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음식
미국에 가기 전 유대인에 대한 나의 경험과 지식은 책 ‘안네 프랑크의 일기’,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쉰들러 리스트’, 가장 친한 친구 나미와 결혼한 유대인 남편 애덤. 딱 그 정도였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우연히 유대인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가 있었고, 그들의 유대인 명절에 초대받고, 유대인 교회당에 몇 차례 함께 가보고, 유대인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나누면서 이전에 몰랐던 유대인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미국 인구의 약 2%를 차지하는 유대인은 크게 정통파(Orthodox Jews), 보수파(ConsevativeJews), 개혁파(Reformed Jews)로 나뉜다 (더 세분화하여 분류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어느 그룹이라 정의하지 않는 유대인들도 있다)
그중 약 10%에 해당되는 정통파 오써독스 유대인(Orthodox Jews)은 철저하게 율법을 따르며 수세기 전의 생활방식을 고집한다. 안식일이 토요일이기 때문에 금요일 해 진 후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는 일을 해서도 안되고, 차를 운전해서도 안되고, 전화기를 비롯한 전자제품도 쓰지 않는다. 결혼도 반드시 정통파 유대인과 해야 하고, 혈통을 잇기 위하여 일찍 결혼하고 가능한 자녀를 많이 낳아 자녀가 열 명씩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대인이 많이 사는 뉴욕에서는 유대인 명절에 회사나 학교를 나가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아예 쉬는 곳도 많다.
개혁파인 리폼 유대인(Reformed Jews)은 종교법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인종, 문화적으로 유대인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오랜 친구인 나미와 결혼한 유대인 애덤처럼 타 인종과 결혼하기도 하고, 유대인 명절도 하누카(Hannukkah), 로쉬하샤나(유대인 신년), 유월절(Passover; 이스라엘인들이 모세를 따라 이집트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 등의 주요 명절만 지키는 사람이 많다. 보수파인 컨서버티브 유대인(Conservative Jews)은 정통파와 개혁파의 중간쯤이라고 보면 된다.
정통파는 집의 주방도 두 개로 꾸미는 사람이 많다. 식재료를 선택하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엄격한 절차를 거친 코셔(Kosher)에 따라서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셔의 세부 규정에 는 육류와 유제품은 같이 먹으면 안 된다, 동물 도축 시 랍비가 입회해야 한다, 병에 걸리지 않은 동물을 고통 없이 죽이고 소금으로 문질러 피를 제거한 후 먹을 수 있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갖춰진 물고기만을 먹을 수 있다 등 철저한 종교적 신념 없이는 도저히 지키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이에 따르자면, 치즈버거는 고기와 치즈가 같이 들어 있으므로 먹을 수 없고, 버터도 유제품의 일종이라 빵을 만들 때 썼다면 그 빵은 고기와 함께 먹을 수 없다. 우유와 버터를 쓰지 않고 밀가루와 소금, 물로만 만드는 베이글이 유대인들의 주식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음식뿐 아니라 칼, 도마, 접시 등도 모두 별도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주방의 용품을 모두 2개씩 두거나 공간이 여유 있다면 아예 두 개의 주방으로 나누어 유대인이 아닌 손님맞이를 할 때 사용한다. (개혁파는 음식도 크게 제약 없이 먹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는 코셔 마켓과 코셔 레스토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여행 중에도 코셔를 따르기가 쉽지 않다. 친한 미국 친구인 Hide는 정통파 유대인 친구와 여행을 계획했다가 식사문제로 결국 포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삶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극소수의 인종이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 힘은 저런 고집과 엄격함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따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이러한 엄격한 율법도 결국에는 유대인의 순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한다. 유대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다음에야 누가 이런 코셔의 방식을 따르는 배우자와 결혼할 수 있겠는가.
내가 다니던 헬스장에는 Ed라는 이름의 개혁파 유대인 할아버지가 계셨다. 내가 유대인 음식을 궁금해하자, 헬스장 사람들이 다 같이 정기적으로 가던 할리우드 하이킹을 마치고 모두를 켄터스 Canter's라는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가셨다. 70년이 넘은 LA에서 가장 유명한 유대인 음식 전문 레스토랑인데, 문 입구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했던 사진이 걸려있다.
난생처음 접하는 유대인 음식이라 온통 호기심이 가득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에드의 추천을 받아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는데 모든 음식의 맛이 훌륭했으나 맛이나 조리법이 대단히 독특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전통음식 라끼(Latkes)는 우리의 감자전과 거의 같았다.
미국인들은 가족끼리도 음식 나누어 먹는 일이 없더라는 내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리며 같이 간 일행들이 우리 가족에게 내 것도 한 입 먹어보라며 너도 나도 접시를 내밀며 모두 다른 종류의 음식을 권하셨다.
이런~ 정 많은 미국인들 같으니라고!
* 유대인 친구들, 랍비로부터 유대교리 수업을 들은 한국 친구, Google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였으나 사실과 다른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넓은 것은 오지랖, 깊은 것은 정, 많은 것은 흥 뿐이고
좁은 것은 세상, 얇은 것은 지갑, 적은 것은 겁 뿐인 가족'
<'겁 없이 살아 본 미국' 책은>
평범한 40대 회사원 남자가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 입학부터 졸업하기까지,
10년 차 워킹맘이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 무료영어강좌에서 수십 개 나라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알파벳도 구분하지 못하던 큰 딸이 2년 만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완독하고,
Yes/No도 모르던 작은 딸의 미국 유치원 적응기까지, 다양한 미국의 교육 현장 이야기와
전화도 터지지 않는 서부 국립공원 열 곳에서 한 달 이상의 텐트 캠핑,
현지인들과의 소중한 인연,
경험이 없는 덕분에 좌충우돌 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을 생생하게 담은 책.
출간 두 달 만에 2쇄 인쇄. 브런치 글 100만 뷰.
페이스북 팔로워 1400명(www.facebook.com/MKLivingUSA)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리워지는 장소와 사람과 음식이 생겼고
나이와 국적에 대해 견고하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친구 삼을 수 있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서로 다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며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고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당황해서 주저 앉아 울고만 있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이 결국은 '성숙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