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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Oct 18. 2019

추억은 기차를 타고

기차여행 덕후의 사소한 기차 이야기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차가 없었다.


그 덕에 외갓집이 있는 광주에 갈 때마다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 그나마 외가 가는 길엔 기차라도 있었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친가에는 고속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지금까지도 차멀미를 심하게 하는 나는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며칠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에 비해 기차를 타고 가는 외갓집으로의 여정은 늘 여행 가듯 신났다. 기차 멀미가 없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고등학교 2학년쯤 되던 해에야 아빠는 면허를 딴 지 몇 년 만에 은색 소나타를 장만하셨다.


가족들이 다 같이 외갓집에 가는 길엔 무궁화호나 통일호를 이용했다. 새마을호를 타보기 전에 차가 생겼고 KTX가 생겼다. 기차를 타고 대전에서 광주까지 가는 길에 언니와 나는 우리 칸 문이 열릴 때마다 간식 카트인지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카트가 들어오면 수건 돌리기 하는 기분으로 언제쯤 우리 자리까지 오시나 계속 살피며 기다렸다. 


평소엔 알뜰한 엄마가 유일하게 간식 사주는 데 여유로워지는 시간도 이때였다. 친정 가는 길이라 그랬을까? 장거리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던 우리 가족에게는 기차 타고 외갓집 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여행이었다.

어린 눈에는 붉은 망에 들어있는 게 귤인지 달걀인지 헷갈리곤 했다.

삶은 달걀이나 바나나맛 우유 같은 인기상품 이외에도, 기차에서만 볼 수 있던 밤마론 같은 주전부리는 엄마 아빠도 좋아하셨다. 프랑스 디저트 마롱 글라쎄(Marron Glace)의 홍익회 버전인 밤마론은, 한국에서 리메이크를 했던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던 밤 조림의 양산형이었다. 촌스런 밤송이 사진이 있는 종이상자를 열면 나오는 비닐포장지. 안에 밤은 몇 개 들어있지 않아 감질났지만 양갱을 좋아하지 않는 내 어린 입맛에도 맛있었다. 기차에서만 찾을 수 있는 희귀 템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카트가 지나갈 때마다 한 두 개씩 골라먹는 재미에도 지쳐갈 무렵, 대전과 광주 사이 어딘가에서 가락국수를 사 먹곤 했다. 가락국수로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역이 대전역이라는데, 우리는 대전역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늘 그 역만을 이용했다. 어릴 때라 어떤 역인지 기억하지 못했는데, 엄마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계셨다. “지금은 익산역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이리역이었지. 가락국수는 이리역에서만 먹음.”이라는 엄마의 답장.

어제 일도 깜빡깜빡한다는 엄마가 수 십 년이 지나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추억의 이리역 가락국수.


고속도로 운전 중 다음 휴게소에 들르기로 하는 것처럼 엄마 아빠는 익산 역이 다가오면 미리부터 가락국수 살 준비를 했다. 기차가 서기 전부터 아빠가 문 앞에 가서 대기. 우리는 창밖으로 가락국수 카운터에서 아빠가 주문하는 모습을 긴장하며 지켜봤다. 일회용 그릇에 담긴 가락국수는 기차에 가지고 탈 수 있었다.


기차가 슬슬 출발하려고 하면 이내 심장이 쫄깃해져 아빠와 가락국수의 무사귀환을 기다렸다. 뜨거운 국물에 단무지 두세 개를 퐁당 빠뜨려 카운터 건너편으로 넘기면 아빠는 그릇을 양손에 들고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차는 금세 출발하고, 소심했던 나는 매번 아빠가 기차를 놓쳐 못 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다. 아빠가 잘 탔어야 할 텐데.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빠가 가락국수를 사다 기차에 못 타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여행 가는 설렘의 맛. 길고 지루한 기차여행 중 짧은 일탈의 맛. 다섯 명이서 두 그릇을 나눠먹는 감질맛. 이제는 맛볼 수 없는 추억의 맛이라서 였을까.

특별할 것 없는 가락국수가 어찌나 맛있었던지.
어떤 특별한 가락국수가 그 시절 기차역에서 긴박하게 사온 가락국수 맛을 이길 수 있을까. 뒤늦게 먹어본 대전역 앞 포장마차 가락국수도 꽤 맛있긴 했다.

독일 뮌헨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 반.


공항 카페에 앉아 맥주를 한잔씩 하며 장시간 비행의 피로를 조금 씻어낸 후 기차 시간에 맞춰 공항 내 기차역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타는 첫 기차는 뮌헨 공항발 잘츠부르크행으로 약 3시간이 안 되는 여정이었다. 독일 기차는 시간을 칼같이 지킬 줄 알았는데 첫 기차부터 연착되어 일정이 꼬였다. 


공항에서 뮌헨 중앙역까지 간 후 잘츠부르크행 기차로 갈아타야 하는데 공항열차가 30분가량 늦춰진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중간에 갈아탈 여유시간이 충분했는데 앞 열차가 늦춰지는 바람에 잘츠부르크행 열차시간에 맞추기 위해 출근시간 사람들이 넘치는 뮌헨 역에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4월 마지막 주 월요일의 뮌헨, 창밖에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같은 시간 뉴욕은 따뜻하고 센트럴파크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여긴 한겨울이었다.

4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아침, 꽃이 만발하던 뉴욕과 달리 독일엔 흰눈이 펄펄 내렸다.

기차 시간에 맞추려고 전속력으로 달려와 한참을 숨을 헐떡이는 우리와 달리 현지인들은 여유가 넘치다 못해 나른해 보였다. 알고 보니 기차가 20분 이상 연착될 경우, 기차역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연착된 사정을 설명하면 독일 철도청 직원이 확인 도장을 찍어준다고 한다. 그렇게 티켓에 확인 도장을 받으면 다음 열차를 타도 되는 건데 우린 첫 기차부터 연착을 될 거라고 생각을 못해 미친 듯이 달렸다.


우리가 탄 기차는 익스프레스 열차가 아니었던 건지, 작은 역 하나하나에도 다 서면서 가느라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다. 듣도 보도 못한 역에 정차하며 가다 보니 읍내에서 장을 보고 가는 듯 종이봉투 가득 식재료를 사가는 시골 사람들도 있고, 자전거를 가지고 타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5학년쯤 된 남자아이는 자전거를 끌고 푸르른 잔디밭 사잇길로 유유히 사라졌는데, 그에게 기차는 마치 1층에서 위층으로 데려다주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이동수단이었다.


한적한 시골역에서 혼자 기차에 올라 다음 역에 내려서 풀밭 사이로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가는 아이의 뒷모습은 아름다운 수채화 같았다. 어릴 때 동화책에서 보던 그림 속 장면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이라면, 나도 아이를 여럿 낳아 키우고 싶겠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고민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은 순간이었다.

이런 곳에 살면 근심 걱정이 없겠다 싶은 난 애초에 맞지 않는 도시생활에 끼워 맞추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에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슈투트가르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까지 긴 여행을 하고 돌아와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은 잔상이 바로 그 장면이었다. 어른들 사이에 혼자 기차에서 내린 아이가 한 폭의 그림 같은 시골 들판에서 페달을 밟으며 사라지던 장면. 그때 받은 잔잔한 충격.


늘 보호자와 동행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어린이는 혼자 안전할 수 없는 대도시. 내가 사는 뉴욕은 세상에서 가장 급박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곳 중 하나였다. 그런 환경에 익숙해 늘 조심하고 주위를 살피며 살던 내 안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시간이 지나 이때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건 기차의 창밖으로 보이던 시골마을과 기차가 버스만큼 일상적인 현지인들의 모습이었다.


슈투트가르트에 가는 열차를 탔던 날, 열차를 제대로 탔는지 확신이 없었다. 남편은 내가 계획한 여행에 따라다니는 사람이고, 거의 모든 상황에서 내가 주도해야 하는 입장인데 그날도 기차에 변동사항이 생긴 건지, 지나는 역 이름들이 내가 조사해온 것과 달랐다. 우리는 넷이 앉을 수 있는 객실 칸에 둘이만 있었고,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어 초조해지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한분 타시더니 우리 칸에 들어왔다. 건너편에 앉은 할머니께 영어로 이게 슈투트가르트 가는 기차 맞냐고 물어보니 할머니는 영어를 못하신단다. 독일어권 사람들이 영어를 잘해서 일주일 동안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분은 처음이었다. 독일어로 프린트된 티켓을 보여주며 행선지를 가리키니, 낡은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보시고는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여행 중 경험한 독일어권 나라가 꽤 마음에 들던 중이었는데 그 할머니와의 만남을 계기로 독일어를 배웠다. 중국어나 스페인어에 비해 독일어는 미국에서 쓸모가 없지만 언젠가 다시 독일어권 국가로 여행 간다면 기차에 제대로 탄 건지 정도는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

이국의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리워질 때쯤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일본에서 혼자 여행할 때 몇 번이나 기차를 잘못 탔다. 혼자 떠난 여행이라 책임감이 없고 마음이 가벼워서였을까. 어차피 무제한 패스 티켓인데 잘못 가면 잘못 간 데로 여행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긴장감 없이 다니다 기차를 잘못 탄 김에 행선지를 바꾼 적도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에 기차를 잘못탄 건 꽤나 아찔했다.


구라시키에서 고베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느라 하루 종일 걸어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대충 맞는 것 같아 탄 열차에서 멍 때리며 한참을 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창밖엔 도시의 불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시골마을이었다. 소도시 여행을 다녀봤어도 이렇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시골 동네는 처음이라 잠이 확 깼다.


급한 마음에 일단 내려보니 내 평생 본 중 가장 작은 간이역에 와 있었다. 기차 레일을 가로질러 건너서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손바닥만 한 시골역이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려고 가보니 직원도 없는 무인역인 걸 보고 급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인적도 없고 캄캄하고 비까지 내리니 일본 공포영화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작은 창고같은 시골 무인역. 저녁시간에 생선 굽는 냄새가 느껴질 만큼 역 가까이에 집들이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혼자 여행 다니다 별 이름도 모르는 동네를 다 와보네 싶어 사진도 찍고 자유로운 영혼의 관광객인 척 황당한 표정의 셀카도 남기면서도 속으론 빨리 여길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다음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린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왔고, 그날을 계기로 정신을 바짝 차려서 다시는 기차를 잘 못 탄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 전엔 어떻게 다녔길래 그렇게 기차를 잘못 탔지?' 싶을 정도였다.


목적지를 불문하고 기차여행을 참 좋아하는데 미국에서는 기차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 뉴욕에서 뉴저지로 이동하는 Path 트레인을 타본 것 정도다. 보스턴이나 메인, 나이아가라 폭포같이 같은 동부권 도시에 가는 기차를 알아본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기차란 참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동수단이란 걸 깨달았다.


뉴욕에서 나이아가라나 보스턴행 기차를 타면 버스보다 비슷하거나 더 오래 걸리고,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데 가격은 또 버스보다 비싸다. 기차란 자고로 먼 곳에 (멀미 없이) 빨리 가려고 타는 게 아닌가. 암트랙을 타고 미국 횡단을 하는 여행자들도 많다지만 나는 시간과 가격의 효율성을 먼저 따지다 보니 미국에서 기차여행을 할 기회가 없었다. 땅도 이렇게 넓은데, KTX처럼 빠른 기차가 있다면 많이들 이용을 할 텐데. 그런 초고속 기차가 생기기 전까진, 미국에선 비행기와 자동차가 더 효율적인 여행 교통수단 같다.


유럽은 기차를 타고 가볍게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동할 수 있어서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곳이다. 아무 때나 티켓을 사서 스위스로 이태리로 다녀올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기차여행의 천국 유럽에서 언젠가 꼭 한번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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