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늙은 것은 새로운 것보다 매력적일 수 있을까. 파리에 여행을 갔을 때 건물이나 물건이 전부 너무나 오래되어서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아주 오래된 것들이 중후한 매력을 뽐내는 도시였다. 이는 파리에 루브르와 같은 세계적인 박물관과 역사적 랜드 마크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주 평범한 것들까지도 족히 한 세기는 지난 것으로 보였다. 하얀색이지만 세월의 흔적이 가득 뭍은 건물들, 윤이 나지만 색이 바랜 에메랄드 빛 독서등, 반들반들 부드럽지만 생활 기스가 가득한 베르사유 풍 의자와 테이블. 오래된 것들의 당당함이 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 번은 파리에서 영화 ‘비포 선셋’의 주인공들이 방문한 카페를 찾아갔다. 영화가 나온 지도 20년이 넘었고 그 이전부터 있었던 카페이니 아주 오래되었다. 출입구에 빨간색 천막 지붕이 있는 카페인데 영화에 나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물론 천막에 때가 타고 색이 바래서 검붉은 빛이 되어 있었다. 내부로 들어왔을 때도 인테리어가 이전과 비슷했고 한눈에 봐도 아주 오래된 조명들이 천장에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오래된 만큼 현지의 단골손님이 많아 보였다. 손님들은 익숙하게 크로와상을 주문하고 카페 주인과 한참을 떠들었다. 어떤 손님은 커피를 주문하고 종이 신문을 펼쳐 들고 읽었다. 외지인인 나도 그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개성 있는 카페였다. 이렇게나 오래된 카페가 멋져 보이는 것은 그곳이 원래 멋져서일까. 그것보다는 그걸 소유한 사람이 오래된 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간을 모던한 인테리어로 고친다면 그 카페가 가진 분위기는 사라질 것이다. 파리에는 누가 뭐라든 자신의 가진 것을 괜찮다고 생각하는 고집스러움이 있다. 그리고 그걸 진심으로 아끼는 태도까지 갖추어 오래된 것들을 실제로 멋진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가치가 높다고 생각되는 물건이나 장소 뒤에는 처음부터 그것이 지니고 있던 개성과 더불어 그것을 고리타분하거나 촌스럽다고 여기지 않는 소유자가 있다. 누군가 그것을 오랜 시간을 들여 아꼈음이 느껴지면 그 매력이 한층 더 부각된다. 분명히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깨끗하고 정갈한 물건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낡음의 흔적을 없애는 대신 그냥 윤이 나게 매일 닦아 주었을 것이다. 가벼운 고장이나 나사 빠짐이 큰 고장이 되지 않게 그때그때 잘 관리했을 것이다.
촘촘하고 사소한 관리의 흔적과 이 물건이 오랫동안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다는 흔적, 그것은 그 물건의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된다. 빈티지 풍의 옷이나 앤티크한 물건들은 그런 매력을 가진 것들이다. 외양만 오래된 척을 하는 새것들은 긴 시간과 정성을 지나온 것들의 매력을 이기지 못한다. 동네에 새로 만들어진 빈티지 콘셉트의 카페나 식당이 마음에 깊이 와닿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사람쯤 이런 사람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나이가 어리지는 않지만 꾸준히 자신을 관리한 흔적이 있고, 새것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보풀이 없는 옷을 입고, 그만의 깨끗하고 개성 있는 물건들을 사용하는 사람.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드러나는 행동과 말투, 웃는 표정이 지문처럼 묻어 있는 잔주름을 가진 사람.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태도는 그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그 사람만의 분위기를 만들고 그 사람을 빛나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늙고 낡아가는 몸은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하기에 따라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자신을 아껴주면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게 된다. 이미 자신이 가진 것들을 오늘부터 하나씩 보듬고 다듬고 아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