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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가장 좋은 몫을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

by Claire mindfulness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너무 치열하다고 느껴져 지쳤을 때, 마음속에서 나온 어떤 목소리가 나에게 들렸다.

괜찮아, 꼭 가장 좋은 몫을 가질 필요는 없어.

이 말은 그 순간, 그리고 두고두고 큰 위안이 되었다.




한국 사회의 특징이 있다. 최고로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주변에, 심지어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집은 꼭 강남 아파트를 사야 하고 웬만큼 좋은 곳을 가지고 있어도 더 상급지로 가야 한다고 남일에 참견을 한다. 개O < 대O < 압O정 이런 식으로 급을 메기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상급지로 가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대학교 입시에서 A,B,C 합격했는데 어디 갈까요? 하고 학교도 남들이 골라주고

신랑감, 신붓감 1,2,3 중에 누가 제일 낫냐며 결혼 상대도 급수에 따라 남들이 골라준다.

어느 지역을 가면 꼭 어느 아파트, 꼭 어느 초등학교 보내야만 한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강요한다.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 동네, 내 남편감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과 모습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제일 좋은 것 하나를 고르고 줄을 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이다. 나라가 너무 작아서 그럴까?




한국사회에서 아무 저항 없이 너무도 잘 적응해 왔던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당연하게 설파했던 가치관에 나도 모르게 세뇌되어 살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하여 적은 인풋으로도 가장 큰 아웃풋을 내며 남들에게 최고라고 인정받은 몫들을 하나씩 획득해 나가기 위한 삶을 살았다.


원하던 하나를 취해도 여전히 불안하고 겉모습과는 달리 스스로 나의 모습이 너무 작게 느껴졌을 때, 아직 부족한 것들이 있어서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것들—이를테면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상급의 것—을 채우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고 또 살아보았다. 하지만 남들이 최고라고 정의한 그것들나한테 소중한 가치가 아닐 때 마음은 충족되지 않는다.




우리는 나에게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면서 산다. 나만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배우자와, 특히 내 아이라면 예쁘고 뭐든 잘하고 똑똑하고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겠지, 그래야지 하고 자식을 나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누구에게도, 좋은 일만 계속 생길 수는 없다. 자잘한 꼬임부터 시작해서, 때로는 나쁜 일만 계속 생기는 것 같은 때도 있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이 사회의 잣대로 평가했을 때 완벽에 가까운 듯했던 오점 없던 인생의 불운의 시작은 첫째의 일탈과 함께 찾아왔고 이후 모든 게 하나하나 무너져 엉망진창이 되었다. 한 2-3년을 허우적댄 것 같다. 처음에는 마냥 도망가고 싶었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가라앉아 버릴까 봐, 지푸라기라도 잡자 하는 심정으로 살았다가, 어떤 노력도 아무런 소용없다는 자포자기의 터널의 거쳐, 그런 게 바로 인생이라는 수용의 마음이 어떤 건지를 알게 되었다.





어떤 이의 인생이든 운은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이 진리이다. 나에게는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한다는 마음은 말도 안 되는 욕심이고 오만이다. 살면서 내가 받은 많은 축복과 사랑, 따뜻함들... 우리는 그것을 더 기억하고 거기에 더 집중해야 한다. 항상 모든 좋은 몫을 다 가지려고 안달하며 살 필요는 없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완전함도 충족감도 주지 못한다.


악착같이 좋은 몫을 챙기면서 살지 않는다고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뒤처지는 것이 아니다. 잘못 사는 것이 아니다. 멀리 보았을 때 무엇이 나의 인생에 가장 좋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힘들 때는 그 힘듦에 잘 보이지 않지만 지금 주춤하고 뒷걸음질 치더라도 인생은 내려갔다 바닥을 치고 또 올라오는 것이라고.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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