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수많은 마음을 묻는 일

by 나연

어떤 것도 내 삶을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 나타나 나를 끌고 가버렸으면 한다. 어떤 것에도 매여 있기 싫다. 하지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히고 싶다. 다들 이렇게나 모순적인 마음을 달래며 사는 걸까.


일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 내면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려 애쓰고 있다. 나의 속마음은 자기주장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뭐 하고 싶은지 물어봐도 '아니 모르겠다고. 갑자기 뭘 하고 싶어야 되는데?' 하고 되묻는 느낌이다. 그래서 선택지를 단계적으로 주면서 묻기도 한다. '오늘 저녁 메뉴는 마라탕이냐 파스타냐?' '오늘은... 파스타.' '토마토냐 크림이냐?' '토마토... 아니 크림.' 대화는 겨우 겨우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여러 가지를 물어본 결과 나는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사실은 되게 까탈스러운 사람이다. 이러고 싶으면서도 저러고 싶어 한다. 사람을 안 만나서 외롭고 지겹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막 만나고 싶은 건 아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게 진저리가 나게 싫으면서도 강의를 하고 나오면 활력이 돈다고 한다. 많은 생각을 글로 써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가도 아무에게도 생각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어쩌라는 건지 싶다가도, 가만히 마음의 소리를 듣다 보면 이렇게 복잡한 선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쉽게도 따랐구나 싶다. 나는 누가 뭘 하자고 해도 잘 따르곤 해서 스스로 굉장히 무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이렇게나 예민하고 다층적인 마음이었는데 스스로 계속 무시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의 이야기는 잘 들으려고 애쓰면서 나의 말에는 너무 신경을 안 쓰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생각한다고 뭐든 다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과 생각에 신경 쓰는 만큼 내 마음의 우선순위에 신경을 써야 한다. 결국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모든 게 의미가 있는 거니까. 내면의 목소리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다른 목소리에 묻히고 만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순간, 무엇이 이래야 한다고 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원칙을 떠올리는 동안 내가 원하는 것은 떠올리기도 전에 사라진다.


사실 자신의 마음 하나 잘 돌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아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천지분간 못하는 이 작은 생명은 말을 하지 못한다. 부모는 이 갓난쟁이가 왜 이렇게 계속 우는지 알아내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있는 힘껏 주의를 기울인다. 자신을 돌보는 것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자신의 마음 속 목소리도 있는 힘껏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오랫동안 묻지 않은 마음은 갓난아기처럼 자기 표현을 하는 데 서툴기 때문이다.


존 카밧진은 '목숨이 그것에 달린 것처럼 주의를 기울일 때 생겨나는 무엇'을 마음 챙김이라고 했다. '목숨이 달린 것처럼'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 이런 표현을 적용한 적이 있나. 대체로 스스로 자신을 잘 안다고 착각하고 넘겨짚으며 산다. 모든 선택을 자유의지로 했다고 믿고, 타의적인 선택을 한 경우에는 그건 상황이 이래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조차도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원래 그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빠르게 결론짓는 일들도 많다.


그렇게 귀찮은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어느 순간 우리를 길을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의 방향키를 잘 쥐고 있는지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일을 다녀오면 쓰러져 잠이 들고 Sns 글과 쇼츠에 정신을 쉽게 빼앗긴다.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것에는 시간을 내어주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만 같은데 그건 생각하지 않아 잊어버린 것이다.


일을 쉬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나의 호기심과 욕구를 되찾는 것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 다 잊었다. 일을 하는 게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되기 때문에 간편하게 내가 원래 원했던 것들은 미루거나 잊기로 했다. 다시 기억해 내야겠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것은 내가 아직도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저녁 메뉴 하나부터 먼 미래에 바라는 일들까지 어느 하나 단일적인 마음이 없다. 이렇게 모순적인 생각을 품은 나를 받아들이는 게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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