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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미나리 Aug 26. 2018

엄마의 첫 해외여행

당신의 처음은 어땠는가?

내 여권만 깨끗하대
걱정이야 나만 처음이라


엄마가 다니는 회사에선 매년 전국 지사 중 우수실적 100명만 뽑아서 해외여행을 보내준다.

작년에도 태국행 티켓 대기번호였다가 출발하기 며칠 전 연락을 받았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출발을 못해 못내 아쉬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는 대기번호가 아닌 중국 하이난으로 출발이 확정되었다.

여행을 위해 이번에 만든 여권을 냈더니 엄마여권만 깨끗하다고, 엄마만 해외여행이 처음이라고, 걱정인형 엄마의 걱정이 시작했다.  

엄마 나이가 나이인지라 회사 내에서 최고참인데 요새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쉽게 다녀오니 엄마만 처음인가 보다. 올해 겨울엔 일본 온천여행을 가려고 했건만, 작년에 무리해서 갈걸 그랬나 후회가 들었다.


뭐부터 준비해야 돼?


인천공항에 미리 답사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며 호들갑을 떠는 엄마를 보며 처음엔 가이드도 동행하는데 무슨 걱정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매년 가는 국내여행도 일정과 예약은 다 내가 하고 엄마는 따라오는 정도이다.

실제로 딸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가는 여행도 처음인데 그것도 해외라니! 
낯가리고 걱정 많은 엄마의 입장에선 굉장히 큰 일이었으리라 


나는 2주 전부터 (엄마의)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내 캐리어에 내가 여행 때마다 가지고 다니던 상비약부터 선크림, 양산 등을 챙기고 필요하다는 준비물들을 하나씩 챙겨줬다.


포켓 와이파이도 신청하고

점심시간에 은행 가서 환전도 하고

번역 어플도 깔아드리고

면세점 쇼핑도 하고 오라며 비자카드도 쥐어드렸다.

그리고 매일 중국 하이난 여행을 검색하며 날씨도 모니터링하고, 뭐가 유명한 지 찾아보고 전달해드렸다.

떠나기 직전에는 회사에서 프로젝트 마감을 한달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야근하면서 여행 준비를 하니 내가 여행을 가는 건지 엄마가 여행을 가는 건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공항은 몇시간 전에 가야되?


출발 당일 공항에서 할 일도 리스트업 해드렸다.

7시 집합 / 저녁 10시 비행기이니

1. 집에서 5시에 출발해서

2. 공항 도착해서 포켓와이파이 찾고

3. KT 매장에서 데이터 차단 신청하고

4. 편의점에서 튜브 고추장 사야 한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3번 이상 전화가 왔다.

"와이파이를 찾았더니 VPN을 깔아야 한다는데 이게 뭐야?"

"데이터 차단 꼭 신청해야 돼? 지금부터 차단되면 연락 어떻게 해?"

"수속 밟고 들어가면 밥 먹을만한 식당이 있어?"


전화를 받으면서도 웃음이 났다. 내가 다산 콜센터인 것처럼 답변을 해드렸다. 물론 여행 가서도 콜센터는 계속되었다.


나의 처음은 어땠었나


22살의 막바지인 12월, 나는 혼자 호주로 출국했다.

한창 워킹홀리데이 붐이 불던 시절이었다.

떠나기 전날 엄마와 함께 본 영화가 하필 <테이큰>이었다.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 엄마와 여행 중 납치사건 영화라니...

나오자마자 걱정을 늘어놓던 엄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처음 비행기를 타던 그날,
난 대만을 경유하여 17시간 만에 호주에 도착했다.

기내에선 중국어가 들리고 경유 대기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긴장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전자사전에 팝송을 100곡 넣어두고, 책 한 권으로 버텼다.


호주에 도착해서 느꼈던 공기, 파란 하늘, 습도도 기억이 난다.

계절이 달라서 더 그랬지만.

엄마도 그런 비슷한 마음으로 하이난에 도착해 있겠지.


당신의 처음은 어땠는가


나이와 상관없이 항상 설레지만 두려운 것이 첫 경험이다.

나의 처음, 앞으로 있을 엄마의 처음,

그리고 이 글을 보고있는 당신의 처음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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