쭈뼛 빈 자리에 앉으니

내 앞에 와인잔만 4개인가 깔려 있었다. 

와 .. 이게 다 뭐지? 

휘둥그레 쳐다보니 눈치 챈 듯한 모임 주최자이신 분이

오늘 와인들은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음미하며 마시며 

그 차이를 느껴보는게 모임의 포인트라고 하셨다. 


그게 뭔데 ...

그런거 알지도 못해 ...

와인 그냥 맛있으면 호록 호록 마시면 되는게 아니었어? 

뭘 시간차 공격씩이나 해야 하는거지 ..?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보던 나는, 

보아하니 일단 내가 제일 막내인것 같아서

일단 입 다물고 네네 하면서 웃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것 같아서.


일단 분위기 파악부터 해보겠다고 

좌측 우측 눈알 굴리며 모임에 오신 분들을 둘러보며 파악하고 있자니

갑자기 다들 뭔가 주섬주섬 꺼내신다.

뭔가- 하고 가만히 보니, 커다란 원기둥 모양의 통에서 

얼굴만한 와인 잔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 저게 뭐야, 

ㅇㅅㅇ 

정확히 내 표정 이 표정이었다. 

저게 뭔가, 저 것이 무엇인가. 

아니 .. 무슨 잔을 , 집 가보라도 꺼내는 양

그렇게 커 어 어 어 다 아 란 와인잔을 들고 다니는거지?

너무 소중하게 다뤄서 잔도 반려로 키우나 싶었다. 

그만큼 당시 내가 느끼기에, 와인잔을 너무나도 소중히 꺼내시던 거였다. 


그 커어다란 잔에, 오늘의 모임 리스트에 있는 와인을 소중히 받고

계속해서 잔을 굴린다. 

굴리고,

또 굴린다. 

한 모금, 아니 정말 한 방울, 맛 보는듯 하다가

다시 굴린다. 

도르르

또 굴린다. 

도르르르 


휘 

휘 ㅡ


왜 저렇게까지 하는걸까. 

궁금하지만 아직은 내적 낯가림이 가시지 않았을 때라

질문 해놓고 핸드폰으로 검색해봤다. 


- 와인잔

- 비싼와인잔 

- 명품와인잔

- 고급와인잔


이 때, 처음 알았다. 

잔 하나가 몇 십만원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사는 사람들도 엄청 많다는 것을.

결국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옆에 앉은 일행 분께 물어 보았다. 


"저.. 제가 정말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ㅡ 그 ... 뭐가, 다른가요?"

"...네?"

"아니 그러니까 그... 달라요? 잔을... 왜 굳이 들고 다니세요? 여기 레스토랑 와인잔 이렇게 많이 주는데"


다들 하하 웃고 난리가 났다. 

어이구, 아가. 그게 궁금했어? 

부처님같은 인자한 미소를 띄운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그 때 당시 내 기분이 나빴냐고 ? 

아니 전혀, 정말 전혀 나쁘지 않았다. 

그걸 모르는게 부끄럽다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정말로 나는, 정말 너무나도 진심으로, 너무너무 궁금했기에. 


"마셔봐요"

"..네?"

"이 잔에 들어 있는 와인이랑, 그 잔(레스토랑에서 준 잔)에 들어 있는 와인이랑,

같은 와인이에요. 한 번 마셔봐요. 내가 백 번 설명해도 모를테니, 맛을 봐요. 요리 한다면서. 

딱 맛을 보면, 왜 이런 유난들을 떠는지 이해 할 것 같아서요."


옆 자리에 앉아 계시던 분께서 내게 본인의 잔을 권해 주셨다. 


그래, 비싼데에야 이유가 있겠지.

근데 뭐 그렇게 큰 차이가 있겠ㅇ...? 


... 있더라. 

있었다. 

와 ... 정말 너무나 , 너무나 놀랬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그렇게나 배웠는데,

와인은 맛보다 향기로 마시는 거라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던 그 이론을,

이 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차원이 달랐다. 


내 잔에 있는 와인이 딸기인가 - 싶었다면,

옆 자리의 분의 잔에 들어 있는 와인은

차디 찬 흐르는 물에 딸기를 스륵 스륵 씻어서, 

그 물의 미네랄 가득한 싱그러움과 딸기를 씻을 때 나는 딸기의 향내,

그리고 그 먹음직스러운 딸기의 꼭다리를 손에 쥐고 

한 입에 먹기도 커서 크게 한 입 앙 ㅡ 베어 물었을 때,

입 안 가득 퍼지는 딸기 과즙이 혓바닥 목구멍 구석구석 들어 차서

우왕 딸기다 ! 딸기를 한 우큼 내가 지금 퍼먹었구나! 

하는 그런 맛.


(과장하는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진심이다. 맛에는 진심인 사람입니다)


어버버

어버버버

정말 내 표정이 딱 그러했을 것이다. 


"조금은 이해가 되요? 표정을 보니, 조금은 알게 되었나 보네. 하하"


".. 아니, 이게 진짜 잔 때문이에요? 그럴 수가 있어요? 아니 잔이 크고 작은 차이인가? 

죄송해요 진짜 제가 잘 몰라서 그래요. 이게 뭐, 그렇게나 큰 차이에요? 솔직히 전 다 허세라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 있죠. 굳이 잔을 들고 다니며 마시는게, 유난스러워 보일 수 있고. 그럴 수 있어 충분히.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근데 아마 오늘 이 자리가 끝나고 나면, 가는 길에 와인잔 검색하고 있을걸요.'


와인은 향기를 마시는 술이라는 것을, 그 날 절실히 깨달았다. 


사실 그동안 모르는걸 아는 척 하는 건 나였다.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알 턱이 없었지만

겪어보지도 않고서, 그냥 음 ~ 역시 와인은 향기로 마시는거지

꽃향기가 가득하네 ~ 하는 허세는 내가 부리고 있었던 거였다. 


그 날 이후, 난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리델 소믈리에잔을 갖게 되었지만

무튼 그 날의 기억은 나에게 꽤나 충격적인 기억이자 추억이다. 


후에 조금 더 와인의 대해 알게 되고, 

그에 따르는 지식을 더 얻게 되면서 알게 된 것으로는

고기 하나 써는 데에도 칼의 장인이 있고,

요리를 할 때 매일 쓰는 도마에도 장인이 있듯,

잔 하나 가지고도 유명한 브랜드도, 명품도 많더라는 것.


왜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라기올 나이프와 리델 블랙타이 잔을 셋팅하는지,

도구에 따라 즐기는 음식과 와인도 천차만별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도 이젠 중요한 자리에선 라기올 커트러리를 셋팅하고

리델과 잘토잔을 꺼내 테이블을 셋팅하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요리에는 르쿠르제나 스타우브의 주물냄비를,

바카라의 유리 글라스를 함께 셋팅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

정말 그 와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아주 솔직하게 와인을 마시면 좀 있어 보여서, 

약간은 허세가 가득한, 그 낭만을 즐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와인의 맛과 향의 힘을 매우 강력하게 느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와인들은

되게 비싸고 유명한 와인들도 아니고,

그 맛과 향의 대한 추억에 치우쳐,

머릿속에 각인된 와인들이다. 


그 때마다, 잔의 역할도 매우 톡톡히 한 몫을 했고,

마침 오늘, 

정말 오랫만에,

슈냉블랑을 마시며, 잘토 잔 한 가득 차오른 슈냉블랑의 향기에

지나간 나의 와인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덕분에 , 레시피 정리, 일이 아닌, 

오랫만에 내 글을 이렇게 쓰고 있게 된 것이기도 하고. 


비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던가. 

그 무엇이든, 어떤 분야의 어떤 것들이던, 다 그렇긴 하겠지만

정말, 


와인 잔은 의외로 많이 중요하다. 

생각보다 아주 많이 .

허세 부리려는게 아니다. 


3만원짜리 슈냉블랑에서 내 추억을 소환한 잔은 잘토 버건디 잔. 

지금은 내 손을 떠난 리델 소믈리에잔이 다시 갖고 싶어졌다. 


그 내 소중한 마음 깊은 소중한 추억들을 이렇게 꺼내 준다면,

그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으리. 


슬프고도 애달프고 소중한 추억이

와인의 향기로 소환되어 애틋한, 그런 밤이다. 


#잘토 #잘토잔 #리델 #리델소믈리에잔 #리델잔 #와인잔 #잘토버건디 #리델블랙타이 #와인잔의중요성 #와인잔추천 #와인잔이끼치는영향 #와인 #와인스타그램 

작가의 이전글 오븐. 어떻게 쓰는건데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