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워킹맘

by Viva La Vida

2020년 1월 25일.

가만히 더듬거려봐도 요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공항 곳곳에 우한에서 귀국한 사람 중 몸에 열이 나는 사람은 어딘가로 오라는 포스터가 붙어있던 것이 희미하게 기억날 뿐이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우리는 귀국했다. 6학년이 된 첫째와 국어를 배운 적이 없는 둘째의 한국 학교 적응은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 그 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나 자신이었다.


어느 새 나는 40대가 되어 버렸고, 내 사회생활은 7년 째 단절되어 있었다. 사회는, 세상은 더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고, 시켜만 주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자 서류에서 떨어진 곳, 면접에서 떨어진 곳.. 다양했다. 그러던 어느 면접관이 내게 물었다. 경력 단절이 길었던 @@@씨는 다시 사회로 돌아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고. 그의 낮지만 가벼웠던 목소리는 온라인을 타고 컴퓨터를 스피커를 거쳐 내 가슴에 영원히 지워질 것 같지 않은 날카로운 질문을 새겨놓았다.


'아.. 난 무엇을 했을까..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할 뿐, 나는 무엇을 준비했을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부랴부랴 내일배움카드를 만들고, 내게 필요한 강의가 뭔지 찾아 헤매고, 수업을 듣고, 수료하고, 자격증 시험을 보고, 다음 과목으로 넘어갔다. 그런 생활이 일 년 여간 반복되었다. 그 어떤 수업도 결석하지 않았고, 고3때보다 열심히 복습했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걸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잘 하는 짓일까..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애들은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개의 자격증을 손에 쥐고 다시 입사지원서를 작성했다. 역시 서류에서, 면접에서 떨어졌다. 나이가 많았고, 경력단절이 길었다. 탈락의 시간이 쌓이고, 실패의 경험이 늘어갔다. 탈락의 순간마다 훔쳐낸 눈물이 모이면 작은 시내는 될 것이다. 그러다 한 지자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2021년 9월 1일.

붐비는 버스를 타고 막히는 도로를 지나 첫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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