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기억되길 바라는 사람.
그렇게 향수에 빠지다

좋아하는 것들, 그 스물 세 번 째

by merry go round


여느날과 다름없던 평범한 날.

그 애는 갑자기 날 불러 세우더니 이런 말을 했다.


"너 샴푸 바꿨어?"


글쎄. 모르겠네.

항상 엄마가 마트에서 사다 두는걸 쓰니까.

내 꺼라고 따로 쓰는 건 없고.


"그거 알아? 남자는 여자보다 향기에 민감해서

사람을 향기로 기억한데."


아, 그래?

몰랐네. 내가 알았을리가 없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 고마워.


무려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그 이야기가 잊혀져 갈 때 즈음 성년의 날.

그 당시 남자친구에게 장미꽃 한 송이와

향수 라는 것을 처음으로 선물받아 보았다.


성년의 날엔

장미꽃과 향수를 선물하는거라 배웠다며.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갖게 된 향수.

제니퍼로페즈의 스틸still 이라는 향수.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난 나의 첫 향수가 꽤나 마음에 들었었다.

그 향수를 다 쓰고 나서,

같은 걸 또 하나 사서 썼으니까.


그렇게,

잊고 지냈던 그 친구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사람은 향기로 기억이 된다는 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서

익숙한 향을 맡고는 뒤돌아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사실 난 후각이 엄청 민감한 편인데

그래서인지 사람들에게서 나는 향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일단 좋은 향이 나는 사람이면,

사람이 달라 보일 정도로.


여하튼 그 이후 꽤 많은 향수를 사서 쓰기도 하고,

선물받기도 하면서

점점 더 향기나는 것에 빠져들게 되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명품이라는 것을

처음 선물 받았던 것도 향수였고,

무엇보다 미묘하게 전부 다 다른 향수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면서,

향수 뿐만 아니라 디퓨저, 바디로션

심지어 빨래하는 세탁 세제, 주방세제까지.

향기가 나는 종류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첫 선물을 받았던 그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종류의 브랜드의 향수와

향을 내뿜는 것들이 많이 생겼다.


향기에 빠지게 되다 보니

지금은 온갖 향이 나는 것들에 집착하게 되었고

여전히 향기에 취해 있는 나는

내가 만난 적 있던 누군가들을

전부 향기로 기억하게 되었다.


아침이면 일어나 샤워를 하고 출근준비를 한 뒤

마지막 집을 나서기 전, 꼭 향수를 뿌린다.

지금은 남아있는 향수가 몇 없지만

그 날 그 날 기분에 따라 향수를 골라 뿌린다.


가장 좋아하는 향수 두 개가 있는데,

그 큰 용량의 향수가

둘 다 어느새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다.


참 좋아하는 향수인데,

이 향수병의 바닥이 드러남과 동시에

이 향기를 선물받았던 순간도 지워지게 될까.


아니면 그래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파서

언젠가 다시 스스로 구입을 하게 될까.

첫 향수를 다시 구입했던 것처럼.


향수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재주가 있다.

향기가 나는 향수(perfume)도,

그 시절의 향수(nostalgia)도.

지나간 시절들의 추억들이 떠오르는 노래들로

지난 향수(nostalgia)를 느끼며,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향수를 한 번 뿌린다.


이 좋은 향기처럼.

지나갔다고 해도,

모든 것이 좋은 기억으로만 남게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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