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 그 열 아홉 번 째
나는 식물을 좋아한다.
본가에 가면 아직도 우리 집엔 정원이다 싶을 정도로 온갖 난과 화분들이 그득하고,
계절마다 열심히 부모님은 텃밭에 무얼 자꾸 심으신다.
열무도 심고, 상추도 깻잎도 고추도 심고,
집에는 늘 화분이 많았다.
그렇게 서로 맞니 안맞니하고 다투시는 부모님도
모든 것이 다 안맞는 취향 중 유일하게 맞는 취미가
등산하기와 화분 키우기 였다.
그래서 우리집은 언제나 일요일 오후가 되면
항상 화장실에 온ㅡ 집안의 화분들을 죄다 옮겨서
식물들 밥주는(?) 시간이 있었다.
샤워기로 화분에 물을 흠뻑 주고는
물기가 어느정도 스며들고 빠지면
다시 제자리를 찾아 화분들을 갖다두거나
볕이 좋은 날은 굳이 굳이 그것들을 들고
옥상에 올라가 다같이 광합성이라도 시켜주는 것이었다.
매 주 일요일마다 반복되었던 이 화분 물주기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하기가 싫었다.
식물도 생명이라는데,
어린시절에는 그게 크게 공감되지 않았고,
눈이 있고 코가 있는것도 아닌 멀뚱허니 그 화분속에 담겨 서 있는
저 나무들을 대체 왜 이렇게 집안에서 많이 키우는지도 모르겠고
일단 일요일 오후에는 과일이나 먹으며 티비 프로 재방송 같은걸 봐야하는데
화분에 물 주는 작업은 족히 삼십분에서 한 시간 정도씩은 걸렸으므로
그게 정말 너 ㅡ 어 ㅡ 무 ㅡ 나 ㅡ 귀찮고 싫었다.
하지만 온 집안이 초록초록한 덕에
집은 썽그렁한 기운이 없었다.
족히 삼십개는 되는 화분들 덕인지
집에 볕도 더 드는 것 같고
물을 흠뻑 머금은 흙냄새가
집안을 자연 속에 들어와 사는 것 같은 공기를 느끼게 해주고는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본가에서 나와 살면서
그래도 어린 시절의 가닥(?)이 있으니 나도 잘키우겠다 싶어서
화분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내 손을 거친 수많은 화분들은 얼마 못가 그 생명을 잃고 말았다.
물도 적당히 준 것 같고, 때론 영양제도 놔주기도 했는데
왜들 그렇게 쉬이 내 곁을 떠나간건지...
몇 번을 반복한 끝에 식물 키우기는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더 이상 내 손에 말라비틀어져가거나 뿌리가 썩어 문드러지며 죽음을 맞이하는
식물대참사를 이제 그만 막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가족을 이루고 살다가 다시 혼자가 되어 나와 사는 지금
작은 공간에, 살아 숨쉬는게 내 존재 하나뿐이라는게 견디기 힘들었던 때에,
지인이 힘내라고 선물로 작은 미니화분을 하나 보내주었다.
이젠, 그 집안에 생명이 있는 건 두 개가 되었다.
나와 미니 화분 하나.
그 화분은, 나더러 마치 잘 키워달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쌩쌩하다가도, 어느날 잎이 완전 축 쳐져서 말라가는게 눈에 훤히 띄게 보이면
물을 흠뻑 적셔 주었다. 그럼 거짓말처럼 반나절만에 다시 쌩쌩해지곤 했다.
덕분에 내가 언제 물을 주면 되는지 화분의 신호로 알 수 있었고,
지금은 처음 받았을 때보다 무려 세 배의 사이즈로 커졌다.
저 미니화분을 키우면서 용기가 생긴 덕에
조금은 사이즈가 큰 화분을 하나 들여놓게 되었다.
잎이 넓적하고 큰 몬스테라는
가끔가다 물을 주면 정말이지 너무나 쑥쑥 잘 자라났다.
언제인지 알지도 못하게 이파리가 쑥쑥
처음에 잎 4개로 나에게 왔던 몬스테라가
몇 달 사이에 지금 벌써 잎이 8개반이나 되어 자라났다.
식물은 죄다 죽이는 똥손인줄 알았는데.
세상에 내가 화분에게서 위안을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두 화분이 내뿜어주는 생명력 덕분에
나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식물들에게 말을 걸어주며
너희가 있어서 내가 힘을 낸다고
마치 강아지 고양이라도 한 마리씩 키우는 듯
그렇게 식물 키우기에 정을 붙이게 되었다.
내일은 출근길에 바질 씨앗과 로즈마리 화분을 주문해야겠다.
차근차근 키우며, 내 곁에 생명력을 가진 친구들을 좀 더 두어야지.
씨앗부터 온 힘을 쥐어 짜내며 뿌리를 내리고, 대가 생기고, 잎이 생길
바질을 보면서, 또 나도 좀 더 힘을 내어 용기있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
뭐든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되는 거였다.
그동안 내 곁을 떠나간 숱한 화분들아, 미안했다.
앞으로 내 곁에 있어주게될 식물 친구들에게
그동안의 혼까지 듬뿍 넣어 키워줄게.
이런 부족한 내 곁에서도 잘 자라줘서 고마운 식물 친구들아.
다음달엔 언니가 영양제라도 한 대 씩 꼭 놔줄게. 너무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