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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더 'Small Talk'

나도 편안하게 그것을 해보고 싶다

by Claire mindfulness


2021년에 1년 동안 미국에서 살 기회가 생겼을 때 가장 해보고 싶으면서도 공포스러웠던 것은 바로 그 악명 높은 스몰토크였다. 결과적으로 당시 스몰톡에는 완전히 실패하였다.


스몰톡을 무서워하는 것은 한국인 종특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대화는 대부분 목적 지향적이라 불필요한 대화를 굳이 왜 해야 하는가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아는 사람 vs 모르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강하다.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은 경계하는 것이 국룰이라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친한 척을 하며 갑자기 말을 걸어오면 누구나 뜨헉하게 된다.

단순히 짧은 영어나 성격만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이런 문화적인 차이와 오랜 세월 습득된 태도의 차이가 있어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국인치고는 외향인에 가까운 성격이라 믿고 살아오고 있고, 영어 짧은 거 그까이꺼 뭐! 라고 마음먹었던 나지만, 모든 사물과 행동에는 목적과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산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치관으로 대체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스몰톡으로 향하는 장벽이 되었던 것 같다.





스몰톡 대체 왜 하는 거냐고


스몰톡의 내용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상대는 말 그대로 안 궁금하다, 안 궁금한데 물어본다. 안물안궁이 아니라 물안궁이다. 어찌 보면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비생산적인 행위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미국에서 스몰톡의 목적은 라뽀(rapport)를 쌓는 것이다.


Rapport

라뽀는 '참조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신뢰관계를 말하는 용어이다. 나는 의대에 입학해서 저 단어를 난생처음 들었고 지금까지 지겹도록 사용하고 있다. 비단 정신의학, 심리학에 국한되지 않으며 의사와 환자 사이의 라뽀는 진료와 치료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USMLE step1 출제에 포함되는 과목 중에 communication이 있는데, 자주 물어보는 문제가 특정 상황에서 의사의 'initial response'이다. 선택지 모두 말이 되고 원칙의 측면에서 합리적이지만 의사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와야 할 말을 묻는 것인데 대부분은 환자와의 rapport를 가장 공고히 할 수 있는 반응이 정답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한국 마인드로는 정답이 도통 이해되지 않은 적도 많다. 처음에는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각각의 상황마다 관계를 가장 원활하게 만들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신념을 USMLE 공부를 하며 전수받았다. 한마디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름 칠을 먼저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의사 환자 관계 이외의 영역에서 라뽀라는 단어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의사 환자 관계 안에서도 라뽀가 중요하다는 말만 했지 라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다. 우리나라에서의 라뽀는 전적으로 개인의 인성과 성격에 의존하고 있다. 그에 비해서 내가 아주 조금 경험해 본 미국을 비롯한 내가 모르는 다른 문화에서는 라뽀를 쌓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스몰톡도 그들에게는 관계에 있어 라뽀를 쌓아 올리는 의미를 가진다.





스몰톡은 언제 하는 걸까?


언제 어디서나 한다. 아침과 오후 하루 2번 아이들 스쿨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동네 학부모들이 옹기종기 모여 여담을 나누었는데 남편과 서로 나가라고 눈치싸움을 했던 이유는 아마도 스몰톡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거다. 1년 동안 가장 난감했던 순간은 생일 파티에 소개받았을 때다. 10분에서 20분 정도는 뜬구름 잡는 얘기로 시간을 때울 수 있다고 쳐도 몇 시간 동안 입을 터는 것은 대단히 괴롭더라.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면서 내 소개를 하고 직장 얘기, 고향 얘기 하다가 말할 거리가 떨어지면 눈치를 보면서 자리를 옮긴다. 무한반복.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출근해서 짧게 인사 나누며, 회의를 시작하기 전, 이벤트나 파티에서, 카페에 줄을 서있으며 언제든 스몰톡을 한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중서부 지역(Midwest)과 남부 지역(South)에서는 스몰톡을 더 많이 하고, 북동부 지역(Northeast)은 스몰톡에 시간을 덜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아마 아예 모르는 사람과 나누는 스몰톡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과는 개인적인 얘기는 하지 않고 하더라도 "Hi how are you?" 정도만 해주는?





스몰톡의 내용은 뭘로 할까?


의외로 이건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스몰톡으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날씨가 참 좋다."

"오늘 traffic 최악이었어"

"어제 뭐 했니, 어제 좋았어?"

"너 오늘 옷 너무 괜찮다."

"뭐 맛있는 거 없을까?"

"이번 주말에 계획 있어?"

"어제 경기 봤니?"


종교, 정치, 자산(돈), 사생활, 부정적인 콘텐츠는 (X)


그냥 영혼을 빼고 이런 얘기로 시작하면 된다. 상대방의 대답에 집중하고 관심을 보이며 칭찬해 주고 반응해 주는 방법으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길고 장황하게, 너무 진지하게 대답해서는 결코 안된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게 아니므로. 짧게 대답하고 다음 반응에 대응한다. 그리고 스몰톡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적절한 순간에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Great talk" "Nice chatting" "Hace a nice day"로 마무리.





내가 먼저 준비를 하자.


항상 대답하는 쪽이었는데, 언젠가 다시 스몰톡을 할 상황이 생긴다면 미리미리 준비를 해서 내가 먼저 치고 나가보고 싶다. 가볍게 생각하자. 어려운 대화가 아니다. 그리고, 연습하면 점점 더 편해지겠지. :)





일생동안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았고 내 또래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효율이라고 생각하던 그것이 인생의 다양한 맛과 즐거움을 포기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나이가 들며 알아간다. 나 뿐만이 아니라 어릴적부터 열심히 살았던 우리 세대인들은 많이 느낄 것이다.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인생에 종착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길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순환하는 길이라는 것을.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오늘 하루를 살며 기름칠을 잘 해놓으면 다음 번에는 생각지도 못하게 쭉 미끌어져 쉽게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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