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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mindfulness Apr 28. 2024

공생인가 기생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 심리적 채무에 대해서 


시간이 한참지나고 인연이 끊긴지 오래되었는데도 찜찜한 마음이 드는 관계가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진실, 정확, 완벽, 객관, 이런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왜곡된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왜곡된 그 인지마저도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인연이 끝나고 난 뒤 처음에는 당했다는 느낌이 나를 지배했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순간은 무엇을 계기로 열리는 것일까? 지극히 선택적으로 부당하게 여겨지는 사건들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나도 가해자다 여기며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 선택적으로 생각나는 옛 일들을 되짚어보며 나도 바보같이 당했다고 자기합리화의 회로를 돌려 가해자의 굴레에서 빠져나간다. 억울하다. 내 것들을 빼앗아간 것을 알았던 그 때 참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이렇게 생각했던 스스로가 무색해지게 몇 일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반대로 조건없이 받았던 많은 것들이 새록새록 보인다. 왜 잊고 살았을까. 어떻게 까맣게 잊었을까. 과분한 것들을 받고도 고마움을 간직하지 못하고 원망을 만들어내는 내 의식이 참 놀랍다. 죄스럽고, 미안하다. 


정상범주의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는 얼마나 못 믿을 것인지, 이런 렌즈로 이루어지는 사람 사이의 계산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왜 우리는 필연적으로 발생한 기억의 왜곡으로 생긴 순간의 감정으로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빚은 없다. 나의 지난 날은 최선을 다해 나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또 받았다. 미안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이 깨끗하다. 나도, 너도 이제는 마주칠 일 없이 자기 길에서 잘 살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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