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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언어들, 환우에게 배운 따뜻한 연대

by 끌레린

어제는 병원에 오래 있은 후 몸이 안 좋아져서 글을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30일 글쓰기 챌린지 동안 [숨은 얕아졌지만 담담합니다]를 완성할 때까지는 이 브런치북만 연재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입원했을 때 2인실 창가 자리는 이미 주인이 있었다. 나보다 연상으로 보이는 분이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창밖 설경이라도 보며 마음을 달래면 좋을 텐데...' 아쉬움이 스쳤지만, 수술을 앞둔 마음에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여유조차 사치였다. 그런데, 그분은 신기하게도 하루 종일 병실에 없었다. 내가 복도를 천천히 걸을 때면 그녀는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갔다. 아직 수술 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회복력이 남다른 건지 궁금했지만, 수술을 앞두고 기분이 가라앉은 내게 먼저 말을 걸 생각은 없었다.


수술 당일 아침, 그녀가 먼저 다가왔다.

"이제야 대화를 하네요. 오늘 수술하시죠?"

"네… 솔직히, 좀 무서워요."

"걱정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젊으니까 회복도 빠를 거고요."

"정말 그럴까요? 폐를 잘라낸다는 게 너무 무섭거든요. 나중에 숨쉬기 힘들까 봐요..."

"저 좀 봐요. 이렇게 잘 걷고 있잖아요."

"아, 어제 복도에서 빨리 걸으시는 모습을 보고 아직 수술 안 하신 줄 알았어요!"


대화를 나누며 곤두섰던 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녀는 의료진 출신으로 전문 지식이 풍부했고, 평소 독서토론 수업도 이끌어온 분이라 우리는 책 이야기까지 나눴다. 같은 아픔을 겪은 환우 선배의 말 몇 마디가 이렇게 큰 위로가 되는 줄 몰랐다. 경험자의 말이 주는 힘이란 실로 대단했다.


다음 날 퇴원하며 그녀가 연락처를 건넸다. "같은 지역에 사니까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해요."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 나는 드디어 가슴 옆에 꽂힌 배액관을 제거하러 처치실로 향했다. 의사가 관을 빼내고 상처 세 곳을 소독한 뒤 성긴 실밥으로 꿰맸다. 순식간에 끝난 처치 후, 나는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오갈 수 있었다. 그때 비로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병동 환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층 환자분들이 모두 폐암인가요?"

간호사가 그렇다고 답했다. 흡연 남성의 폐암 발병률이 높다고 알고 있었는데, 중장년 여성들이 이렇게 많다니 의외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비흡연 여성의 폐암 발병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미세먼지, 간접흡연, 주방 연기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복도를 걷다 마주친 두 여성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수술 끝내셨어요?"

"네, 했어요."

"저희는 오늘 입원했거든요. 내일 수술인데... 어떠세요? 많이 힘든가요?"

"괜찮아요. 무통주사 덕분에 생각보다 아프지 않고, 배액관만 빼면 훨씬 편해져요. 수술도 잘 될 거예요."

"정말 수술 환자 같아 보이지 않아요. 다행이다!"

나는 미소로 답했다. 폐 절제술을 앞두고 얼마나 두려울까. 경험자의 몇 마디가 주는 안도감이 얼마나 소중한 건 지 알아버렸기에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별 것 아닐지라도, 마음을 잇는 작은 대화를 통해 내가 받은 위로를 이제는 내가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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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로 돌아오니 새 환자가 와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온 그녀는 세련된 옷차림에 정성스러운 메이크업으로 품위를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차근차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흔 살 가까운 나이에도 건강관리에 신경 써왔다는 분이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고, 우아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미 상당한 크기까지 자란 종양이었다. 꾸준한 건강검진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속상해하는 그분이 안쓰러웠다. 작은 결절을 절제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그분 마음은 얼마나 불안할까. 진심으로 회복을 기원한다고 위로했다.


퇴원 후 처방약에 대해 문의할 일이 있어 병원에 연락했을 때, 그분 수술 결과도 궁금해 물어봤지만 개인정보라며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 불안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던 그분 모습이 떠오른다. 부디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기를...


암에 걸려 깨달은 것은 가족조차 환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가족들조차도 간병의 무게와 더 많은 집안일에 지쳐가는 상황에서 환자의 섬세한 감정까지 헤아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오직 같은 길을 걸어본 동병상련의 환우들만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 아픔이 만들어낸 깊은 이해 덕분일 것이다.


수술 3개월 후 병원 세미나에서 만난 환우회 선배들도 그랬다. 첫 만남부터 아낌없이 경험을 나눠주었다. 수술 후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조심했는지, 살아가는 지혜들을 전수해 주었다. 수술 후 10-20년을 건강하게 살아온 70-80대 어르신들의 생생한 조언은 그 어떤 의학서적보다 값진 정보였다. 안타깝게도 부부가 함께 투병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분들의 연대감은 더욱 깊고 따뜻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환우 네트워크의 힘이다. 의학의 발달로 암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지만, 마음의 치유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에서 온다. 특히 젊은 환자들이 늘어나는 현재 상황에서 같은 경험을 한 선배들의 존재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희망의 메신저가 되고 싶다.


"우정은 즐거움 주위에서 춤춘다. 그것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고 깨운다(주 1)."라고 했다. 환우들과의 만남은 단순한 정보 교환을 넘어선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두려움을 나누며,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켜나가는 특별한 공동체가 형성된다. 혈연도 지연도 아닌, 오직 같은 아픔을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만들어지는 이 특별한 연대는 그 어떤 관계보다 진실하고 깊은 우정이 아닐까?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낯선 이의 "괜찮아요"라는 한 마디, 퇴원하며 건넨 연락처, 세미나에서 만난 선배들의 아낌없는 조언들. 이 모든 것이 바로 환우 연대의 모습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간병인이자 상담사이자 동반자가 된다.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침묵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치유의 여정을 함께 걸어간다.

이런 연대가 특별한 이유는 그 안에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수술 전 밤의 불안,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함,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들. 가족들도 모르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 공감해 주는 이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치유가 된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 깨달으며 감사함이 벅차올랐다. 환우 연대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지켜주는 든든한 안전망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환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이해받으며, 사랑받는다. 내가 받은 위로를 다른 이에게 전하고, 암 환자들만의 특별한 연대감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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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은 잠시 쉬어가라는 인생의 쉼표일 뿐,

인생의 마침표는 결코 아니다. 나도 이번 아픔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잘 돌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더 건강해질 것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더 건강해지도록 꾸준히 내 몸을 챙기려 한다.


우리는 의학 기술의 엄청난 발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앞으로 암 환자의 생존율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든든한 환우 동료들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는 선배가 될 수 있다. 부디 절망하지 말고,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생각하자. 그날을 위해, 그리고 더 건강하고 의미 있는 내일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팁! 수술 후 생활 가이드 - 선배들의 검증된 조언]

아래 내용은 환우들의 경험담과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으니 담당 의료진과 상담 후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적극 권장하는 것들

�️ 산행과 맑은 공기

가능하다면 매일 산에 오르자. 맑은 공기만큼 좋은 약은 없다

높은 산보다는 접근성 좋은 동네 뒷산도 충분히 효과적이다.


�‍♀️ 꾸준한 걷기 운동

뛰기보다는 오래 걷자. 체력 회복의 기본이다

하루 최대 1만 보를 목표로 하자. 단, 절대 무리하지 말고 점진적으로 늘려가자.

폐가 90% 이상 회복되었다면(보통 수술 후 6개월 때의 목표) 이제 천천히 달리기도 시작하자. 폐에 숨이 차 벅차더라도 꾸준히 한다면 폐 기능이 향상된다.


� 철저한 호흡기 보호

거리를 걸을 때 마스크는 필수다. 배기가스와 미세먼지, 자동차 타이어 분진으로부터 폐를 보호하자.

사람 많은 곳은 가급적 피하되, 꼭 가야 한다면 KF94 마스크를 착용하자. 감기, 독감, 코로나19 등 전염성 호흡기 질환에 걸려 폐렴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자.


� 균형 잡힌 영양 관리

탕류와 무침류, 샐러드 위주의 한식이 좋다.

단백질 섭취가 핵심이다. 붉은 고기보다는 두부, 생선, 닭가슴살 등을 매끼 충분히 섭취하자.

보양식으로는 흑염소, 장어, 전복 등이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


반드시 피해야 할 것들

� 가공식품과 화학첨가물

MSG, 방부제가 든 가공식품은 최대한 자연식품으로 대체한다.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이 가장 안전하다.


� 발암 위험 음식들

햄, 베이컨, 소시지 등 가공육류는 피해야 한다.

튀김류, 탄 음식, 훈제식품도 주의하자.

과도한 소금 섭취도 주의한다.


� 주방 연기와 실내 오염

기름 요리 시 충분한 환기가 생명이다. 레인지후드는 물론 모든 창문과 문을 열어 완전히 환기한다.

가능하면 기름 요리는 가족이나 지인이 대신해 주는 것이 좋다.


[주 1]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 쾌락』, 문예출판사, 2022

* 이미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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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아요'와 '구독'은 제가 멀리 항해할 수 있는 바람이 됩니다. 여러분의 응원과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시고, 함께 항해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요!


* 30일 글쓰기 챌린지 동안 아래 연재 브런치북은 중단하고, [숨은 얕아졌지만 담담합니다]를 연재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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