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며 지난번 우도가 좋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이번엔 꼭 1박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배 타고 들어가면 묵기로 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픽업해주시기로 하셨는데 전화해보니 일이 있어 제주도로 나와 계신다고.
짐을 자전거 대여하는 곳에 맡겨놓으면 사장님이 찾아서 숙소에 갖다 놓으신다고 하셨다.
원래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돌아다닐 계획이었는데, 예정에 없던 자전거를 빌려야 하나 고민했다.
점심시간이 훌쩍 넘긴 오후라 곧 버스도 안 다닐 거라며 자전거를 추천하셨다.
하지만 내가 자전거를 못 탄다는 것이 함정.
고민 끝에 2인용 전동 자전거를 빌려 친구가 앞자리에서 운전하기로 했다. (친구 땡큐 :D)
하루 동안 우리의 이동을 책임진 전동 자전거
전기차와는 달리 자전거는 우도 안쪽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다. 그리고 약간의 요금을 추가해 1박 2일 대여가 가능했다.
자전거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냥 자전거도 아니고 전동 자전거라니. 처음엔 무섭고 긴장했지만, 이내 바람을 가르며 섬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평일의 우도는 한적하고 조용했다. 마치 거대한 그림 한 폭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아름답고 평온했다.
그냥 걸어 다니면서 보는 풍경과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느끼며 보는 제주는 또 달랐다.
자전거 타고 달리다 어느 골목 어귀에 멈춰 유채꽃과 함께 사진도 찍고, 모래사장 대신 까만 현무암이 있는 바다도 구경하고. 조용히 파도소리를 들으며 멍 때리기도 하고.
돌담과 유채꽃의 조화는 정말 아름답다. 노을지는 우도도 역시 아름답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게스트하우스로 복귀했더니, 아직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손님이 친구와 나, 그리고 여자분 한 분이 계셨다.
게스트하우스이다 보니 보드게임이 많이 준비되어 있어 심심하던 차에 친구와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어차피 도미토리에서 함께 밤을 보낼 분이니 친해질 겸 함께 게임을 했다. 언니 역시 퇴사 후 첫 출근을 앞두고 쉬다가, 충동적으로 비행기표 끊어서 혼자 왔다고.
너무 신기한 건 알고 보니 같은 동네 사는 한 살 언니였다.
제주도를 자주 왔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비슷한 나이 또래 만난 건 처음이라며 반가워했다. 심지어 같은 동네라니 완전 신기!
그렇게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친해져 12시까지 보드게임으로 밤을 불태웠다.
다음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끓여주신 맛있는 전복 해물죽을 함께 먹고, 다음엔 동네에서의 만남을 기약했다. 이게 바로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이다. :)
최근 게스트하우스가 예전의 의미가 퇴색되고 파티와 술 문화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하루 마시고 죽자의 파티가 아닌, 좋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함께 여행하고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진정한 게스트하우스의 문화가 아닌가 싶다.
퇴사엔 역시 제주도죠
이번에 퇴사를 확정 짓고, 쉬는 기간 제주도를 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동료 왈 "퇴사엔 제주도죠! 저도 이 회사 입사 전에 제주도 다녀왔었어요."
해외여행 가기에 부담스럽지만 여행은 가고 싶을 때, 일정이나 자금의 여력이 안될 때, 그냥 휴식과 일탈이 필요할 때 만만한 곳이 제주도다.
제주도가 예전보다 물가도 오르고, 중국 관광객들도 많아져서 예전만 못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아직 제주도는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
이번 여행에도 어김없이 비가 왔고,
차가 없어해보고 싶었던 것도 다 못한 여행이었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호텔에서 친구와 수다 떠는 것도 좋았고,
제주도 택시 기사님과의 대화도 좋았고,
우도에서 전동자전거 체험도 좋았고,
게스트하우스와 데이투어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좋았고,
무엇보다 휴가를 쓰고 온 여행이 아니라 신경 써야 할 것이 없어서 좋았다.
퇴사엔 역시 제주도인가 보다. (출근 D-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