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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개 Mar 27. 2022

나는 1:1이 무서워요

영어 울렁증 극복하기



한 달간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했던 지난해 여름,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매니저와의 1:1 (1on1, 일대일 면담)을 하고 방에서 나오는데 엄마가 물었다.



“방이 더워?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개?”



그게 아니라 영어 울렁증 때문이었다.  긴장해서 얼굴은 빨개지고 등까지 땀이 다 난 것이다. 거울을 보니 무슨 술 취한 사람처럼 아침부터 얼굴이 홍당무였다. 그렇다. 한국 살 때는 없었던 영어울렁증이 나는 외노자가 되고 나서 생겨버렸다.



1:1만 하고 나면 진이 빠지던 나의 모습



나는 영어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건 절대적으로 엄마의 공이 크다. 꼬마 때 당시엔 많이 있지도 않았던 네이티브 선생님과 프리토킹 수업을 하는 영어유치원 겸 회화 학원을 몇 년 다닌 덕분에, 어릴 때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은 없이 자랐다.(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하다)


감성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던 10 때는 Pop 우울한 영국 밴드 음악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Backsreet Boys Nick Carter Coldplay 보컬 Chris Martin  빠졌던 탓에 자연히 영어공부는  재미있었고, 그러다 보니  노력 없이 모의고사는 항상 1등급이었던  같다. 그리고 나의  영어사랑은 대학생 때도 계속되어서, 취업 준비로 봤던 오픽 시험은 역시  노력 없이 AL 받을  있었다.


그래서 난 주제도 모르고 내가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이 착각은 대학교 3학년 때 떠난 한 학기 동안의 미국 교환학생 생활에서 보기 좋게 깨졌고, 그 뒤로 한국에 돌아와서 취업을 하고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도 꾸준히 영어를 놓은 적이 없다. 스터디도 하고, 단어도 외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30대에 외노자가 되어 영어로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하자마자 공포증이 생겨버린 것이다.




영어울렁증, 왜 생겼을까



왜 회사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영어울렁증이 생겼을까? 내가 생각한 원인은 이랬다.   


1. 공감대가 없어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팀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 조직 자체는 미국, 유럽, 중국, 인도 등 인종이 다양한 데 희한하게도 내가 들어간 팀은 어떻게 된 게 죄다 토종 백인이고 주로 미팅을 하는 사람들의 국적은 미국, 영국, 아일랜드, 폴란드이다. 살면서 이렇게 백인들에 둘러싸여 일해본 적이 없는 나는 이들의 캐주얼한 Small Talk (잡담)가 정말 너무너무 스트레스였다. (지금도 마냥 좋지는 않다)


하루는 미국 문화이기도 한 Taxidermy(박제술)에 대해서 30분을 떠드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박제술이 영어로 Taxidermy라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고. 솔직히 내가 박제라는 단어를 왜 영어로 알아야 하나 싶지만, 포인트는 이렇게 단순히 영어 그 자체보다는 문화를 모르는 것이 공감대 형성을 어렵게 하고 대화 소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2. 회사, 그리고 업계 용어를 모른다


회사에서 쓰이는 내부 용어, 줄임말 등이 익숙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한 크리틱, 디자인 리뷰에서 나오는 말들이 이해는 되는데 내가 발표를 해야 할 때는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단순히 margin, padding, contrast, alignment 이런 게 아니라, 예를 들면,


 Presence aligned to the alert color token system based on feedback provided from  A team where 2/3 shades of red or yellow were seen in the same area and provided unnecessary colorfulness and inconsistencies. (전체 red, yellow의 2/3가 alert에 쓰이는데 이 컴포넌트가 같은 UI에 나타나므로 불필요한 컬러 사용을 막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presence의 색상을 alert에 맞춤)


.. 이런 식으로 해당 디자인의 근거, 논리를 설명하는 것이 서툴렀다. 단순히 예뻐서, 혹은 ‘그게 룰이니까'가 아니라 왜 이러한 룰이 생겼는지는 설명해주어야 하는 것이 힘들다.   



3. 비즈니스 영어 어휘가 부족하다


디자이너의 특성상 발표를 할 일도, 미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할 일도 많다. 게다가 나는 제품을 만드는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팀이라 종종 쉽게 쓰는 팁을 알려주거나 시범을 보여줘야 하는 일이 많은 데 이때 쓰는 표현들이 굉장히 한정되어있었음 느꼈다. 또한 평소에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공손함을 유지하면서 센스 있게 표현하는 영어여전히 어렵다고 느낀다. 가령


    “Did you check my email? (내 이메일 확인했어?)”  보다

    “Have you had a chance to check my email? (혹시 제 이메일 확인하셨나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 더 부드러운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네이티브가 아닌 이상 영어는 미국에서 일하는 모든 외국인 노동자의 숙제이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분야이다. 나도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울렁증을 극복하는데 효과가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실천 중인 방법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 싶다.    



1. 한글 콘텐츠를 끊는다


나는 한국 콘텐츠 - 그러니까  한국 예능이나 드라마 - 이런 걸 가급적이면 보지 않으려고 한다. (딱 하나 예외가 있는데 Jay Park이 나온 영상이다) 하루 종일 듣고 말하고 쓰는 모든 환경이 영어여도 영어가 쉽게 늘지 않는데 한국어만 매일 같이 듣다가 미팅에 딱 들어가면 벌써 언어 회로가 꼬이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오징어 게임도 안 보려다가 하도 팀 사람들이 말해서 끝냈다.) 그래서 풀 영상은 절대로 안 보고, 정말 보고 싶으면 유튜브에 있는 편집된 영상만 보는 편이다. 한글날에 태어나 한글을 사랑하는 나지만, 영어를 늘리고 싶다면 보고 듣고 생활하는 모든 반경에서 영어에 노출되어야 하는 것 같다.



2. 새로 들리는 모든 표현을 적는다


미팅 혹은 일을 하다가 새로운 표현을 접하게 되면 모두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찾아본다. 기록을 할 때는 그것이 업계 용어인지(디자인 용어인지), 아니면 단순 영어 표현인지에 따라 기록하는 곳이 다르다.


일하다 배운 보카(voca)라고 해서 Work+Vocabulary를 합성해 만든 Workabulary 노트.


위와 같이 그날그날 새로 알게 된 표현들을 분류해서 기록하고 다음번엔 나도 쓰려고 노력한다.   



3. 매일 영어공부를 한다


외국인은 별 수 없다. 따로 시간을 들여 영어공부를 하는 수밖에. 최소 주 3회 이상은 자기 전에 꼭 영어공부를 하는데, 비즈니스 표현을 공부할 때도 있고 일반 생활영어를 공부할 때도 있고, 미드를 영어자막과 함께 보면서 처음 보는 표현을 정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드 한편 보는데 오래 걸리는 편이다) 최근에는 Speak(스픽)이라는 앱으로 비즈니스 표현을 연습하고 있는데 괜찮은 것 같다.    



4. 발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인데, 그냥 발표를 하겠다고 손을 들어버리는 것이다. 일단 하겠다고 일을 벌여놓으면 사람이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망신 안 당하려고 열심히 연습을 할 수밖에 없다.  한 두 번 발표를 하다 보면 조금씩 영어 울렁증이 완화되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물론 발표 준비를 하면서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하며 과거의 나를 원망하겠지만, 막상 마치고 나면 뿌듯함과 '의외로 별 거 없네'라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영어는 잘 못해도 된다는 거짓말


해외취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시작부터 김 빠지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조심스레 말하건대, 해외 취업을 하기 위해 영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외국에서 일을 하고 생활하겠다는 사람이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모른 채 산다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된다.


때문에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돼요?’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당연히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 특히 본인이 커리어 욕심이 있고, 위로 올라가고자 한다면 영어가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 리더(팀장급 말고, 리더십 레벨)를 많이 찾을 수 없는데, 나는 이 이유가 분명 영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어를 잘 못해도 살 수는 있다. 회사를 다닐 수는 있다. 단, 내가 개고생을 하며 한 일을 우물쭈물 제대로 설명도 못하거나, 다들 웃는 개그에 혼자 멍을 때리고 있거나, 프로모션을 해야 하는데 영어 때문에 내 성과를 인정을 못 받아서 입만 살아있는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져도 괜찮다면. 그런데 나는 그런 게 싫다.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모르고서는 그냥 외국인 노동자, 이방인일 뿐이다. 이것이 내가 영어공부를 계속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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