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과 선택
물길을 트는 사람과 흙을 파는 사람이 다르다
물꼬를 열어주는 이와 삽질을 하는 이가 동일인일 수 있지만 다를 수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마음을 흔들었던 순간, 그 조언에 동의하고 결정하곤 한다. "그 말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시작하지 않았을 거야" 말하기도 한다. 어떤 결과를 마주 하느냐에 따라서 이 말의 뉘앙스는 완전히 달라진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옛말이 있다. 누구나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럴듯한 이유나 사정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특히 부정적이거나 실패하거나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면 책임 회피, 변명, 경계의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물꼬는 방향을 제시하지만, 삽질은 몸의 노동이다
꽤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씁쓸한 기억이 있다. 대학원을 마칠 때쯤 친구와 미래를 얘기하다 자연스럽게 학업을 권했었다. 그 친구는 망설이는 듯하더니 진학을 했고 졸업을 했다. 국가장학금으로 학업은 무사히 마쳤지만, 학자금 대출금 상환의 압박이 커지자 어느 날 원망을 툭 내뱉듯이 말했다. 현재 자신의 업무와 경력을 위해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은데 괜히 시간낭비 돈낭비를 했다는 것이다. 나의 권유가 아니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라 했다. 당황스러웠고 미안했으며 많이 후회했었다.
수년 전 당시 교수님으로부터 박사과정 권유를 받았었다. "글쎄요" 하는 애매한 대답을 흘리고 잊은 듯이 지내다 일 년이 지났는데 어느 날 다시 말씀하셨다. 그렇게 두세 차례 권면을 더 받은 후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사실 course work 2년 동안 남쪽 도시에서 서울까지 학교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몸은 지치고 돈은 고갈되었으며 시간의 압박은 너무 컸었다. 이런 비현실적인 판단을 한 자신에 대한 속상함과 학업을 권하신 총장님에 대한 원망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과거에 친구가 나를 탓한 것처럼 말이다.
조언의 역할과 한계가 있다
사람은 어떤 결정을 위해서 의논을 할 수 있다. 조언을 구할 수 있다. 머리를 맞댈 수 있다. 이 과정은 시야를 넓혀주고 두려움을 낮춰주며 선택지를 제시해 준다. 하지만 결단은 스스로의 몫이며 책임은 마땅히 따라오는 일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조언을 구하는 이유는 혼자의 결정이 어렵기도 하고, 관계 속에서 적절한 판단이 형성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언은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지만, 대리 책임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조언은 촉발자(trigger)이지, 행위자(agent)가 아니다. 그런데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타인의 말에 내가 동의하는 순간, 자기 판단으로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책임 전가의 유혹을 또한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때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특히 실패 후 찾아오는 원망의 심리이다. 조언은 복수형이지만 결정은 단수형이기에 이에 대한 책임은 분할되지 않는다.
원망을 멈추는 능력이 성숙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일을 만나기도 하고, 생각해야 할 일을 겪기도 한다. 이럴 때에 성숙한 사람은 조언을 구할 줄 안다. 선택의 주체가 자신임을 인식한다. 그 결과의 승패를 타인에게 돌리지 않는다. 그래서 실패조차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킬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이 같은 사람의 책임은 결코 짐이 아니라 힘으로 전환된다.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며, 남 탓을 멈출 때 삶이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온다. 비록 삽질은 힘들지만 그만큼 방향을 수정할 자유가 있다.
인생에 물길을 터준 가족, 친구, 동료, 스승, 선후배 누군가 존재한다. 그 물길을 어디까지 낼지는 삽을 쥔 사람 '나'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