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 그 열 여덟 번 째
한 달에 한 번 , 고생했다 ㅡ 하고 나에게 상 주는 날.
바로 월급날이다.
월급이 입금되고,
빠져나갈 것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한 가지.
" 퇴근하고 마라탕 먹어야지. "
그냥 별다른 이유는 _
(있긴 하지만, 엄청 특별한 건) 아니고.
단지 월급날이 되면 마라탕, 이라는 공식이
스스로에게 생겼을 뿐이다.
엄청 좋아하지만, 딱 하루. 월급날에만 먹는다.
좀 _ ㄸㄹㅇ 같지만 뭐 _
아무튼, 맞다.
난 엄청난 마라중독자이다.
셋이서 비벼 먹어도 배 찢어질 만큼의
비빔밥을 비빌 수 있을것만 같은
커 ㅡ 다란 양은그릇에,
집게로 마구마구 재료들을 담아 넣는다.
아삭아삭 생 걸로 된장 찍어먹어도 맛있는 배춧잎,
끄트머리만 살짝 잘라내고,
꼭 심지까지 다 먹어야 제대로 먹은 것 같은
엽록소 가득한 초록초록 청경채,
집게 한 가득 집어 넣어도,
먹다보면 부족한 것 같은 숙주도 한 줌 가득,
새송이 버섯, 팽이 버섯, 느타리 버섯, 목이 버섯
아주 버섯이란 버섯은 죄다 담고,
두부의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해준
푸주와 면두부도 한 집게씩
여러가지 모양의 피쉬볼 중
오로지 두부볼만 두 세 개,
새우도 두어마리 넣고,
마라에 빠지게 한 주범 분모자 면과 중국 당면,
마지막 포인트, 고기는 넣지 않는다.
라면사리도 안 넣는다.
옥수수면은 어쩌다가 아주 가끔, 찌끔만.
육수 맛도 선택할 수 있는 집이면,
깔끔하게 먹고 싶어 땅콩육수는 빼 달라고 한다.
단계는 ㅡ 보통 2단계에서 3단계.
이렇게 그득그득 하나 그득 담고
저울을 달아보면 ㅡ
언제나 그렇듯이 , 2인분이다.
혼자 오셨어요 ?
네. 혼자예요.
포장이세요 ?
아니요. 먹고 갈거예요 .
내 그릇만, 언제나 2인분 그릇에 담겨 나온다.
그 덕에
가게 내에 마라를 먹던
모두의 시선이 한 번씩은 꽂히는 건 덤.
처음 마라에 빠지게 된 건,
지금도 유튜브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우연히 어떤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본 뒤였는데,
먹방을 하시는 그 분이 먹은 건
마라샹궈 라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먹는 영상이었다
집에서 만드는 것이기에,
재료도 아낌없이 듬뿍 듬뿍 넣어서
온갖 해산물을 다 넣은 뒤
빠알갛고 눈으로 보기에도 매큼해보이는
마라맛의 해물야채볶음 메뉴를
너무나도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거였다.
가리비와 오징어, 새우, 가재 등
해산물 중독 노예인 나는
보기만 해도
“저건 내 입맛에 딱일 것이다.”
하고 사로잡혔던 것이다.
아 ㅡ
사람들이 이래서 먹방을 찾아보나?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한 냄비(?)를 다 해치우는 내내
너무나도 행복하게 웃으며 먹는 유튜버를 보면서
나도 그 메뉴가 궁금해졌다.
평소에도 매운걸 좋아하는 나인지라,
도대체 저건 어떤 맛일까.
상상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만 하고 못먹어서
한동안 시름시름 앓기도 했다.
(먹고싶은걸 못먹으면 아픈 스타일)
그 때는,
지금처럼 마라탕집이
우후죽순 체인점으로 마구마구 생기기도 전이었다.
지금이야 검색창에 마라소스 라고만 쳐도
내일 새벽에 배송되어 오지만
이 메뉴를 처음 알게 되었던 그 때는,
마라재료도 중국 식재료를 파는 곳에
찾아 가야만 살 수 있었다.
여하튼간에,
그렇게 마라맛의 궁금이 정점을 찍어가고 있을 때,
이번엔 인스타에서 왠 인플루언서가
건대에 있는 마라룽샤 라는 메뉴를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걸 보게 되었다.
마라소스가 입혀진 작은 사이즈의 가재메뉴였는데
양 손에 비닐장갑을 두 겹 세 겹씩 끼고
온 양 손에 시뻘건 마라 양념을 잔뜩 묻혀가며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는 모습이었다
매운거 + 해산물 = 최애메뉴. 인 나에게
그 메뉴는 정말이지 눈이 뒤집힐 만한 메뉴였다.
가자. 가야겠다.
식재료는 구하기 힘들어도
저길 가면 마라 뭐시기인지
맛을 볼 수 있는거 같으니
가자. 가야겠다.
벼르고 벼르고 벼르다가 , 지인들과 방문한 그 날.
정말 입과 혀와 위장과 대장까지
모든게 완벽하게 행복한 하루가 완성되었던 그 날.
마라의 첫 맛을 본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가부터 마라 열풍이 미친듯이 불더니
지금은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마라탕집이 생겨났다.
너무 갑자기 많이 생기는 바람에
위생 문제 탈도 많이 났고 뉴스에도 나왔지만,
일단 뭐, 나에겐 기쁜 소식이었다.
신난다 !!
드디어 마라를 언제든 맘껏 먹을 수 있어. !
중독성 최고인 마라.
매콤하고도 달큰한 맛이 나고,
먹다가 산초 한 알 씹으면 온 입 안이 얼얼해지는,
그간의 스트레스와 근심 걱정을
싹 ㅡ 다 날려주는 메뉴. 마라탕 한 그릇.
마라샹궈는 안주용이기에,
언젠가부터는 그냥 계속 마라탕만 먹는다.
월급날 저녁 = 마라탕 . 이 공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오늘도 역시,
퇴근하고 마라탕 가게에 가서
마라탕을 배터지게 한 그릇 먹었다.
한 달 동안 수고했다. 나님이여.
또 한 달 열심히 살고 마라탕 먹자.
아주 얕고도 소박한 다짐을 하는 날.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ㅡ 의
저자의 말처럼,
죽고싶지만, 나는 떡볶이대신 마라탕이나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오징어 새우 가제 꽃게 가리비가 듬뿍 들어간,
마라음식이 먹고싶을수 있잖아?
위 책의 저자는
그런 본인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고 하더라.
뭐 나도 크게 다르진 않다. 혐오스럽긴 하다. 한데,
그래도 저런 얕은 이유로도
좋아하는 것을 꼽으며 저 이유로도
다시 한 달 열심히 살고픈 마음을
가질수도 있는것 아니겠어.
어차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는걸 뭐.
뭐 물론, 마라탕 한 그릇만 사먹고
평소엔 아무것도 안 먹는다는건 아니지만서도,
그냥 내게, 마라탕이라는 음식이 가진 의미가 있다.
맛있고도 조금은 슬픈 메뉴.
코 끝이 매큰하고 시큰해지는 메뉴.
마라탕 한 그릇 든든히 비웠으니,
또 한 달 열심히 달려봐야지.
얼얼하게 매운 맛으로 속이 쓰리다.
맛있었지만, 속은 쓰리네.
다음 월급날까지, 마라탕 안녕 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