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짐으로 독서량을 늘리기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매일 조금씩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조금만 읽다 자야지 라고 펼쳤던 책인데 순식간에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려갔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한번은 겪었을법한, 그리고 현재 겪고있는 이야기들이라 중간중간 코끝이 시려왔다.
"너는 기집애가 왜그러니", "참 여자답지 못하네" 라는 무심코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도 모르게 여자는 조신하고 연약하다, 남자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해야한다는 세뇌를 당하며 살아왔다.(물론 남자도 마찬가지고 고정된 성 역할을 강요당하고 있다.) 사회에 나와 보니, 여자라서 또는 엄마라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여성들이 정말 많다. 점점 비혼족이 늘고 출산율이 줄어드는 요즘 현상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최근 라이오스타에서 김이나 작사가가 아이 계획이 없다고 하니 김흥국씨가 무심코 뱉은 한마디에 똑부러지게 답변하는 김이나 작사가!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나니, 내가 겪은 에피소드들이 머릿속에 맴돌아 끄적여본다.
#1 스물한살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골목길. 낮에 일하는 피씨방에서 자주 보던 남자아이가 뛰어오더니 가슴을 만지고 지나갔다. 당황해서 아무 소리도 못내고 몇초간 얼음이 된 후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소리질렀지만 이미 저 멀리 도망간 후였다.
다음날 pc방에 출근해서 회원목록을 뒤져 그 아이의 이름과 학교를 찾았다. 마침 남동생이 다니는 중학교 학생이었다. 동생에게 전화해 이름을 알려주면서 알고 있나고 물어봤다.
왜냐고 묻는 동생에게 괜찮은척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를 했다.
동생도 괜찮은척 알아볼께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알바가 끝날때 즈음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잠깐만-"
수화기 너머로 개미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10년이 지난 이야기라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은 나지않는다.
다시는 눈에 띄지 말라고 협박을 했던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안된다고 타일렀던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경험은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한번 쯤 겪는 일이다. 더 심한 일들도 많다.
#2 대학교 친구 중에 경상도 양산출신에 사투리 걸쭉하게 쓰는 종갓집 자손 남자사람친구가 하나 있었다.
졸업 후 언젠가 술자리에서 회사에서 직급이 비슷한 여자 사원이랑 싸운 이야기를 하는데 가관이었다.
누가 봐도 본인잘못인데 인정하기 싫은지 기가 세다느니, 어디 여자가 따박따박 말 받아친다느니..
어디 조선시대에서 돈많은 양반이 타임머신타고 오신줄 알았다.....
어처구니가 없어 친구에게 할아버지같은 소리 한다며 너희 누나랑 어머니도 여자라고, 다른사람이 그런식으로 너희 가족한테 이야기 했으면 좋겠냐고 씩씩거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쩌겠어 여잔데" 였다.
문득 그집 누나가 너무 불쌍해 졌다. 원래도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였지만 그 이후로 영원히 빠이빠이했다.
#3 취업컨설팅을 할때 여학생들에게 종종 받았던 질문들이 있다.
"선생님, 기업에서 남학생들을 더 선호하지 않나요?",
"공대 여자도 취업이 잘 되나요?"
"00직군에 취업하고 싶은데 여자는 잘 안뽑지 않나요?"
2014년 기준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다고 한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자가 승진에 더 불리하고, 여전히 여성 평균연봉이 더 낮고, 여전히 여자를 선호하는 직군이나 기업이 많다.
컨설턴트이기 전에 여자 공학도로서 이러한 현실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 서글프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인근지역의 회사에서 취업을 의뢰하는 인사담당자와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그 중 직/간접적으로 전문직(고소득)은 남성, 일반 사무직(저소득)은 여성을 선호하는 기업이 있다. 김지영씨가 다니는 회사에서 회사 핵심사업을 진행하는 기획팀에 남자사원들만 배치한것처럼. 괜히 청개구리처럼 남자직원을 찾는 회사에 괜찮은 여학생이 있다거나, 싹싹한 경리 여직원을 찾는 회사에 남학생을 추천하기도 한다.
책 마지막에 김지영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신과 남자의사의 생각은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뿌리깊히 박혀있는 남녀차별이 촘촘한 사회제도와 인식개선을 통해 남자가 살기 좋은 세상, 여자가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닌 모두가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JTBC 말하는대로 프로그램에 손아람 작가가 나와서 젠더의식과 관련한 길거리 강연을 했던것이 기억에 남아 강연일부 영상을 첨부해본다.
영상 링크 : http://naver.me/FMmgpc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