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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Jung Apr 01. 2018

수고했어. 글로벌한 여자가 되느라.

숨겨진 나의 민낯

오늘은 서울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글을 한 번 써내려 가봅니다.


싱가포르에서 언젠가 한번, 최애 타이 식당에서 친구와 밥을 먹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울었던 건 아니고요.. (눈물 날 만큼 맛있긴 했지만)

사실 그 시기에 제 멘탈은 누구보다 약해져 있었던 상태라 누가 툭 하고 건드리면 눈물을 보이곤 했어요.

친구에게 이런저런 회사일, 사람일을 털어놓으면서 문득 내가 한국이 아닌 땅에서 이렇게 맛있는 타이음식을 먹으면서도 그다지 행복하지가 않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한국을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대학시절 절친이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을 보자마자 저에게 딱 너를 위한 책이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뭐.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한국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가르치는 나라라서요.  정확히 얘기하면,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직장을 가서, 그에 맞는 능력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요.

저도 그렇다고 배워온 세대인데,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니 행복의 방식이 너무나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걸 알고나서부터는 막연히 한국에서 살지 않아야지 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서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글로벌한 여자로 살아야지 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살면서 저를 마주하다 보니 저는 생각보다 글로벌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민낯을 보게 된 순간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싱가포르에서 한국음식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먹어줘야 직성이 풀렸고, 여기서 한국음식은 한국식당을 가서 먹는 횟수를 말하는 것이고 집에서 요리하고 불닭볶음면을 일주일에 먹은 횟수를 포함하면 주당 4번은 넘을 듯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개방적인 ‘성’ 싱가포르 문화에 방어적 태도를 보였던 적도 꽤 많았습니다.

성매매가 합법인 싱가포르에 환락가가 아주 비즈니스의 중심가에 펼쳐진 모습을 보고 당황한 적도 있고요,

여성들이 깊게 파이고 짧은 옷들은 입고 자유로이 돌아다는 것을 보고 그들을 무의식적으로 Judge 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국과 싱가포르를 비교하며 화장품의 질이라던지, 서비스의 퀄리티라던지… 한국이 훨씬 낫다고 자꾸 불평하기도 했었어요.

사실 지금까지 저는 스스로 해외생활에 최적화된 사람이라 생각해왔습니다.

음식 가리는 것도 거의 없고, 늘 새로운 문화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저의 민낯을 보게 해 준 최초의 나라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스스로가 참 글로벌한 여자가 되려고 애쓰느라 대견하면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는 해외에서 성공해야지, 너한테 한국은 작지, 너는 글로벌 인재가 될 거야.. 등등 글로벌한 사람으로 자라야만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아왔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그것에 크게 의심을 품지 않고, 맞아 난 그래야 해 난 글로벌 인재가 되어서 부모님의, 나라의 자랑스러운 딸이 될 거야 하면서 스스로 푸시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굉장히 한국적인 스스로의 모습을 처음으로 발견하니 정체성이 송두리 째 흔들리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20몇 년 넘게 이렇게 살아왔는데. 나는 생각보다 글로벌하지 않구나. 생각보다 오픈마인드 된 사람이 아니구나... 등등...

그 사실이 스스로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이 글로벌한 여자가 아니라
글로벌한 여자는 제가 되고 싶은 ‘나’였으니까요.

그리고 되고 싶은 내가 되느라 너무 수고했어 라는 말이 저를 유일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창 시절을 포함해 몇 년간 받아온 무언의 압박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로벌한 여자가 되기 위해, 그에 걸맞은 인재(?)가 되기 위해 저는 항상 부단히 외국어 실력을 쌓고, 국제 감각을 익히려 틈만 나면 비행기에 오르고 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라고 확신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저의 민낯을 보게 해 준 싱가포르는 참 고마운 나라네요.

여러분도 나는 이래야만 해 라고 교육받아온 무언의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렇지 않은 스스로의 민낯을 발견하신 경험이 있나요?

그럴 땐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오느라 너무너무 수고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그리고 그런 나를 포용해주면 됩니다. 제가 겪어보니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포용하는 것.

그 자체가 스스로에게 큰 자신감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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