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무모했던 20대 초
호주를 가리라 마음먹은 것은 대학교 2학년 즈음이었다.
공대생이다 보니 1학년이 지나고 슬슬 남자 동기들이 군대를 가기 시작하자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놀던 학교생활이 점차 무료해졌다.
여자 동기들끼리 우리도 군대 가는 셈 치고 2년 쉬고 다 같이 학교 다니자는 우스갯소리를 하였고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정말로 여자동기 넷이 나란히 휴학을 했다.
그때부터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투잡을 뛰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다.
물론 여러가지 사정으로 계획된 돈과 계획된 시기에 떠날 순 없었지만 2009년 12월, 나는 필름 카메라와 함께 호주 브리즈번으로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떠났다"보다는 "도피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 할 정도로 나에겐 숨쉴 구멍과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나의 첫 해외여행은 나홀로 9개월동안 진행되었다.
코끝이 시려오는 한국의 12월과는 달리 호주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뜨거운 열기에 숨이 탁 멎었다.
평소엔 덥고 답답한게 싫어서 찜질방도 안가는데 그날은 그 열기 마저도 좋았다.
그날의 나는 어렸고, 무모했고, 아무것도 몰랐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아는 이도 없었지만 혼자왔다는 두려움 보다는
높은 하늘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설레임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구한 나의 첫 쉐어하우스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섞여지내는 zone 4의 어느 집이었다.
zone 뒤에 붙어있는 숫자는 도심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나타내준다. 즉 zone 4는 완전 시골이다.
시골답게 미드에서나 보던 집들과 거리들이 펼쳐져 있었고, 심지어 내가 머물고 있는 집에는 수영장도 있었다.
2층 구석 창고같은 자그마한 방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매일 나의 필름카메라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며 이리저리 셔터를 눌러댔고
사진을 보면 그때의 날씨, 기분, 공기가 생각난다.
다시 보니 그립다.
호주의 공기도 그립고, 8년 전의 순수했던 나의 20대 초반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