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행복나무는 잘 자라고 있는가?
얼마 전 해외에 나가 있는 남편과 페이스톡을 했다. 남편은 내가 너무 부럽단다. 도대체 왜? 2개월 뒤 수술을 앞두고 있는 내가? 자칭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인 내가 뭐가 그리 부럽냐고 투덜거리며 물었다. 남편 왈,
“하고 싶은 수업도 듣고, 책도 보고, 전시도 보고,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잖아.”
왜 남편 말을 들으면 속이 상할까? 남편 따라 해외에 나가느라 내 경력은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고, 남편 고집대로 아이 두 명을 낳아 기르느라 나를 위한 삶은 무의식 속에 처박아 버린 지 오랜데. 나의 24시간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롯이 가족을 위한 것이었는데.
행복을 느낄 새도 없던 때 읽게 된 『나태주의 행복수업』은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책을 빠르게 읽고 나니, 이대로 헤어지기엔 아쉬웠다. 마음을 울리는 표현들이 어찌나 많던지…… 결국 다시 한번 나태주 시인의 생각을 따라가며 생전 안 해 본 필사노트를 했다. 필사를 하면서 나이 팔십에 다다른 시인이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의 숲 속에 들어가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저 나무는 내 마음의 숲이에요. 나는 저 나무를 보면서 감정을 호흡해요. 살면서 저런 나무 한 그루를 가질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에요. 볼수록 감사할 일이지요. 살아보니 감사가 감정의 숨구멍이에요.’
나는 내 인생에 나무를 심었을까. 내 마음에는 숲이라고 할만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가. 가만히 내 안을 들여다본다. 다행히도 나는 행복한 것 같다. 내가 행복하다는 것은, 나태주 시인이 말한 것처럼 내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리라.
그동안 행복에 대해 논한 철학자들은 많다. 근대 학문의 사상적 아버지라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정의했다. 당연히 동의한다. 나도 내 인생의 목적을 행복으로 삼은 지 오래다. 젊은이라면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성공을 최우선으로 삼아 일에 미쳐 살았으니까. 주중에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 일을 했다. 30대까지 그렇게 보내고 부장이라는 지위에 올랐다. 승진은 누구보다도 빨랐고, 성취감에 가득 찬 나는 행복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남은 것은 망가진 몸이었다. 회사에서 내가 누렸던 명예와 지위는 회사 밖을 벗어나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30대 말에 대기업 부장에서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으로 돌아와 오랜 시간 해외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살았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고군분투하다 보니, 어느덧 큰 아이는 대학에 들어가 내 품을 떠나버렸다. 돌이켜보면, 나의 40대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헌신했던 시기였다.
중간중간 내 일을 하기도 했지만, 가족의 행복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선을 그어 놓고 했다. 나 자신의 성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그 시절에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지만, 한편으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라고.
이제 남은 삶에서 내가 가장 바라는 바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가족, 주변 지인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나에게 행복이란 어떤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행복한가?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나의 목적인데, 내 삶의 목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나는 언제 행복한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남들이 어떻게 보던 상관없이, 내가 나 자신에게 만족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 지난 10월에 목표로 했던 글쓰기 초안을 드디어 탈고했다. 1년 이상 걸렸던 글을 10월을 목표로 간신히 끝내고 나니, 내 인생에 있어서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든다. 아마, 여기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작가님들이라면 성취감에서 오는 행복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남들에게 내가 한 일을 인정받을 때도 행복을 느낀다. 남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여길 때, 타인들에게 내 쓸모와 존재가치를 인정받았을 때 행복하다. 나는 인정욕구가 강한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와줄 때도 나는 행복을 느낀다. 내가 멘토링한 아이와 학부모에게 극찬을 받고 감사 인사를 받을 때 뿌듯하고 행복하다. 내 존재의 이유를 발견해 준 사람들이 감사하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선한 사람들을 만날 때도 행복하지만, 나와 생각과 경험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도 행복하다. 나에게 좋은 자극을 주고 나의 죽어 있던 생각을 깨워주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행복을 느낀다. 매주 수업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젊었을 때 느꼈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설렘과 행복을 다시 느끼게 해주고 있다.
나는 의식적으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평화로운 천당과 유황불이 끓는 지옥을 넘나 든다. 그럼에도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다. 어제는 아이와 둘이서 블루마블 게임을 했다. 큰 아이가 어렸을 때는 자주 했던 게임이었는데, 둘째 아이와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의 무심함에 충격을 받았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이에게 중요한 테스트가 있어서 공부를 해야 했지만, 아이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덕분에 테스트를 보고 나서도 아이는 계속 행복해했다. 나도 흡족했다. 하지만, 저녁에는 별 것 아닌 일로 다시 첨예하게 싸웠다. 아이에게 해주는 모든 내 노력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아침식사조차 차려주고 싶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다행히도 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제의 화는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는 어제저녁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고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고 매 순간 행복을 느끼기에는 아직도 나의 내공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도 매번 노력하고, 더 노력한다면, 나를 둘러싼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내 마음속에 행복의 숲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반절을 지나면서 깨달은 내 안의 행복 나무들은 5년 뒤, 10년 뒤에 어떻게 자라 있을까? 가끔은 천둥번개와 폭우도 맞겠지만, 따스한 햇빛과 정성 어린 보슬비를 더 많이 내려 준다면 무럭무럭 잘 자라 있을 것이다.
당신의 행복나무는 잘 자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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