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시간의 비행 여덟 시간의 헤메임 끝에 누린 첫 번째 호사
포드 차를 부웅 ㅡ 몰고, 파머스 마켓에 도착했다.
밤 10시. 한국 같았으면 여기저기 네온사인이 거리를 환하게 밝혔겠지만, 여기는 도심도, 한국도 아니다.
그렇다. 난 지금 영등포 양평동에 내 작업실 근처 슈퍼마켓에 나온 게 아니다.
LA 베버리힐즈에서 살짝 빗겨 난 어느 타운의 푸드마켓이다.
친한 지인들과의 미국 와이너리 여행을 계획하고,
7월의 첫날. 다른 일행들보다 3일을 먼저 미국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온전히 나만의 여행을 안 한지 무려 7년의 시간이 흘러가 있었고,
도저히 이렇게 저렇게 해도 도통 짬이 안 나던 터라, 일행과 함께하는 일정에 3일을 더해서라도
오롯이 홀로 여행하는 시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나의 여행의 목적은 그리 방대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어느 곳을 가던, 그곳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보고 느끼는 것,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람 냄새를 맡고 그들의 삶 속의 일부가 되어 살아보는 것 , 단지 그게 전부이다.
그렇기에 , 요리를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가장 먼저 발길이 향하는 곳 역시 늘 시장이나 마켓이 된다.
먼저 도착한 LA에서 3일간 지낼 스테이 홈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마트가 있었고,
그래도 타지에 인적이 드문 곳이라고 걸어서 나갈 용기가 없던 나는, 차를 가지고 마트로 향하게 된 것이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 혼자서 단 3일이라도 보내는 여행에 들떠 비행시간 내내 잠들지 못한데다,
공항 도착 후 어리바리 여덟 시간이 넘는 헤메임 속 렌터카를 양수받아 도착한 숙소.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기력이 다했던 터였지만,
그렇지만,! 그대로는 도착한 첫날의 밤이 너무나도 아쉬웠던 거다.
평소 "아무거나 맛없는 걸로 배 채우고 돈은 돈대로 쓰기" 를 너무나도 싫어하는 나는,
거의 하루 종일 고생한 나를 위해,
그리고 오랜만에 오롯이 홀로 떠나온 여행의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장을 봐서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곁들이기로 했다.
" 캬 ㅡ "
감탄이 절로 터져나왔다. 딸기, 산딸기, 블루베리, 블랙베리,
온갖 베리란 베리는 다 있었고, 과일은 한 끼 식사 분량으로 종류도 다양하게 소포장되어 진열되어있었다.
수박, 종류별로 다양하기도 한 멜론들, 망고, 파파야, 수많은 베리 종류.
나란히 나란히 작은 투명 용기에 담겨진 과일들.
" 이거 봐, 서울에서 네가 가던 마켓 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
" 실컷 즐겨! 네가 원하는 무엇이던 맛볼 수 있어! "
마치 과일들이 시끌시끌 떠들며 서로 자기를 데려가 달라 노래하는 것만 같았다.
과일이라면 눈이 뒤집어지는 나는 결국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베리가 가득 담긴 컵을 하나 카트에 담았다.
"바질을 그냥 화분채로 이렇게 파는 거야?!"
"토마토 봐. 세상에 줄기에 주렁주렁 달려서 무더기로 쌓여있네!!! "
넋이 나가서 우와 우와를 연발하다 보니
아차차... 밤 10시 넘어 웬 동양인 여자애가 혼자 귀신 쓰인 이 마냥 듣는 사람도 없는데 홀로 장 보러 와서는
떠들 떠들 시끄럽게도 홀로 감탄을 외치며 돌아다닌 것이다.
아이고 부끄러워라..
요즘은 한국 마트도 좋아져서 웬만한 허브나 식재료들을 다양하게 판매하지만,
여기에 비할 건 전혀 아니더라는 거다.
래디쉬 (서양 무) 도 다발로 열무처럼 쌓여있고,
온갖 식재료들이 쇼케이스에 마치 나무에 열린 열매들처럼
한 가득 쌓여있었다.
부처 코너에는 온갖 종류의 고기들이 너무나도 잘 손질되어 정렬되어 있었고
역시나 서양 쪽을 여행하다 보면 넋이 나가는 부분은 올리브와 치즈!!!
혼자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어떤 걸 사가야 하나 신명 나는 고민을 있는 데로 해 댔다.
나에게는 어느 소호거리 명품이 즐비한 거리보다도 여기가 더 쇼핑의 천국일 수밖에..
그러니 다른 사람들 시선은 잊은 채 피곤함도 잊고 카트를 끌고 이리저리 마구 돌아다녔다.
정신없이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마트에 입성한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이러다 문 닫을 시간에 쫓겨나지 싶어서, 내일 다시 와보겠다 생각을 고쳐먹고,
지금 당장에 필요한 것들만 후다닥 사서 나가기로 했다.
시간이 너무 늦었던 관계로, 메뉴는 간단한 부르스케타로 결정.
가져온 노트북으로 줄리앤 줄리아를 틀어두고, 영화 속 줄리가 만들었던 것처럼
버터를 듬뿍 발라 노릇하게 빵을 앞뒤로 구워, 토마토와 바질 버무린 걸 빵에 듬뿍 얹어 먹을 생각에 신이 났다.
거기에 이 곳에는 한국과는 달리 딱 먹기 좋게 아주 잘 익은 아보카도가 한 가득 쌓여있으니,
아보카도도 함께 곁들여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카트에 두어 개 담았다.
식재료는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이번엔 와인.
그냥 동네 집 앞 마켓을 왔는데, 서울의 대형마트 보다도 와인의 종류도, 수량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싼 가격!!
한국에서였으면, 이래저래 할인하고 장터 열릴 때 산다고 해도 손을 덜덜 떨며 사야 하는 와인들도
여기서는 너무나도 저렴하게 구할 수가 있었다.
수많은 와인 앞에 또다시 행복한 고민에 빠진 나.
그래, 오늘은 너무나도 수고한 나를 위한 하루.
미국에 왔으니, 미국 와인을 마셔야지 ㅡ 싶었다가도,
어차피 3일 뒤면 , 일주일간 신명 나게 미국 와인만 마구 마셔댈 테니,
오늘은 그냥 손에 잡히는 걸로 마시기로 했다.
오늘 나의 시선에 들어온 건, 뵈브 끌리꼬 하프 보틀.
옐로우와 오렌지 색상의 중간 그 언저리에서, 화려한 컬러의 라벨을 자랑하는 와인이다.
와인의 라벨 색상 덕분에, 한국에선 호텔에서 진행되는 할로윈파티에 자주 등장하는 와인이다.
사실 너무나도 유명한 와인이고, 숱하게 많이 봤지만
이상하게도 여태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다.
현지 와인은 아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내가 이걸 사서 마셔볼까 싶어서,
뵈브 끌리꼬 한 병과 피치니 레드 한 병을 카트에 담았다.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마켓 입구에서 나는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와 ㅡ 마켓에서 꽃도 판매하는구나. 한국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집 앞 마트에서 꽃도 이렇게 같이 팔면 너무 좋을 텐데!"
역시나 감탄에 그치지 않았던 나는,
그중에 꽃을 골라 들고 와 카트에 함께 담았다.
아 ㅡ 3일 동안 머무를 곳인데, 꽃도 샀다. 큭큭
이런 내가 왜 이리도 우습던지 ㅡ 하하.
옷이나 가방을 산 것도 아닌데, 몇 개 담지 않은 카트에
와인과, 올리브 오일 좋은 것과, 꽃이 담기니
쉽게 예상 쇼핑 비용을 넘어갔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3일간 있을 숙소는, 한국에서 미리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하고 온 홈스테이.
집주인은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였는데, 후기에 주인의 대한 평이 너무나도 좋아서 믿고 3일을 예약하고 왔다.
1층이 거실과 주방이 있고, 2층에 방 두개와 화장실이 있었는데,
하나는 주인이 쓰는 방이고, 하나를 셰어 해주는 집이었다.
침구도 깨끗하고,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었고, 욕실에서 사용하는 용품들도
마치 호텔처럼 일일이 따로 덜어 메모를 붙여 가지런히 정돈하여 준비해주었다.
늦은 시간이었는데, 집주인인 그 친구는 친구들과 놀러 나간다며 집을 나섰다.
제일 먼저 꽃을 풀러 손질해서 , 높이가 좀 높은 컵 두개를 꺼내 물을 담고 꽃을 꽂았다.
하나는 내가 묵을 방에, 하나는 1층 거실 테이블에 놓아두었다.
1층 주방에서 후다다닥 요리를 해서 ,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와인도 꺼내서 내 방으로 올라왔다.
거의 24시간째 깨어있는 중이었지만, 잠이 올리 없었다.
줄리앤 줄리아를 틀어서 영화를 보며, 와인을 한 잔 따라 드니
여기가 바로 지상 낙원이로구나 ㅡ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노트북은 옆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고, 영화는 끝나 있었다.
샴페인을 한 두 잔 마시고 나니 급격히 잠이 쏟아졌던 모양이다.
다 먹지 못한 채 하나 남아있는 부르스케타. 한 잔 정도 분량이 남아있는 샴페인.
정신을 차리고 , 일단 먼저 씻고 나와서 1층 주방에 내려가
어제 샀던 과일컵을 냉장고에서 꺼내 들고 다시 올라왔다.
하룻밤 새 거의 사라진 기포였지만, 남은 와인을 마저 잔에 따랐다.
엄마 아빠도 못 알아본다는 모닝 술.
여행지에 왔으니 괜찮지 뭐 ,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한 잔의 와인을 들이킨다.
완전히 기포가 사라지진 않았다.
어젯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기분 좋은 목 넘김이 있다.
즐거운 여행이 되어야지. 너무 빡빡하지 않게,
여유롭게, 이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 속에 어우러져 나도 LA에서의 나날들을 보내야지.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어떤 여행이 될까 ㅡ
* 토마토 부르스케타 * [3개 분량]
재료 : 바게트 빵 두툼하게 썰은 것 3쪽 , 토마토 1개, 양파 1/4개, 바질 잎 5-6장, 버터, 설탕,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 레몬 또는 레몬즙 1T, 아보카도
1. 바게트 빵은 되도록이면 조금 더 두툼히 썬 것으로 준비한다. 팬에 버터를 두르고, 빵을 앞 뒤로 골고루 노릇노릇하게 구워준다. 절대 센 불에 해선 안된다. 꼭 중 약불에서 구워줘야 한다. 빵을 구워줄 때, 오일을 살짝 더해주는 것도 좋다. 버터만 녹인 팬에 구울 경우 빵이 쉽게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빵이 빠른 속도로 버터를 흡수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버터를 더해주면서 앞 뒤로 황금빛 색이 나올 때까지 구워준다. 맛있게 먹고 싶으니, 칼로리 걱정은 잠시 넣어두자.
2. 믹싱볼에 엄지손가락 정도 되는 크기로 조금은 큰 듯하게 썬 토마토와, 다진 양파, 설탕 한 스푼, 레몬즙 한 스푼, 소금 한 꼬집, 통후추 두어 번 갈아 넣어 섞고, 올리브 오일 한 바퀴 휘 돌려주어 섞는다. 바질 잎은 포개어 돌돌 말아 채 썰듯 썰어 토마토에 함께 섞어준다.
3. 아보카도는 고를 때, 너무 딱딱하지 않은 약간 말랑한 것으로 골라야 한다. 잘 익은 아보카도는, 검은색을 띠는데, 이럴 경우 아보카도를 까기 위해 칼을 쓸 필요가 없다. 손으로도 쉽게 껍질이 벗겨진다. 칼로 아보카도를 절반으로 칼집 넣어 손으로 양 쪽을 잡고 살짝 비틀면 쉽게 반으로 갈라진다. 가운데 씨는 칼로 쿡 찍어서 살짝 돌려 빼내 주면 손쉽게 빠진다. 한 번 더 등분해서 1/4등분이 된 아보카도의 껍질을 벗겨내, 초록색 등 부분이 나를 향해 보이게 두고, 칼로 슬라이스 해 준다.
4. 잘 구워진 빵 위에, 아보카도를 먼저 얹어주고, 버무려 둔 토마토를 수저로 듬뿍 얹어준다.
5. 칼로리 걱정은 내일 하며, 와인과 함께 맛있게 먹어준다!
[와인 이야기] 뵈브 끌리꼬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 뵈브 클리코 사에서 만들어진 샴페인이다. 피노누아와 피노 뫼니에, 샤도네이를 블랜딩 해서 만들어진 와인이고, 각종 베리류의 과일이나 망고와도 잘 어울린다. 가장 기본적인 옐로우 라벨은 새콤하고 톡 쏘는 맛과 향 때문에 유독 여자들이 더 좋아하는 와인이기도 하다. 하룻밤이 지나는 동안에도 기포가 완전히 사라 들지 않았으며, 역시 명실상부 프랑스 샴페인의 힘을 보여준다. [출처 : 네이버 음식 백과 + 저자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