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 그 열 일곱 번 째
선선하다 못해 서늘한 바람이 ,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늦가을이다.
아마도 곧 겨울이 오겠지.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덕에,
올해 여름은, 폭염이 올 새도 없이
기록적인 장마가 거의 한 달동안 지속되었으며
그렇다보니, 올 겨울 대체 얼마나 추울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걷기.
세상에서 가장 ㅡ 돈이 들지 않는 운동.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아주아주 최소한의 운동.
다행히도 아직 세상은
개인 비행 수단까진 활성화(?) 되지 않아서
누구든간에 하루에 단 몇 십 걸음이라도
걷긴 걸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상하게 난 한 살 한 살 먹어갈 수록,
집에서 학교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유치원은 걸어서 10분 거리.
초등학교는 걸어서 20분 거리.
중학교는 버스타고 20분,
걸어서는 40분 정도의 거리.
고등학교는 버스타고 1시간.
걸어서 집까지 가본 적은 없고..
대학교는 대중교통 이리저리 갈아타고 1시간 30분.
그 당시 학업과 일을 병행했었는데,
그때가 정말 압권이었다.
집에서 직장까지 1시간.
직장에서 학교까지 다시 1시간.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1시간 30분
서울을 피타고라스정리마냥
삼각형을 그리며 출근등교하교를 해내었다.
어마어마 했다. 다시 다니라면 절대 못 다닐 것 같다.
한 번도 집이 역세권이었던 적은 없고,
언제나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이동,
다시 지하철을 타야만 목적지를 갈 수 있었기에,
어디를 이동하든 언제나,
대중교통과 튼튼한 내 두 다리는 필수였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 동안에
가위바위보를 하며 저 나무에서 저 나무까지
가방들어주기 같은 놀이를 하며
하교 했던 생각이 나고,
가장 아빠와의 갈등이 극에 달해
방황이 심했던 중,고등학교때는
일부러 지하철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다니기도 했다.
걷는 시간만큼은,
내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는 시간들 이었고,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 이었고,
차분히 자박자박 걸으며,
오늘의 일과와, 내일의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너무 힘들고 지칠땐,
하염없이 걸으며 펑펑 울기도 했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면,
그 노래를 반복해서 계속 듣고 싶어서
일부러 천천히 걷기도 했다.
돌아보면, 집에 들어섬과 동시에
나만의 시간이 없었던 학창 시절에
유일하게 내가 혼자서 나만 쓸 수 있는,
온전한 내 것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십대 중반부터 일 때문에 운전을 시작하게 되면서
일이 많거나 지치거나 울고 싶거나 슬퍼질때면,
드라이브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어딘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길이 있으면 무작정 운전을 했다.
운전도, 걷기도,
어딘가로 내가 가야 할 길을 몰라 방황하게 될 때면,
그렇게 무작정 일단
앞으로 내딛고 봤는지도 모르겠다.
걷는다.
아침 출근길에 조금은 서둘러 나가며
집에서 역까지, 다시 역에서 회사까지
조금은 천천히 걸으며
이 계절을 느끼고 싶어서 차분히 자박자박 걷는다.
걷는다.
저녁 퇴근길에 조금은 느지막히 퇴근해선,
퇴근시간을 피해
조금이나마 덜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역에 내려 집까지는 5분.
일부러 일부러 돌아 돌아
30분을 걷다 집에 들어간다.
내 곁을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과, 강아지와, 숱한 가게들과, 그 안에 주인들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며,
왁자지껄 모여 노는 사람들 틈을 지나서
혼자서 열심히 걷는다.
때로는 쓸쓸하고,
시리고,
아픈 기억들이
스믈스믈 올라와도
일단 걷는다.
그렇게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눌러가며,
앞으로 앞으로 걷는다. 나아간다.
생각이 많아질때면, 일단 몸을 움직이라고 했다.
여러가지의 방식 중에,
나는 청소하기와 걷기를 택한다.
그것도 부족하면 힘들때까지 운동을 해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어도 본다.
야근할 거리가 잔뜩 들어있는 가방을
어깨뼈가 짓눌리듯이 그 무게를 짊어 진 채로,
이 정도는 내가 감내해야 할
삶의 무게보다는 가볍다고 생각하며
걷고 뛴다. 앞으로 나아간다.
내 인생은 사실 지금
뒤로 걷기를 하고 있을지 몰라도.
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아니니까,
뒤로 걸으면 좀 어때.
돌아 돌아
결국은 가려던 곳으로 가면 되는거 아닐까.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ㅡ
그러니까 걸어야지 오늘도 내일도.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지나간 시간 탓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뒤로 걷든, 앞으로 걷든, 일단 걷는다.
운동화 끈을 조여 메고,
출근길을,
퇴근길을,
어떤 날엔 시내를,
어떤 날엔 한적한 시골길을,
어떤 날엔 높은 산봉우리를,
어떤 날엔 철썩이는 파도가 치는 바닷가를,
걷고 걷고 걸으며
살아가고 생각하고 행하다 보면
적어도
어제의 나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으며.
내 두 발에 양껏 힘을 가득 실어
걷는다.
오늘보다 조금은 더 나아질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