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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Jul 11. 2019

혼자선 가지 말걸, 에어비앤비

짜릿했던 에어비앤비 첫 경험

혼자 떠난 일본 여행을 계획할 때 염두에 두었던 것 중 하나는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숙소를 체험해 보는 것이었다. 


혼자서 가뿐하게 가서 이곳저곳 테스트해보면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가는 여행 숙소를 선정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비즈니스호텔, 료칸, 캡슐호텔 등 다양하게 예약했고, 여러 도시를 돌고 오사카로 돌아왔을 때 묵을 곳은 에어비앤비가 딱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일본에서의 여정이 2주일 정도 된 시점이라 호텔, 식당, 편의점 밥에 질려있을 시기였다. 에어비앤비에 느긋하게 묵으며 근처에서 장보고 집밥을 먹기에 딱인 타이밍이라 생각해 4박을 예약했다.


*지역 선택*

에어비앤비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했던 건 호텔이 밀집한 관광지, 혼잡한 상업지에서 떨어진 주거지역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때쯤엔 사람 많은 곳들에도 피로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하철 역에서는 가까워야 했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와 구글 지도를 비교해 보며 내가 가기로 한 장소들에 지하철로 쉽게 갈 수 있으면서 호텔은 없는 동네들을 위주로 찾았다.


오사카에서 가려고 했던 곳은 오사카 성, 벚꽃 명소인 오사카 조폐국이었고, 쇼핑은 우메다에서 할 예정이었다. 그 세 군데에서 모두 멀지 않은 지역을 찾다 덴마바시(天満橋)역 인근의 적당한 곳을 선택했다. 지하철 역에서 한 블록 정도로 가깝고, 히가시 우메다 역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였다. 건물에서 3분 거리에 큰 슈퍼마켓이 있었고 편의점과 식당도 많았다. 


지역 선택은 탁월했다. 관광객을 거의 볼 수 없는 조용한 동네에서 매일 동네 아줌마들과 직장인들 옆에서 장을 봐서 저녁을 해 먹는 재미도 있었고, 오사카 성과 조폐국에는 걸어갈 수도 있을 만큼 가까웠다. 우메다에서도 가까워서 쇼핑한 걸 집에 갖다 두고 다시 나가기도 했고, 조폐국에 갔다가 집에 들러서 옷을 가볍게 갈아입고 우메다로 친구를 만나러 갈 수도 있었다.


대망의 에어비앤비 체크인 날.

기노사키 온천에서 기차를 타고 한참 달린 후 신오사카 역에 도착했다. 


고속열차가 아니어서 꽤 오래가야 했던 그날 오후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호텔도 없는 동네여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나뿐인데 와이파이도 없어서 그저 주소만 보고 찾아가야 했다. 빗줄기는 굵어지는데 한참을 헤매다 지나가던 대만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도착했다. 


건물 뒤편의 자전거 주차장에 가서 키 박스를 찾았다. 열쇠를 픽업해 아파트에 올라가니 처음 온 곳인데도 내 집 같이 친근하다. 내가 이 도시에 혼자 산다면 우리 집은 분명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는 미니멀한 집이었다.

내가 오사카에 혼자 산다면 우리 집은 이런 동네의 이런 집이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선택한 나의 첫 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에 체크인해서 처음 든 생각은 그동안 묵었던 호텔 방이 꽤 좁았었다는 사실이다. 호텔방은 2인실 기준으로 해도 오피스텔/원룸 정도의 집보다는 작다. 유럽여행을 마치고 뉴욕에 돌아갔을 때 집에 들어서며 우리 집이 이렇게 넓었나, 천장이 이렇게 높았나 하며 놀랐었다. 


에어비앤비 장점 1. 호텔보다 넓다.

평범한 아파트/오피스텔 같은 곳 정도만 돼도 비슷한 가격대의 호텔보다 훨씬 더 넓다. 호텔에는 없는 주방, 테라스도 있다. 방 이외에 그 두 공간만 더해져도 확실히 공간이 더 넓은데 일본의 집들은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둘이서 묵기에는 호텔보다 확실히 공간이 여유롭다.


집에 들어와서 찬찬히 둘러보고 베란다에 나가보니 호텔 창문으로 보던 뷰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호텔 창으로 바라보던 분주하고 왁자지껄한 도심 한가운데와는 달리 적막하고 한가로운 주택가의 뷰

비가 오는 오후 주택가의 거리는 확실히 도심의 호텔들이 즐비한 관광지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맨해튼만 해도 관광객이 많은 지역(타임스퀘어, 5번가 등)과 로컬들이 많은 지역(유니언 스퀘어, 워싱턴 스퀘어 파크 등)이 똑같이 사람이 많은 지역이어도 분위기와 에너지가 다르다. 에어비앤비가 있었던 덴마바시 역 인근은 지금까지 봤던 오사카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에어비앤비 장점 2. 로컬이 된 것 같은 생활을 해 볼 수 있다.


호텔과는 다른 장점 한 가지는 투숙 기간 동안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의점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슈퍼마켓 장보기

집 근처에는 편의점도 있지만 대형 슈퍼마켓도 가까이에 있어서 매일 저녁 장을 봐서 요리를 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슈퍼마켓은 편의점과는 달리 현지의 식재료, 제철 과일과 채소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고 밤에 가면 그날 만들어진 음식을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침에 나갈 땐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며 지하철을 타러 가고, 저녁엔 장을 봐서 집에 가는 사람들과 퇴근길 직장인들이 단골 식당에 들어가는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 투숙 둘째 날, 그동안 미뤄온 쇼핑을 몰아서 했다. 


우메다 역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던 중 세일하는 옷들을 입어보다 내가 그동안 너무 두꺼운 옷들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날씨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뉴욕에서 4월에 입을만한 옷들을 가져오니 이곳은 같은 시기 뉴욕보다 훨씬 따뜻했다. 


얇은 옷들을 입어보니 그렇게 가뿐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두껍게 입고 다녔구나. 그래서 더웠구나. 뉴욕에서 가져간 것보다 훨씬 얇은 코트와 치마, 블라우스를 구입했다. 내내 입고 다녔던 두터운 트렌치코트를 벗으니 한결 가볍고 쾌적했다. 


숙소에 쇼핑한 짐들을 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우메다 역으로 향했다. 지인과의 저녁 약속이 있는 날. 내가 먹어보고 싶다고 한 야키토리 맛집에 데려가 주기로 했다.

새 옷으로 빼 입고 다시 외출

우메다 역에는 한신, 한큐, 다이마루 등 여러 백화점이 밀집되어 있다. 한큐 백화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흔한 만남의 장소였는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을 체크하며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옆에 서 있으니 나도 여기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에 괜히 들떴다. 


지인은 간사이 출신으로 현재 고베 인근에 거주하고 있지만 오사카에서 오랜 생활을 했던 사람이어서 이곳 지리에 밝았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면서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혼자서는 와본 적 없던 선술집 뒷골목에 도착했다.

일본어로만 되어있는 메뉴. 주위를 둘러봐도 현지인들 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숙소에 잘 도착했는데, 이렇게 있다 체크아웃했다면 아마 즐거운 에어비앤비 이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날 밤 집에 들어오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술을 오랜만에 마셔서 그랬을까. 사실 이틀 동안 숙소를 수없이 드나들며 생각했었다. 이렇게 집이 많은 고층 빌딩에 그동안 나 말고는 오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대낮에야 한가할 수 있다 쳐도 출퇴근 시간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아무도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못해 기묘했다. 


이틀 동안 딱 한번, 퇴근시간에 내 또래 여자와 엘리베이터를 잠깐 같이 탔던 게 이 건물 안에서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이외에는 하루에 네다섯 번씩 드나들었어도 아무도 본 적도 없고, 집 안이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웃의 인기척을 느낀 적도 없었다. 


첫날에는 주말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점점 크게 다가왔다. 체크인을 하고 들어왔을 때 베란다 한쪽이 뚫려 있고 그 옆 바닥에 있는 안전장치(아마 지진 대비용인 듯)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를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했었다.

저기는 왜 뚫려있는 걸까. 그 옆에 바닥에 있는 판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거지? 얼마나 지진이 잦으면 가정집에 저런 게 있지?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베란다의 안전장치.

호텔에는 24시간 투숙객들이 드나들고, 혹시 지진이나 자연재해가 있으면 상주하는 직원들의 통솔에 따르면 된다. 그러나 일반 아파트는 또 다른 이야기다. 주민들이 알아서 대피해야 하는데 나는 어디로 어떻게 나가는지, 나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이 건물 내의 사람들은 내가 여기 있는지조차 모른다. 게다가 이 건물에 나 말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밤에 밖에서 봐도 불 켜 있는 창문이 한 손으로 셀 정도였다. 몇 집 빼고 건물이 텅 빈 상황은 아닐까?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하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던 시절 손님이 신축 아파트에 계약을 한 적이 있다. 뉴욕은 신축 건물의 경우 아래층부터 공사가 완료되어 점점 위로 올라가는데, 그럴 경우 낮은 층에 있는 집들은 먼저 계약을 하고 이사도 허용한다. 계약 후 바로 이사해야 하는 사람들은 아직 전체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빈 건물에 먼저 들어가서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층에 집이 열 채가 있다면 그중에 한 두 집만 거주자가 있고 나머지 여덟 집은 텅 빈 채로 몇 달이 가는 경우도 있다. 아래 열개 층 정도의 공사가 완료되었는데 그중에 세 집 정도만 계약이 되어 이사를 한 경우도 봤다. 25층이 넘는 빌딩이 텅 비어 밤이 되면 단 세 집 정도에만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왠지 으스스했다. 계약을 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웬만하면 다른 집들이 채워질 때까지 최대한 이사를 미루는 게 일반적이었다. 빌딩이 아직 비어있다는 사실만으로 계약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실제로 지진을 겪어본 건 딱 두 번이었다. 


첫 번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여름, 갑자기 창문과 교실 뒷문이 심하게 흔들리며 큰 소리를 내서 반 애들이 다 같이 "이게 뭐야?" 하며 놀랐던 짧은 몇 초.


두 번째는 뉴욕에서 혼자 살던 시절 낮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침대가 심하게 흔들려서 고양이가 뛰는 건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아니었던, 나 혼자 누워있는 침대가 흔들리고 있어서 놀랐던 몇 초다. 순간 뭘 챙겨서 뛰어 나가야 하나 오만 생각이 들었던 무서운 찰나의 기억이다.


에어비앤비에서 자는 둘째 날 밤에 불현듯 예전 브루클린의 텅 빈 신축 건물에 살던 두 세명의 주민들이 생각났다. 지금 이 큰 건물이 한 두 집 빼고 비어있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예전에 자다가 침대가 흔들려 느꼈던 지진의 기억 때문일까. 내가 뒤척이는 미세한 흔들림에도 계속 잠이 깼다. 


다음 날에는 두려움이 더 심해져서 새벽에 호흡이 가빠오다 난생처음 과호흡을 경험했다. 이 건물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공포에 아침이 올 때까지 건물 밖으로 나가 앉아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다음 날 친구가 한국에서 와서 숙소에 함께 묵으며 여행에 합류하기로 해서 친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친구가 오고 나서는 잠도 아주 잘 잤다.

이러한 이유로, 


에어비앤비가 호텔과 비교해서 장점이 많았음에도 한국이나 미국같이 내가 익숙하지 않은 나라나 도시에서는 혼자서 묵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 여행 고수인 언니도 "그러게 왜 처음 써보는 에어비앤비에 혼자 묵을 생각을 해"라는 걸 보니 내가 너무 생각 없이 숙소를 정했나 싶기도 하다. 


에어비앤비는 결국 여러 명이 묵을 숙소에 최적인 플랫폼이다. 여러 명이 함께 가거나 가족단위로 여행할 때는 분명 호텔보다 더 저렴하고 공간도 넓고 주방도 있어 효율적이다. 혼자서 여행할 땐 안전을 위해 일반적인 호텔을 이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실 익숙한 도시에서도 혼자서는 에어비앤비에 묵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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