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랜드는 비현실, 하지만 뒤돌아 난 현실로
-1-
일요일 낮 열두 시였다.
남동생은 JFK공항으로 출발하면서,
맨해튼 어딘가에 내려주겠다 했다.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었지만
센트럴파크 중간즈음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 좋겠다고 했다.
30번가에서 82번가까지 가는데
신호는 한 번밖에 걸리지 않았다.
월요일이었다면 최소 다섯 번,
아니 열 번은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동생 얼굴을 봐야 할 텐데
오늘이 일요일, 주일이었다는 것에
신께 감사한다.
차는 맨해튼 이스트 쪽
나는 풍선장수 아저씨 앞에서 내렸다.
"누나, 조심히 가."
"응 너도 잘 가."
나는 곁눈질로만 뒤를 남겨두고
차와는 반대 방향으로
조금 빠르게 걸었다.
출발하면서 잠시 빌리겠다고 한
애플 c타입 충전기가
차에 그대로 꽂혀있는 걸
오른쪽 시선으로 확인하였지만
그냥 입을 다문채 차 문을 닫았다.
충전기를 놓고 내렸다고 하면
동생은 차를 잠시 파킹을 하고 내려
무슨 작별 인사 비슷한 걸 할지도 모른다.
전화로 로비에 맡겨달라고 하면
미안하다고 하며 다시 차를 돌려서 올 것이고
건강을 잘 챙기라거나 그런 말을 꺼낼지 모른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문자도, 전화도 하지 않았다.
일요일은
도로에는 차가 없었지만
센트럴 파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83번, 125번 번호를 붙이고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랄프로렌 아이보리 카디건을 입은 여자와
옥스퍼드 셔츠를 입은 남자는
어색한 첫 데이트 중이었고,
스패니시 유모는
오늘도 두 아이를 데리고 나와 있었다.
아이들 부모는
주말에도 바쁜가 보다
핑크색 메쉬 야구 셔츠를 입은 여자는
혼자서 연달아 야구점수를 외친다.
관전하는 사람은
힘없이 어깨가 쳐진
할아버지 한분뿐이다.
나는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
어린아이,
주니어쯤 되는 아이,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없는지
자꾸 살핀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가족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엄마 둘과 아이 둘인 가족도 있었고
아빠 혼자 아들과 걷는 집도 있었다.
엄마랑 아들이랑 손을 잡고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아들의 손이 조금만 더 커지면
이 시간도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확률 같은 것을 자주 생각한다.
수학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럴 것 같아서다.
지금의 내 인생도 그렇다.
확률은 낮고,
나는 그 낮은 확률을
자꾸 들여다보고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주일이다.
가족을 위한 날.
그리고 어제는
토요일이었다.
-2-
지난 토요일 밤,
나의 꼬마를
주니어보딩스쿨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화이트마운틴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어갔다.
꼬마와 나,
그리고 나의 남동생,
셋이서 같은 차 안에 있었다.
재잘재잘,
북적북적,
종알종알.
학교에 도착했을 때
끝없이 펼쳐진 평야와 하늘은
얼마나 우리를 작게 만들던지
아직도 눈앞에 시원한 그 공기가 선하다.
꼬마는
룸메이트 침대가 바로 붙어있는
작은 도미토리에서
계속 종알종알했다.
난 이마에서 구슬땀이 맺히고
종아리가 욱신거리는 것도 잊은 채
방을 정리했다.
밤에 돌아왔을 때는
내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어제,
꼬마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침구 매장에서
이불과 매트, 베개와 쿠션을
가득 사 들고 나왔다.
작은 침대 위를 빼곡하게 채우고 나니
만약 달에 사는 토끼네 집이 있다면
그곳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도미토리를 나서자
어둠이 내려앉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잔잔함 음악,
그리고 바비큐 파티가 준비가 보였다.
'인디언들의 네버랜드가 있다면, 지금 이곳이구나.'
나는 꼬마와
포옹 한번 해보지 못하고
손만 짧게 흔들고 왔다.
멀리서
거품을 맞으며
맨발로 뛰어가는 꼬마가 보였다.
룸메이트와
똑같이 블랙으로 옷을 맞춰 입은 걸 보니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세계가 열렸나 보다.
2025. 09. 14 쓰고
2026. 02. 14 수정
Claire (보딩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