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때, 내 담임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사회에서 흔히들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훌쩍 지난 노처녀*였는데 그녀는 국어 선생님답게 반 아이들에게 시를 매주 한 편씩 읽게 했다. 읽으라고 하면 아무도 읽지 않으리란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알았는지 아이들에게 공책 한 권씩을 준비시켜 시가 프린트된 종이를 붙이고 그 아래 감상평을 달게 했다. 그러고 나서 금요일에 제출하면 그다음 월요일에 코멘트를 적어 돌려주는 식이었다. (*그 당시엔 이런 말이 아무렇지 않게 쓰였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함을 밝힌다.)
그래서 월요일만 되면 반 아이들은 귀찮은 표정으로 으레 공책에 풀을 찍 발라 종이를 붙이고 밑에 아무 말이나 끄적여대곤 했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행위들이 나에게는 매번 설렘이고 행복이었다. 시를 읽고 열심히 쓴 내 감상평에 선생님이 또 어떤 답글을 달아줄지 나는 그 공책을 받아 들 때부터 신이 났다.
실제로 나는 그 시 읽기에 매우 열심이었는데 그 수준은 내가 그 시들을 모조리 베껴 쓰는 것도 모자라 맘에 드는 시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옮겨 적어 가까운 주변인들에게 선물로 줄 정도였다.
그때는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와 돌이켜보건대 나는 그때 외로웠던 것이 틀림없다. 중학교 2학년은 한국 나이로 열다섯 살이고 그 나이에 고독이란 감정을 느끼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고독이란 것을 일찍이 알아버렸던 나는 외로움을 노래하는 시의 화자가 무척이나 반갑고 고마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힘들 때 찾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글이 된 것은. 도저히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을 때, 눈앞이 캄캄하고 숨조차 쉬어지지 않을 때,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글을 찾고, 시를 읽었다. 그렇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쓴 글이나 현실을 깡그리 잊을 만큼 강한 흡인력을 가진 글에 빠져 한참을 보내고 나노라면, 나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고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어떤 글을 쓰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글의 기준이라고 믿는다. 내가 얼굴 모르는 이의 글을 읽고, 여러 번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었듯이, 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지금을 버틸 수 있는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곳에 찾아왔을 당신께 그 시절 힘이 되었던 시 하나를 소개한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넣고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