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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개 Mar 27. 2022

나 왜 안 행복하지?

갑자기 찾아온 손님, 번아웃


1.



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이 싫다. 이제는 너무 흔한 말이 되어버린 이 말을 남발하는 미디어도 싫다. 모두가 바쁘고 참 많은 것이 불확실한 현대 사회에서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작은 순간에 감사하자는 취지는 알겠는데, 왜 행복이 소소해야만 하고 굳이 소소한 것을 그렇게 추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꼭 ‘힘들게 노력하는 건 너무 피곤하니까 그냥 작은 것에도 만족하자’며 셀프 위안을 하는 느낌이다. 오마카세가 먹고 싶은 사람한테 ‘오마카세를 먹으려면 돈을 모으거나 더 벌어’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마트에서 파는 초밥 세트에 만족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트 초밥이 별로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소확행보다는 ‘대확행’을 추구하는 사람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대확행을 추구하는 내가 2021년, 바라던 대로 외노자가 되었다. 처음 미국행을 결심했을 때 이렇게 오래 걸릴 줄도, 전혀 다른 직업으로 일하게 될 줄도 몰랐지만, 결과만을 놓고 보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룬 셈이다. 그렇게 노래 부르던 실리콘밸리에서 목표한 대로 디자이너가 되어 원하던 분야, 원하던 회사에서 그것도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일하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행복이 아니겠는가. 행복의 크기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확행 감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사실은 외노자가 된 뒤로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하면 너무 배부른 소리일까?    






2.


여름이 막 시작된 6월, 나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매니저에게 한국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다. 입사한 지 한 달 된 애가 한국에서 일하고 오겠다니 아마 한국 회사였으면 ‘자세가 안 되어 있구먼’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이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이었으니 못 간 지 벌써 1년 6개월째, 나에겐 Homesick (향수병)라는 좋은 핑계가 생겼고 마침 모두가 재택을 하고 있으니 매니저가 반대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사실 난 그때 행복하지 않아 한국으로 도망을 간 것이다.


시작은 이사였다. 취업을 하자마자 나는 신이 나서 회사 근처인 산호세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아직도 재택을 하고 있다.) 5평도 채 안 되는 부엌 없고 햇빛도 들지 않는 방 한 칸에서 살던 내가 월세 200만 원이 넘는 20평짜리 아파트에서 룸메이트도 없이 혼자 살면 상식상 행복해야 하는데, 왜 나는 그 많은 가구를 조립하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을까?


그 많은 가구를 조립하면서 왜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처음엔 나는 내가 외로운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어서 그런 거니, 사람들을 만나면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을 만나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도 이상하리만큼 내 안의 공허함은 커져만 가는 것이었다. 폐에 구멍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한국을 다녀와서도 계속됐다. 분명 재충전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텅 빈 소파에 혼자 앉아있노라면 무서울 만큼 급속도로 나의 마음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다 몇 안 되는 미국 친구의 자살소식을 들었다. 한국에서 돌아온 지 두 달이 채 안 된 어느 가을날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 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이었을 거다. 멘탈이 무너진다는 것이 이런 건지, 그리고 그게 이렇게 위험한 일이라는 걸 체감한 것도. 정말로,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진다. 나는 이유없이 친구의 죽음에 나를 동일시하고, 우울증을 겪었다는 그 친구가 너무나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 게 부질없게 보였다. 일도, 인간 관계도, 연애도, 친구도,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실리콘밸리도. 마치 아무도 없는 우주에 나 혼자서 아무 의미 없는 것들과 함께 떠다니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무기력함이 커진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한번 전문가를 찾기로 했다. 외노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비자 상담을 받기 위해 이민법 변호사를 찾았던 것처럼, 도무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록 무기력해진 나의 이 상태를 누군가가 진단해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또 충동적으로 Psychotheraphy(심리상담)을 예약했다.





3.

 


마운틴뷰에 위치한 심리 상담사를 만나던 날, 꼭 3년 전 변호사 사무실을 갈 때처럼 긴장을 했다. 사실 미국에서 심리치료를 받는 것은 굉장히 흔한 일이다. 우리 팀 사람들도 정기적으로 찾는 심리상담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경험도 없고 의심도 많은 나는 별 게 다 궁금했다.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지, 상담은 앉아서 받는지, 아니면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소파에 누워서 하는지 등 등. 한편으로는 ‘상담을 받는 다고 해서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라고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상담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왜인지는 모르지만 무슨 말을 들어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감정의 미동도 없을 거라고 자신하며 상담사를 만났다.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방에서, 눕지는 않고 그냥 편안히 앉은 채로 긴 머리의 한국인 상담사와 세션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어가 서툴다는 그녀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지난 3년 동안 겪었던 변화와, 느꼈던 감정, 최근의 기분, 그리고 친구의 죽음까지. 이 얘기를 모두 하는 데만 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번아웃이 온 것 같네요.”



그녀는 예상했던 대로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번아웃이 왔는지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라며, 몇 가지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한국에서의 삶은 어땠는지, 무엇이 불만이었는지, 유학을 할 때의 기분은 어땠는지, 코로나가 터지고 남은 학기를 모두 집에서 들으며 홀로 취업을 준비할 때는 어땠는지, 이사 이후의 삶은 어땠는지. 나의 특기인 심리학자 코스프레가 아닌, 진짜 심리상담사인 그녀와 꽤 오래도록 ‘왜?'라는 질문을 던져가며 나의 마음을 추적해 나갔다. 그러다 대뜸 내가 말했다.



“Sometimes I feel like my life is like playing Tetris. (어쩔 땐 제 삶이 꼭 테트리스 게임 같아요.)”



한 줄을 없애면 또 다른 한 줄이 나타나고, 그 줄을 없애면 또 다른 줄이 나타나는 테트리스 게임. 내가 느끼는 나의 삶이 그랬다. 한국에서 취업을 해도, 원하던 마케팅으로 부서를 옮긴 후에도, 실리콘밸리 외노자가 되겠다고 퇴사를 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오고 나서도, 인턴을 구하고 나서도, 바라던 대로 외노자가 되고 나서도 나는 만족할 줄도, 내가 성취한 것을 만끽할 줄도 몰랐다. 늘 새로운 미션이 앞에 나타났으니까. 내가 이룬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마음껏 기뻐하지도 않은 채 항상 그다음, 더 큰 목표를 좇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던 거다.



“I think you’re like a rice cooker. (꼭 압력밥솥 같아요.)”



그녀는 말했다. 크던 작던 성공에 대한 여운을 충분히 가져가는 것도 필요한데 나는 그것을 끌고 가지도 않고 그저 계속해서 나를 push 하고 있다고. 그런데 이미 여기까지 오느라 더는 게임을 할 에너지가 없으니, 결국엔 터져버린 것이라고 했다. 내부 압력을 견디지 못해서 터져버린 밥솥처럼.


그러면서 말하길, ‘지금은 담담하게 말하지만 이미 많은 일을 겪었다고, 지금까지 충분히 힘들었던 나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 고 조언해줬다. 그 말을 들으며 결국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4.

    

상담사가 내게 내 준 숙제가 몇 가지 있었다.   


목표를 높게 잡지 말 것  

무엇을   기분이 좋아지는지 적어볼 .  매일 반복할  있는 작은 일이어야 한다.

2번에서 적은 것들을 하루에 하나씩 해볼 것. 그것을 루틴으로 만들어 반복하는 습관을 가질 것

강제로라도 쉬는 시간을 가질 것


요새 나는 조금씩 이것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걸음마를 막 뗀 아기처럼 천천히 조금씩, 욕심부리지 않고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들을 해보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 하나가 글쓰기였다. 밥솥같이 사는 나의 성향을 바꾸긴 쉽지 않겠지만, 조금 힘을 빼도 밥은 된다는 걸 아니까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소확행을 싫어했던 내가 지금은 하루의 to-do-list 중에 딱 3개만 했는데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기분이 좋다고 느낀다. 이렇게 또 하나씩 배워가는 것 같다.


나의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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