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연애할 땐 기념일을 안 챙기는 나는 혼자만의 기념일엔 온갖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 온 지 100일 됐을 때도 그랬고, 1년이 됐을 때도, 2주년 차에도 그랬다. 아마도 앞으로도 몇 년간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떨어진 2019년 6월 19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5월이 되면,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에 입사한지도 1주년이 된다. 회사에선 마치 뭐라도 보내줄 것처럼 내가 어떤 스타일의 축하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설문 메일을 보냈다. 1년이라.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에 기록을 남기고, To-do-list로 어떻게든 시간을 관리하려 아등바등하지만, 시간은 늘 조금의 자비도 없이 쏜살같다.
2017년 여행지에서 충동적으로 정한 서른살의 목표를 돌고 돌아 작년에야 이루었다. 가끔 나의 파란만장한 ‘실리콘밸리 입성기’를 들은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도대체 얼마나 한국이 싫었길래 그렇게 기를 쓰고 왔느냐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한국이 싫거나, 한국의 삶이 불행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20대의 내가 꿈꿨던 30대의 나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20대의 나는 늘 내가 늦었다고 생각했다. 재수를 하기엔 늦었다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기엔 늦었다고, 편입을 하기엔 늦었다고, 인턴을 하기엔 늦었다고. 하지만 늦었다고 말하는 당시의 ‘현재’를 지나, 미래 시점에서 그때를 돌아볼때면 나는 항상, 어김없이 늦었다고 생각해서 하지 않았던 것들에 '만약에..'라는 공식을 대입하고 있었다.
나는 왜 항상 늦었다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우리 사회가 그렇게 집착하는 나이라는 틀에 갇혀 나도 모르는 나의 가능성을 미리부터 제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모두 가능했을지 모르는 당시의 선택들을 나는 굳이 ‘20대 평균’, ‘30대 평균’ 에 맞춰 재단하고는 했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선 우선 나를 옥죄는 환경에서부터 벗어나야 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났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이곳에서 뭐라도 되어보겠다고.
하지만 사는 곳도, 보내는 시간도, 만나는 사람도, 하는 일도 달라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사실 ‘더 나은 나’는 어디서든 될 수 있다는 걸. 굳이 실리콘밸리일 필요도, 미국일 필요도 없었다는 걸 말이다.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 본인의 단호한 결의만 있다면 변화는 사실 어디서든 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나를 단장하지 않으며,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의미 없는 만남을 하지 않고, 사람들과 멀어지는 느낌이 싫어 원치 않는 모임에 가지 않는다. 외로움을 잘 타는 내가 이젠 혼자 있는 시간에 나를 위한 요리를 하고, 커피를 내리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한다. 절대로 못할 것 같던 운전도, 가구 조립도 뚝딱 해내면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를 늘 괴롭히던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의 생각에서 벗어나 나는 더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찾아 찜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의 성과를 공유한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가능했을 이 변화를 나는 30대에 실리콘밸리에 와서야 겪고 있으니 누가 뭐래도 이곳은 나 스스로의 혁신을 위한 도시인 것은 틀림 없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첫날, 나는 일기에 적었다.
‘항상 웃을 순 없겠지만 나중에 이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그때 상상한 나중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3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이 생각이 변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변화의 끝에 내가 뭐가 되어있을지는 모르지만, 한걸음씩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나는 진심으로 좋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