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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혐오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를 읽고

by Claire mindfulness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치고 굉장히 단순 무식하게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는 '엄마와의 관계'이다.

나에게 엄마에 대한 감정은 엉켜있는 실타래이며 나의 가장 추한 밑바닥을 보게 해서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감정의 역사가 길고 복잡해서 나조차 그 실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40이 넘어서야 제대로 들여다보고 최선을 다해 이해해보고자 하였다. 아직은 모든 것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정의해 보려고 애썼다.


미움을 더 크게 만들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것을 멈추기 위해서 나는 잠시 거리를 두는 방법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미안함과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독하고 매정하다는 비난도 들었지만 나를 온전히 세워야 남을 사랑할 힘이 생긴다고 정당화하였다.


그렇게 엄마와 거리를 두고 지내던 와중에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일본의 가족심리전문의가 상담을 하면서 만났던, 엄마와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읽으면서 소름이 여러 번 끼쳤다. 누가 몰래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쓴 것이 아닐까 싶게 공감이 되어서다.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책을 예전에도 몇 권 읽었었지만, 책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이렇게 내 상처가 후벼 파이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내가 잘못했어. 엄마를 미워해서 미안해"라고 사과하는 쪽은 대부분 딸이다. 엄마는 딸에게 원망의 말을 들어도 태연하게 "어머, 너 나를 미워했었니?"라고 한다.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엄마에게 그동안 엄마로 인해 혼자서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때의 엄마의 반응이 놀라웠다. 엄마에게 나는 항상 착하고 완벽한 딸이었다고. 우리가 사이좋고 마음이 잘 통하는 모녀 사이라고 생각했다고. 네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때 생각했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엄마에 대한 혐오가 부끄러운 나머지 꽁꽁 숨기고 혼자 썩이고 살았구나. 이렇게 곪아 터지기 전에 내가 진작에 더 강하게 표현했어야 했구나.


어린 딸에게 언제나 차갑고 매정했던 엄마,

어떤 상황에서도 딸의 못난 점만 기똥차게 찾아내 지적하며 딸 마음에 비수를 꽂는 엄마,

본인 힘든 것만 세상 중차대한 일이고 딸은 힘들게 전혀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엄마,

이런 엄마가 우리 엄마 말고도 많이 있구나.

나는 세상에 한없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엄마만 있는 줄 알았어.





그녀는 당연히 엄마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지 못한 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


쓸쓸하게 혼자 있는 엄마에게 분노의 감정을 갖는 것도 나의 이기심 때문 아닐까? 엄마의 말에 위화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때마다 이렇게 그보다 두세 배 더 강한 죄책감이 끓어올라 당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엄마를 진심으로 애정하지 못하는 것이,

엄마의 말을 들으면 아무리 따뜻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위화감이 올라오는 것이,

성격적으로 결함을 가진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보통의 사람도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엄마의 말에 따르든 반대하든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자신을 지배하는 엄마에 대한 딸의 원망은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표출된다. 딸은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 엄마가 딸을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하듯 딸 또한 엄마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나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고 차갑고 매몰찼다.

마음이 여렸던 어린 나는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엄마의 마음에 드는 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가치관과 취향에 토를 달지 않고 수용했다.

그러다 내 마음도 딱딱하게 굳어가고 점점 내 마음대로 많은 것을 결정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셨다. 내 의사를 존중해 주셨다.

어른이 되어 내가 꽤나 독립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철저하게 분리되어 살았고, 엄마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며,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엄마의 부정적인 말 끝에 매번 남겨진 여운이 나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힐 때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방금 나는 인생을 나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경비를 지불했다."라고


동양 문화권에서는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딸은 엄마에게 느끼는 미움, 분노와 같은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억제하며 성장한다. 죄책감의 바탕에는 공포가 깔려있다. 엄마를 존경하지 않는 딸은 불효녀라는 사회적 낙인이 두려운 딸이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을 질책하게 된다. 작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세상에 잘못된 감정이란 없다고.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 보라고.

가까운 사람들과 이 감정을 공유하고, 일기 쓰기를 추천하였다.


나 역시 꽁꽁 숨겨왔던 나의 감정을 아빠와 여동생에게 털어놓았다. 감정의 크기가 점점 커져 너무 버거워 장녀로서 받을 비난을 나름 감수한 것인데 아빠와 동생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랬었냐고, 그렇게 힘든지 정말 몰랐다고. 그 말이 고마웠다. 감정을 공유한 것만으로 엉킨 실타래가 조금은 풀어진 기분이었다.


엄마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내 감정을 이해시킬 수도 없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이제 그런 원망의 마음도 없다.

나 스스로 풀어가야 할 문제인 것을 이제 안다.


반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아직은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너무 오래지 않아 그 시간이 곧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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