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 or fail
드디어 step1 시험을 치렀다.
시험이 끝나면 후련한 마음으로 후기를 작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처럼 졸업한 지 오~래된 선생님들이 조금 쉽게 가실 수 있게 공부법 팁도 전수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실제 시험은 생각보다 난해했고, 아무래도 확신 없이 2-3주간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만 같다. 모든 자투리 시간에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시간이 끝나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허무감이 몰려온다.
우선은 시험 당일 이야기부터 짧게 해 볼까?
시험 예정일을 10여 일 앞두고 12월 초, usmle 시험을 치르는 장소인 한국 프로메트릭 센터가 이사를 했다. 장소는 강남구 뱅뱅사거리 근처 비봉빌딩인데, 지하철이 가깝지는 않지만 이전 한남 센터에 비해서는 그래도 대중교통이 수월하고 시험을 치기에 매우 쾌적한 장소였다.
방 하나에 20개 정도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각각의 데스크의 간격이 넓어 시험을 보는 동안 옆사람이 신경 쓰이는 일은 없었고, 준비해 간 이어플러그를 중간에 심음을 듣느라 뺐었는데 block이 끝날 때까지 다시 끼우는 것을 잊을 정도로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주변의 마우스 소음 등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공조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천장에서 들렸는데 집중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시험 날은 매우 추운 날이었는데 내부는 따뜻했다. 온풍기가 세게 틀어져 있어 따뜻함이 유지되었지만 그래서 매우 건조해서 중간중간 목을 축여주어야 했다. 시험장 내부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은 다음과 같이 제한되어 있다.
(필수) 여권, 락커키, 코팅지와 보드마커
(선택) 물, 인공눈물, 립밤, 고무줄, 안경 - 라벨 모두 제거, 최초 들어갈 때 검시
block이 끝날 때마다 중간에 나가지 않고 앉아서 쉬어도 되고 나갔다 올 수 있는데 중간에 나갈 때에는 여권과 락커키만 들고나가게 되어있다.
공간은 총 3개로 구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 외부공간
2. 짐보관/직원들/body check/지문인식 등이 이루어지는 중간 공간
3. 시험장 공간
1 -> 2로 이동시에는 전자제품의 전원을 모두 꺼야 들여보내 준다. 2번 공간에서 짐은 음식물 선반/락커 두 군데로 나누어 보관하는데 오직 음식물만 들어있는 패키지는 왼쪽 음식물 선반에, 그리고 그 것을 제외한 모든 짐과 겉옷은 락커에 넣고 열쇠를 잠근다.
도착한 순서대로 짐 보관, 몸수색 후 입장하게 되는데 나는 두 번째로 들어가게 되어 8시 15분쯤 일찍 시험을 시작한 듯하다.
총 7개의 block을 1/2/2/2로 보았는데,
첫 번째 block에서 처음부터 wtf 문제를 연속으로 때려 맞고 멘붕 상태로 화장실만 잠시 나갔다가 오고, 이후 2개의 block을 연속으로 푼 뒤에 간식 패키지를 들고나가 정말 새모이만큼을 먹고 다시 들어갔다. 배도 고프지 않고 입이 말라 뭐가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후 2 block을 보고 나오니 쉬는 시간이 45분이나 남아 있어서 마지막 쉬는 시간이니 여유가 있다 생각하며 샌드위치를 겨우 한 쪽(4분의 1개) 먹고 다시 들어가 나머지 두 block을 보았다. 최종적으로 쉬는 시간은 30분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전반적인 주관적 느낌을 얘기해 보자면,
1. 7시간이 생각보다 금방 간다.
시험 전 가장 걱정이 되었던 부분은 7시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NBME 모의고사를 풀 때에는 중간에 졸리고 귀찮아서 비몽사몽 엉뚱한 답을 고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시험 전 마지막 주말에는 성당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던 이벤트도 있어서 장트러블이 갑자기 생기면 어쩌나, 갑자기 콧물이 터지면 어쩌지 하는 생리현상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실제 시험 날에는 아드레날린 덕분인지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았고 졸리지도 않았고, 기적적으로 7시간 동안 280개의 문제를 다 읽을 수 있었다. 사실 붙든 떨어지든 그것만으로 나는 감사하다. 별일 없이 280문제를 다 풀어냈으니 운이 좋았고 나는 내 할 일을 다 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다고 했지만 준비가 부족했거나 나의 역량이 부족하여 떨어진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2. 더미 문제(experimental question)가 관건이다.
실제 시험의 280문제 중 무려 약 80문제는 점수에 카운트되지 않는 experimental question이라고 한다. 따라서 200개 중에 60-65% 정도를 맞춰야 합격선이라는 것이고 즉, 280문제 중 130개 정도를 맞추면 된다. 놀랍게도 50%가 안 된다. 문제는 어떤 문제가 더미 문제인지 모른다는 것인데 아무도 모르긴 하지만 얼토당토않은, 듣도보도 못한 문제가 아무래도 더미문제일 가능성이 높겠지.
레딧을 찾아봐도 NBME나 free 120 과는 달리, 실제 시험에는 80개나 되는 더미 문제가 있어서 수험생들의 멘털을 휘몰아치게 만드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실제 시험이 NBME보다 어려웠다는 느끼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듯 하다.
나의 경우 block 1과 7에 그런 듣도보고 못한 얼토당토않은 문제들이 집중되어 있다고 느꼈는데 찾아봐도 한 block 전체가 통으로 더미인지, 전 block에 골고루 포진되어 있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block 1을 시작하면서부터 10문제쯤 풀었나? 뭔가 잘못됐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고 block 1을 풀고 나와서 화장실에 다녀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의 부족함에 대해 처절하게 인식하였다. 아, 공부를 매우 대충 했구나. block 7도 wtf 문제의 향연이었는데 그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더미일 거야.라고 되뇌었다.
시험이 마무리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 이건 진짜 모르겠다, 떨어질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살기 위한 정신승리인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래 그것들 다 더미문제였을꺼야.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한 내면의 목소리에 세뇌되고 있는 듯하다. :)
시험 당일에 대한 회상은 이쯤에서 마치고 시험공부 팁에 대한 스토리를 쓸지 말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만약 fail 하는 경우 나의 팁은 전수하면 안 되는 것이거나, 혹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팁이 되어버릴 테니 결과를 우선 봐야겠다.
또한 나보다 훌륭한 선구자들이 너무 많으시고, 또 내 방법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심도 필요하다.
모든 작가들의 바람이겠지만,
나만의 개인적인 일기가 아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