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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Apr 10. 2019

서른 넘어 걸그룹에 빠진 이유

그녀들이 상징하는 건 건 청춘의 에너지와 감수성 그 이상이라서.

나는 샤워할 때도, 요리할 때도, 화장을 하며 외출 준비를 할 때도 늘 음악을 틀어놓길 좋아한다. 최근 시카고에서 친구를 만나 일주일 정도 호텔에서 같이 지냈는데, 3일째쯤 되던 날 그 친구가 한마디 했다.


"너는 여자 노래만 듣냐. 어쩜 남자가수 노래는 하나도 없네."

"맞아. 나는 걸그룹 노래만 들어. 듣기만 해도 기분이 상큼해져서."


이십 대 중반쯤 자주 어울리던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두세 살이 많은 언니였다. 그녀는 영국에서 유학하고 뉴욕으로 와서 일본 악센트와 영국식 표현/억양이 섞인, 미국에선 흔치 않은 독특한 영어를 구사했다. 쓰레기를 garbage가 아닌 rubbish라 부르고, 아파트는 flat, 엘리베이터는 lift 라 불렀다.


당시 그 언니의 나이가 이십 대 후반이었는데, 그녀는 소녀시대가 일본에 진출한 시점부터 소녀시대에 푹 빠져있었다. 원래 음악은 Rock이나 팝 음악을 즐겨 들었는데 소녀시대에 빠진 후부터는 나와 부쩍 더 친해져서, 가사를 해석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소녀시대를 왜 영어로 SNSD라고 쓰는지, 오빠라는 단어가 한국어로 어떤 뉘앙스인지, 내가 한국인이기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들을 했다.


나도 음악이 좋아 한국 생활을 다 접고 뉴욕까지 온 입장이지만, 학교 다니랴 일하랴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서른이 다 된 그 언니가 걸그룹에 열렬히 빠져있다는 게 조금 철없어 보였다. 아니 그 나이가 되면 좀 더 건설적인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아닐까? 남자 친구가 생활비를 다 해결해주니 사는 데 큰 고민이 없나 보다 싶었다.


바쁜 유학생활에 찌들어서였을까. 그 시절 나는 이해심도 감정도 조금은 메말라 있었다.

센세이셔널했던 소녀시대의 일본 데뷔 무대는 전설로 남았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자면, 일본을 떠난 십여 년 간 영국과 미국에 살면서 삶의 희망이나 낙이 없이 우울한 감정으로 살았는데,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고 퍼포먼스를 보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삶에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그녀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벅차오르면서, 열심히 살아보자 싶은 의지가 솟아오른단다.


그 언니는 우울증을 오래 앓아 항우울제도 다양하게 복용한 경력이 있었는데, 소녀시대 얘기만 시작하면 눈이 반짝거리면서 때때로 목이 메어오는 듯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단순히 음악이나 가수를 좋아하는 게 아닌, 소녀시대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그녀의 삶을 행복으로 충만하게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일본에서 욘사마가 한참 인기를 끌었을 때 수많은 중년의 여성팬들이 욘사마를 통해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았다고 들었는데, 그런 비슷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감정을 완벽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언젠가 소녀시대가 뉴욕에서 콘서트를 하면 꼭 같이 가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은 상큼한 아이즈원 노래를 들으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의 난 그날 그녀와의 대화를 수도 없이 되새긴다. 나도 한국 걸그룹 노래에 심취한 지 벌써 몇 년이 흘렀고, 그동안 수 백번이나 그날의 대화를 머릿속에 재생하며, 아, 그때 그 언니가 말한 감정이 이런 거였구나 하고 깨닫고 있다.


사는 게 치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생에 더 중요한 고민이 없어서가 아니라, 엔도르핀과 에너지를 충전하며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듣는다.


한국에 살 때는 외국 음악에만 심취해 있었다. 어린 마음에 가요는 외국 음악만큼 재미가 없었다.

처음 걸그룹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나인뮤지스의 News 뮤직비디오를 본 후부터였다. 지금 들어도 트렌디하고 세련됐고, 십 년이 지난 후 들어도 그럴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난 가요가 아닌 “색다르고 독특한 음악”을 찾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반 전체가 H.O.T파와 젝키 파로 나뉘어 있을 때 나는 급식비를 "띵겨"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는 일본 음반을 구해 뜻도 모르는 일본 노래의 발음만 따서 따라 불렀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데스티니스 차일드 노래를 들으며 영어 듣기 능력이 향상됐다. 미국 알앤비와 팝의 전성기이자, 일본 음악 시장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던 제이팝의 전성기였다.


지난 십여 년간 한국음악이 빠르게 발전해왔고, 결국 케이팝이 하나의 장르이자 세계적인 현상으로 태어나는 걸 지켜봤다. 이곳 미국에서 틴에이져들이 한국 가사의 노래에 열광하고, 한국 음악이 세계시장에서 이렇게 트렌디하게 받아들여지리라는 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데뷔 시절부터 관심을 갖고 본, 내가 처음으로 팬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레드벨벳.


그녀들의 팬이 된 데에는 앨범의 완성도, 흥미로운 기획력과 퀄리티 있는 노래들에 있다. SM 엔터테인먼트는 SES 시절부터 꾸준히 해외에서 음악을 소싱해서, 자사 아티스트들의 음반에 외국인 작곡가/프로듀서들의 곡의 비율을 늘려왔다. 그렇게 한국 기획사들이 점점 세계적인 퀄리티와 트렌드에 맞는 음악을 추구해 온 것이 오늘날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게 된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주변에 음악을 진지하게 했던 다른 친구들도 걸그룹 중 유난히 레드벨벳을 좋아하는 걸 보면, 케이팝이란 장르를 떠나 그녀들의 음악은 그 시절 팝을 좋아하던 우리의 입맛에 딱 맞기 때문이란 걸 알 수 있다.

레드벨벳은 데뷔곡부터가 퍼렐 윌리엄스와 넵튠스(The Neptunes)라는 프로듀싱 듀오로 활동한 채드 휴고와 노르웨이 뮤지션들의 작품으로, 기획단계부터 세계적인 퀄리티로 정성을 들여 제작된 그룹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나오는 그녀들의 노래들을 정말이지 케이팝의 다른 곡들과는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내 생각에 가장 세계적으로 먹힐 수 있는 노래는 Bad Boy, 그룹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다진 곡은 Ice Cream Cake, 개인적으로 가장 취향저격인 곡은 Kingdom Come이다. 벨벳 콘셉트의 곡을 좋아하는데, 이런 마이너 감성의 알앤비 곡을 이렇게 소화할 수 있는 케이팝 걸그룹은 레드벨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고, 그게 이 그룹을 특별하게 만드는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주소녀의 "비밀이야"는 발매 후 지금까지 수백 번은 들은 것 같다. 오래오래 기억될 명곡.
소녀시대에 빠져 삶의 의미를 찾았던 일본 언니를 요즘 떠올리게 된 계기는 작년 여름 프로듀스 48을 보면서였다.


어릴 때부터 쭉 남자보다는 여자 아티스트에 더 심취하는 편이라, 프로듀스 시리즈도 여자 아이돌 편인 101과 48만 봤는데, 작년 여름에 했던 프로듀스 48은 일본의 거물급 프로듀서이자 AKB48을 창조해 낸 아키모토 야스시와 AKB의 멤버들이 연습생으로 참여해 제이팝의 팬으로서 더욱 흥미롭게 봤다.


최종 선발된 12명의 연습생들이 아이즈원이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했는데, 한국 데뷔곡이었던 라비앙 로즈도 좋았지만, 일본 데뷔곡과 뮤직비디오의 색감, 수록곡들까지 90년대 일본 음악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 시절 향수를 자극했다.

아이즈원 "좋아한다고 말하게 하고 싶어"
화사하고 세련된 한국에서의 컨셉보다 조금은 어둡고 복고 느낌이 나는 일본에서의 컨셉. 2000년대 초반 전성기 시절의 모닝구무스메 감성이 느껴져  취향저격.

한국에서의 제작은 CJ와 플레디스가 합작으로 오픈한 신생 레이블인 "오프 더 레코드"에서 맡았지만, 일본에서의 음반과 콘셉트는 전적으로 AKB48의 수장인 아키모토 야스시가 맡았다. AKB48의 노래는 "헤비로테이션" 정도만 들어봤는데, 아이즈원 일본곡을 들어보니 가사에 담겨있는 감수성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노래 제목만 봐도 평범하지 않다.


좋아한다고 말하게 하고 싶어

고양이가 되고 싶어

춤이 생각날 때까지


특히 "춤이 생각날 때까지"라는 곡은 "그때부터 몇 번이나 사랑을 하고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 추었던 것 같은 춤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라는 지극히 여성적이고 어쩐지 묘한 가사로 시작된다.


아키모토 야스시는 본인이 제작하는 그룹이 발표하는 모든 곡을 셀렉하고 작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사를 들어보니 남자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한 여성의 정서가 묻어난다. 흥미가 생겨 찾아본 AKB48의 노래도 가사가 남달랐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아키모토 야스시는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10대 후반부터 방송작가로 일하며 잔뼈가 굵은, "뼛속까지 작가"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일반적으로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작곡가, 프로듀서인 것에 비해 글쓰기를 배경으로 커리어를 다진 사람이 걸그룹을 제작하고 프로듀싱한다는 게 독특하다. 공연 연출, 교수, 영화감독, 만화 제작자뿐 아니라 일본의 대표적인 걸그룹을 제작하고 셀 수 없는 곡들을 작사하며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이끌어가는 그가 자신의 직업은 "작사가"라고 한결같이 소개하는 것도 재미있다.


유튜브에서 보게 된 "정열 대륙" 아키모토 야스시 편에서는 특히 그의 남다른 감수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정열 대륙" 아키모토 야스시 인터뷰

"최근 운 적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주 울어요. 저녁 12시 지나서인가, 다카다노바바(역)를 차로 지나가고 있었어요. 그때 아마 와세다대 학생 여자 3명 남자 5명이 전력을 다해서 역을 향해서 달리는 거예요. 그걸 본 것만으로 눈물이 났어요. 나에게는 전력질주로 막차시간에 맞추기 위해 달리는 일은 없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문득 눈물이 나는 건 타고난 감수성이 예민해서일까, 호르몬의 영향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그 원인이 어떤 것이든 그의 감수성은 분명 제작자이자 작사가인 아키모토 야스시에게 많은 영감과 창작의 소재를 제공하고 있으리라. 그가 쓴 노래의 가사는 사랑과 이별 이외에도 꿈, 희망, 청춘의 고뇌, 노력, 자신과의 싸움 등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관련된 것이 많다고 한다.


사실 걸그룹이라는 토픽으로 이 글을 쓴 것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글로 남기고픈 마음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프로듀스 48을 보고 있던 중 나도 그가 달리는 대학생을 보고 울었던 것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2회에서 연습생들이 등급 심사 오디션을 보는 중에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등급 심사 오디션은 다른 모든 연습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춤과 노래를 보여주고 A등급에서 F등급까지 바로 매겨지는 잔인한 시스템이다. 연습생을 오래 한 사람들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오래 한 중견가수인데도 연습생으로 참가한 사람들까지 저마다 절실한 사연이 있다. 드디어 주어진 쉬는 시간. 긴장한 상태에서 오랜 시간 이어지는 오디션에 피로를 느끼는 중에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무대 뒤에서 나가지 않았던 깃털채연은 결국 데뷔해서 꽃길을 걷게 된다.

쭈뼛쭈뼛하며 나갈까 말까, 이 춤은 아는데 무대 위로 나갈 자신은 없어서 앉은자리에서 추는가 하면, 춤에 자신 있고 이거라도 나가서 최대한 나를 어필하고 싶은 마음에 고민도 없이 달려 나가 추는 친구들도 있다. 뛰어 나가는 아이들, 뛰어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 양쪽의 감정을 왠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 있는 아이들도, 무대를 바라보는 아이들도 결국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감정과 저마다의 스토리가 뒤섞인 무대. 결국엔 가수가 되겠다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그 자리에 왔다. 압박감과 긴장을 이겨내기 위해 한껏 견디고 있었다. 그저 춤과 노래가 좋아 그 자리에까지 왔는데 신랄하게 평가받아야 하는 그 상황은 서글펐다.


그러다 AKB48의 노래인 헤비로테이션이 흘러나왔고, 이 노래로 활동한 일본 멤버들 뿐 아니라 한국 연습생들까지도 다 같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본과의 합작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AKB48의 대표곡을 한국 연습생들도 미리 익혀갔던 것이다. 이 프로를 통해 최종적으로 아이즈원의 멤버가 된 이채연은 이 프로그램 참여에 앞서 의사소통을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다고 했다. 모두 그런 마음으로 치열하게 준비했을 오디션에서, 잠시나마 평가에서 자유로운 시간에 그들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고스란히 발산하는 모습은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다 같이 웃으며 춤을 추는 어린 친구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열정을 보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절대 눈물 나는 장면이 아닌 활기찬 장면이었는데.

나도 다시 무언가에 저렇게 열정적이 될 수 있을까. 나를 있는 힘껏 다 바쳐 절실히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눈물이 났다.


아키모토 야스시는 인터뷰에서 본인에게 부족한 것은 단연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쓰고 있을까. 내일의, 내년의, 십 년 후의 내가 "잘했다"라고 칭찬해 줄 오늘을 보내고 있을까.

순간처럼 지나갈 인생이라면 벚꽃처럼 찬란하길

6개월 전에 쓰기 시작했던 이 글을 마무리 짓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 건, 뒤엉켜있는 생각들을 풀기 어려워서였다. 어린 친구들이 춤을 추며 순수하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울었다는 글을 쓸 수 있기까지, 내 자신의 아물지 않은 꿈의 조각들, 노력하며 부딪히다 상처 받은 기억들과 마주해야 했다.


내 이십 대가 실패같이 느껴져서 한쪽으로 치워 둔 추억들이었다. 꿈을 향해 달리는 연습생들이 불나방처럼 있는 힘껏 부딪히는 걸 보고 응원하며 나도 응어리진 감정이 조금은 해소되는 걸 느꼈다. 그녀들이 꿈에 그리던 데뷔를 하는 걸 지켜보며 “이번 생은 글렀어” 싶던 내 인생과 청춘이 아직 현재진행중임을 깨닫는다.


한때 가슴에 품었던 뜨거운 걸 잊지 않길.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꿈과, 그걸 이루기까지의 사소하고 소중한 감정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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