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매섭게 부는 겨울이 되니 따끈따끈한 간식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에 집 골목을 나와 조금만 내려가면, 길가 전봇대 옆에 군고구마 장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빠보다 나이 들어 보이던 아저씨는 두꺼운 털모자를 쓰고 볼이 빨개진 채, 둥그렇고 녹슨 장작통에 고구마를 구워 줬다. 엄마에게 받은 돈으로 아저씨에게 한 봉지를 사들고 와, 동생들과 함께 나눠 먹는 군고구마는 겨울의 별미였다. 아빠가 퇴근길에 어쩌다 사 오는 군고구마를 보면 우리 삼 남매는 기쁨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아빠보다 군고구마가 더 반가웠다는 것은 우리들만의 영원한 비밀이다. 새하얀 종이 봉지에서 따끈한 군고구마를 꺼내 얇은 갈색 껍질을 살살 벗기면 샛노란 속살이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노란색으로 잘 익은 고구마는 어찌나 먹음직스러운지! 검댕이를 떼어내고 뜨겁고 달달한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재미는 특별했다. 손가락이 새까맣게 변했지만, 뭐 그리 대수랴!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사람을 만들던 낮이 지나, 새까마진 창 아래 뜨뜻한 온돌방 아랫목에 둘러앉아 먹는 뜨거운 군고구마는 그리 좋을 수 없었다. 겨울도 따뜻하고 행복한 계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먹거리를 매우 좋아했던 나는 처음으로 군고구마를 먹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에게 동생이 생기자마자, 엄마는 나를 시골 외할머니댁에 보냈다. 아무것도 모르던 꼬꼬마는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신이 나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이모와 함께 외가에 도착해서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 이모에게 둘러싸여 함께 사계절을 보냈다. 외할머니는 ‘엄마와 떨어져 있어서 보고 싶을 법한데도, 그 어린 게 한 번도 울지 않고 보채지도 않아’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내 의젓한 모습이 기특했던지, 외가의 사랑은 온통 내 독차지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외할머니댁은 신기한 보물로 가득한 별천지 같아서, 미쳐 엄마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보통은 밝고 유쾌한 넷째 삼촌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어린 나이에도 삼촌을 따라가면 재미있는 놀거리와 맛있는 먹거리가 생긴다는 생활의 지혜를 터득해 버린 것이다.
어느 눈 내린 오후, 나는 두꺼운 외투와 벙어리장갑, 털장화로 중무장을 하고 넷째 삼촌을 쫄래쫄래 따라 집 밖으로 나갔다. 또 무슨 새로운 놀이와 먹거리가 나타날지 기대를 하면서. 우리는 앞 뜰을 가로질러 소 외양간을 지나 평평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 위와 언덕을 감싸고 있던 대나무숲에 눈이 내려앉아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한 모습은 땅꼬마의 가슴을 뛰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신나는 썰매놀이가 끝난 후에, 삼촌은 언덕 구석으로 가서 나무로 된 가마솥뚜껑 같은 것을 들어내었다. 그곳에는 내 몸 만한 커다란 구멍이 있었는데, 삼촌이 그 속으로 쑥 내려가는 게 아닌가? 나는 깜깜하고 커다란 구멍이 무서워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에서 삼촌을 기다렸다.
조금 후, 삼촌은 포대자루를 든 채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무엇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고구마라고 알려주었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불그스름한 게 길쭉하고 울퉁불퉁한 데다가, 수염까지 나서 참 못나 보였다.
나는 비록 못 생겼지만 새로운 간식인 고구마를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삼촌 손을 잡고 얼른 외가댁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안방 윗목에는 내 몸통보다 더 두터운 화로대가 놓여 있었다. 삼촌과 나는 화로대 앞에 앉아 깡깡 언 두 손을 녹였다. 잠시 후 외할머니가 깨끗이 씻은 자색 고구마를 광주리에 담아 오셨다. 외할머니는 화로대에 고구마 몇 개를 넣고 재를 저어 주셨다. 장작 사이에 어른거리는 빨간 불빛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고구마가 익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으려니, 내 눈앞의 세상이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군고구마’라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무슨 맛일지 궁금했던 나는 군고구마 한 입을 얼른 베어 먹고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삼촌이 호호 불면서 까준 군고구마는 못생기고 칙칙한 겉모양과 달리,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달고 맛있었던 것이다! 과일 이외에는 단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던 나에게 군고구마는 신세계를 열어준 ‘최애 간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서울집에 다시 돌아온 뒤로는 군고구마를 먹을 기회가 없었다. 슬프게도 우리 집에는 그 멋진 화롯불이 없었던 것이다. 겨울이 되면 외할머니 댁에서 먹었던 그 샛노란 군고구마가 생각나곤 했다. 외할머니가 직접 기른 노고와 정성이 가득 담긴 고구마. 긴 시간 화롯불에 익느라 오래 기다린 나의 노고까지 더해져 더욱 맛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시장에 가던 길가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군고구마를 다시 만나,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나는 지체 없이 엄마에게 한 봉지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생전 부탁이란 걸 하지 않던 내가 간절히 말하자, 엄마는 바로 군고구마를 사 주셨다. 집에 와서 동생들과 함께 먹은 군고구마는 역시 맛있었다. 동생들도 새로 사귄 군고구마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고구마에 대한 내 끝없는 애정이 무의식 중에 영향을 줬는지, 글쎄 나는 군고구마 같은 남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대학 때 만난 남편의 별명은 '불타는 고구마'였으니, 군고구마에 대한 내 사랑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었나 보다. 다시 시간이 흘러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내 간식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먹일 간식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일상 업무가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기술의 발달 덕분에 화롯불이 하던 역할은 군고구마 냄비가 대신하게 되었다. 잊고 있던 내 과거의 사랑 군고구마는 다시 내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직화냄비에 고구마를 구워 아이들에게 주었는데, 특히 큰 아이가 군고구마를 참 좋아했다. 하지만, 구워서 태우는 요리법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군고구마 냄비를 처분해 버리고 더 이상 굽지 않게 되었다. 겨울이 되면 길가에 자리 잡고 있던 군고구마 장수 또한 보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군고구마를 파는 것이 수지타산에 맞지 않고 오히려 손해인지라 사라졌다고 한다.
어느덧 바쁜 일상 속에 군고구마에 대한 애정이 사라져 버린 것도 모르고 지내던 어느 겨울,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부산 기장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리조트에 딸려 있는 쇼핑몰 야외로 나가보니, 세상에나! 자취를 감추었던 군고구마 장수가 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반가웠던 나는 얼른 군고구마 장수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예전 군고구마 장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 남녀가 함께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가득했고 친절했으며, 입은 옷도 아주 깔끔하고 트렌디했다. 군고구마통도 은색의 세련된 모양새로 깨끗했다. 한마디로 '고오급 군고구마 장수'였다.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사라져 버린 간식을 재현한 것이 참 기특하고 반가웠다. 가격은 한 봉지에 2만 원이나 했지만 그게 대수랴! 나는 거금 2만 원을 기꺼이 내고 군고구마가 몇 개 들어 있지도 않은 한 봉지를 얼른 구입했다. 추운 겨울에 뜨거운 김이 솔솔 나는 샛노란 군고구마는 역시나 맛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먹으니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군고구마 덕에 배가 든든해졌다.
내 인생의 간식을 떠올려 보면, 붕어빵, 군밤, 호빵, 호떡과 같은 소박한 간식과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 와플 등의 화려한 서양 간식이 있었다. 비록 다른 간식에 한 눈을 팔고 좋아도 했지만, 나에게는 역시 외할머니 댁에서 처음 소개받은 군고구마가 최애 간식이다. 외할머니의 사랑과 정성, 그리고 삼촌과의 즐거웠던 추억을 소환해 주기 때문일까?
겉모습은 비록 못생기고 별 볼일 없어도
내실은 단단하고 뛰어나도다
반전 매력을 품고 있는 달디단 내 사랑
군고구마와 사랑에 빠진 지 어언 40년
불타는 고구마와 사랑에 빠진 지 이제 20년
내 남은 인생 군고구마는 내 옆 자리를 지키며 사랑을 갈구하려나
불타는 군고구마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인연
영원한 내 사랑
#간식 #겨울간식 #최애간식 #고구마 #군고구마 #불타는고구마
불타는 군고구마, 너는 내 영원한 사랑이야!
#간식 #겨울간식 #최애간식 #고구마 #군고구마 #불타는고구마
이미지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