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쌓아온 뉴욕의 브런치 맛집 리스트
뉴욕에 처음으로 이주해 온 2005년. 그때만 해도 브런치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브런치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조차 몰랐다. 뉴욕에 온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였나, 주말 아침 늘어지게 자고 나서 11시쯤 친구가 재촉해서 지하철을 타고 갔던 곳이 웨스트 87가와 암스테르담 애비뉴에 있던 팝오버(Popover Cafe) 카페였다.
요즘은 뉴욕에 관한 책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당시에는 뉴욕에 어학연수나 유학 오는 학생들이 교과서처럼 가지고 오던 책이 윤신원 님의 "아이 러브 뉴욕"이었다. 그 책에 나온 팝오버 카페는 나도 한번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어서 표시를 해 뒀었다.
팝오버는 속이 비어있는 계란빵으로 영국 요크셔푸딩의 미국 버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뉴욕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가 아닌 만큼 팝오버 카페는 팝오버를 주력 메뉴로 하고 그 이외에 다양한 브런치 메뉴를 선보였다.
팝 오버 카페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면 기본적으로 테이블당 사람 수에 맞춰 따뜻하고 바삭한 팝오버가 한두 개씩 주어졌고, 그 이상 원할 경우에는 따로 주문을 더 할 수 있었다.
1981년에 오픈해서 32년간 운영했던 팝 오버 카페는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2014년 1월에 문을 닫았다.
서울도 그렇겠지만, 뉴욕은 장사가 아무리 잘 되는 식당이라도 월세나 계약 문제로 문을 닫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내가 유학시절 한때 아르바이트했던 유니언 스퀘어 인근의 한국식당은 매일 뉴욕대 학생들이 줄을 서곤 했던 맛집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졌고, 정확히 일주일 만에 문을 닫았다.
장사가 아무리 잘 돼도, 30년 넘게 운영한 지역 명물이어도 건물주와 계약 연장이 되지 않으면 폐업해야 하는 게 자영업자의 숙명이다.
내가 아직 부동산 중개인을 하고 있던 시절 회사에서 멀지 않은 팝오버 카페에 가서 친구와 늦은 점심을 먹은 게 마지막이었다. 그 후 몇 달만에 팝오버 카페는 문을 닫았다. 그날이 마지막이었을 줄이야. 2005년부터 문 닫기 직전인 2013년까지 꾸준히 다녔던 곳이라서 더 아쉬웠다. 80년대부터 다녔던 동네 주민들은 아마 더 서운하겠지. 팝오버 카페 안녕.
팝 오버 카페만큼이나 오랜 기간 운영되고 있는 곳이 사라베스(Sarabeth's)다. 2019년 현재 맨해튼에서도 땅값이 비싼 지역들(어퍼 이스트, 어퍼 웨스트, 센트럴파크 사우스, 파크 애비뉴 사우스, 트라이베카)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고급화 전략인지 일반적인 브런치 레스토랑에 비해 가격대도 조금 높은 편이다.
사라베스는 1981년에 베이커리로 처음 오픈했고, 1983년에 처음 테이블을 갖춘 레스토랑을 어퍼 이스트에 열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네 명의 주인공이 브런치를 먹었던 것으로 유명해진 곳인데, 그래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뉴욕에 처음 와서 팝 오버 카페 이외 다른 브런치 식당을 모르던 시절 사라베스에 갔던 적이 여러 번 있고, 후에는 한국이나 타지에서 오는 친구들이 사라베스에 가 보고 싶다고 할 때만 방문했다. 요즘은 관광객들도 구글에서 쉽게 검색해서 로컬들이 아는 맛집을 갈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사라베스는 로컬들보다는 관광객이 더 찾는 식당이란 이미지가 있다.
가격이 높으면 음식이 맛있거나, 양이 넉넉하거나, 인테리어나 전망이라도 좋아서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이 가격만 비싸면 또 갈 이유가 없다.
관광객들을 위주로 운영되는 식당들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비싸고 맛이 그냥 그렇고 불친절해도 우리는 장사가 잘돼. 우린 유명세가 있거든, 하는 분위기. 음식과 서비스의 퀄리티도 로컬 다른 맛집들보다 평범하거나 떨어진다.
브런치 하면 사라베스만 알던 시절에 어퍼 이스트, 어퍼 웨스트, 센트럴파크 사우스 등의 세 지점을 골고루 자주 다녀보고 내린 결론이다. 이곳은 관광객+동네를 벗어나지 않는 인근의 우아한 사모님들이 먹여 살리고 있는 곳이라 오늘날까지 잘 나가고 있지만, 사라베스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된 이유는 이곳 이외에 맛난 집들이 많이 있어서다.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으로, 2001년 오픈해서 2019년인 오늘날까지도 꾸준하게 인기 있는 곳이다. 팬케익으로 유명한 곳인데 "베이킹"에 중점을 둔 곳인 만큼 빵 종류는 다 기본 이상 맛과 퀄리티를 자랑한다.
블루베리 팬케익이 이 집의 베스트이자 스테디셀러고, 치킨 앤 와플도 인기 메뉴다. 치킨 앤 와플은 말 그대로 와플 위에 후라이드 치킨이 올려져 있는, 처음 보는 사람은 충격을 받을 수도 있는 음식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광하는 단짠 조합이라, 먹어보면 맛의 조합이 꽤 조화롭다. 이 집은 뭘 시켜도 맛이 있는 집이니 분명 치킨 앤 와플도 맛있을 것 같다.
주말에 가면 줄을 서야 할 가능성이 크지만 뉴욕에서 브런치를 한 번밖에 먹을 시간이 없다면, 그리고 빵 종류를 좋아한다면 분명 가볼 가치가 있는 정통 브런치 스폿이다. 뉴욕에 온 지인들을 브런치 식당으로 안내할 때 보통 서너 군데 옵션을 주면서 고르게 하는데 그중에 늘 포함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스트 빌리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한두 번씩 들르던 곳이다.
안에 들어가면 낮에도 컴컴하고 사람들이 많아 왁자지껄했지만 음식은 뭘 시켜도 맛있었다. 가격대도 좋고 서비스도 훌륭했던 곳인데. 마지막으로 갔던 게 2015년이었는데 36년 운영 후 2017년에 폐점된 안타까운 맛집이다.
2001년 오픈한 곳으로, 사라베스의 자매 식당이다.
미국 가정집 같은 느낌이 풍기는 사라베스와는 달리 제인은 더 캐주얼하고, 트렌디하고 재기 발랄한 밀레니얼 뉴요커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다. 한동안 뉴욕 최고의 프렌치토스트로 알려져 있어서 핫했었다. 한번 맛보고 반해서 주말마다 갔는데 심할 때는 두 시간 넘게 서서 기다린 적도 있다.
맛집의 웨이팅은 익숙해져 있는데도 이곳에서의 두 시간은 근처에 갈 곳도 없고 정말 문 앞에서 죽치고 두 시간을 서 있었던지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프렌치프라이에 섞여있는 로즈메리도 섬세한 맛을 내고, 뭘 시켜도 기본 이상은 하는 곳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안 간지 몇 년이 지난 걸 보면 내게 있어 "JANE = 줄 서야 하는 곳"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듯하다. 이제 다른 맛있는 프렌치토스트 집도 찾기도 했고, 먹기 위해 두 시간씩 기다리는 게 더 이상 취향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직역하면 "농부의 친구"
식당 이름에서부터 건강식 느낌이 뿜뿜 난다. 보통 친구들을 만나면 저녁보다는 점심에 만나는 경우가 많아서 난 언제나 점심과 브런치가 맛있는 집들을 찾곤 한다. 프렌드 오브 어 파머는 1986년 오픈 때부터 "Farm to Table" 즉 농장에서 직송한 식자재로 만들어지는 음식을 서빙하는 곳으로, 건강식에 열광하는 뉴요커들이 매료될만한 콘셉트로 사랑받고 있다. 네이밍 센스도 굿인데, 아쉽게도 내 입맛에는 별로 안 맞았다.
내 입맛이라 주관적인 의견일 수도 있지만, 같이 간 미식가 친구도 "여기는 비싸기만 하고 맛x가리가 없네"라고 한 걸 보면 음식이 대체로 간이 약해서 맛이 없고 가격대도 싸지 않아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인테리어도 미국 시골 가정집 같이 아늑하고 정겨운 느낌이라 이 집이 정말 맛있길 바랬는데. 시킨 아이템들이 하나하나 맛있는 게 없어서 예쁘게 사진으로만 남았다. 담백하고 밍밍한 맛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개인적으로는 또 갈 일은 없다(단호박).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가서 처음 알게 된 곳이다. 소호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뽑길래 갔었는데, 인터뷰는 떨어졌지만 분위기도 좋고 맛있어 보이고 직원들이 친절해서 나중에 먹으러 갔다. 프렌드 오브어 파머와 비슷한 건강식 콘셉트의 레스토랑으로 소호의 가장 핫한 지역인 스프링 스트릿과 라파예트의 코너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지나가다 보니 문을 닫았길래 없어진 줄로만 알고 있었다.
지금은 원래 자리에서 두어 블락 떨어진 곳에 Spring Natural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내가 자주 가던 전성기 시절의 인기와 스케일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구글 리뷰에 올라온 사진들만 봐도 너무나 한가해 보이는 사진들 뿐이다. 그러나 1973년에 Farm to table, 유기농, 베지테리언 콘셉트가 일반적이지 않은 시절에 건강식을 전면에 내세운 식당답게, 어떤 메뉴를 시켜도 다 맛있었다. 게다가 다 신선한 유기농 재료만을 써서, 다른 식당과는 달리 건강한 집밥을 먹는 것 같은 든든함이 있었다.
한참 다니던 시절에는 주말 약속은 늘 여기서만 잡았었다. 한국에서 예전 회사 동료들이 단체로 출장 왔을 때에도 여기로 안내했고, 그 당시 한국에서 온 친구들을 주말에 꼭 데려가던 스폿도 여기다. 문 닫은 게 아니라 옮긴 거라는 걸 알았으니 한번 가봐야겠다. 예전과 같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면 강력 추천하는 곳.
레스토랑이 여러 번 이름을 바꾸고, 문을 닫았다 다시 열고, 메뉴 아이템들을 바꾸고 하면 아무리 자주 가도 헷갈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점점 발길을 끊는다.
이곳은 처음 갔을 때는 Mondrian 소호라는 부티크 호텔 안에 있는 Isola Trattoria & Crudo bar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맨 왼쪽에 있는 사진이 레몬 팬케이크였는데 다른 곳과는 색다르고 특별한 맛이 나서 한번 가보고는 이 사람 저 사람을 데리고 자주 갔었다. 그렇게 몇 달간 주말마다 가다시피 하던 어느 날 가보니 인테리어는 그대론데 메뉴가 달라져 있었다. 다른 때와 똑같이 팬케이크를 시켰는데 (두 번째 사진) 항상 먹던 것과 생김새도 맛도 현저히 달랐다. 원래의 이태리 음식 콘셉트는 유지하고 있어서 음식이 중간은 갔지만, Isola Trattoria였을 때와는 퀄리티 차이가 너무 크게 나서 발길을 끊었다.
네이밍을 중요하게 보는 입장에서, 몬드리안 호텔 안의 아이솔라 트라토리아가 노모 호텔 안의 노모 키친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이국적이게 느껴지는 건 달라진 음식의 질 때문일까?
잭스 와이프 프리다는 2012년에 오픈한 곳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한때 꽤 핫했던 적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보다 더 인기 있는 소셜미디어로 자리매김하고 나서, 인스타에 올리기 예쁜 카페/ 레스토랑들이 종종 생겨난다. 어떻게 하면 더 사진에 예쁘게 찍힐까 연구라도 하는 것처럼 더 새롭고 창의적인 형태와 색감의 음식, 커피, 아이스크림 등을 선보이면 인스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한 번은 가보게 된다.
그 전형적인 케이스가 도미니크 안젤 베이커리다. 세계 최초로 크로와상 식감의 도넛인 "크로넛"을 개발해 뉴욕 레스토랑 / 베이커리 씬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도미니크 안젤 베이커리는, 한때 크레이그 리스트에서 도넛에 프리미엄을 매겨 타주로 파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아침 뉴스나 페이스북 피드에서도 종종 보이던 핫 플레이스였다. 크로넛이 인기를 끌고 인스타그램에서 핫해지니, 그는 다른 창의적인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Instagrammable) 아이템들(구운 마쉬멜로우 아이스크림, 쿠키 샷 안에 담아 마시는 우유 등)을 개발해서 인기를 이어갔다. 갈 때마다 줄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다가 어느 날 마음먹고 가서 돈 주고 핫 아이템들을 다 사 먹어봤는데 결론은 사진으로만 예뻤다는 것이다. 크로넛만 추천한다. 크로넛은 강력추천.
잭스 와이프 프리다는 지중해 음식,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뉴욕 브런치 해시태그에 자꾸 올라와서 찾아갔다. 음식 맛은 내 입맛엔 그저 그랬던 기억이다. 사진 찍기에만 예쁘고 그럴듯한 느낌이라 다시 갈 생각이 없다.
타르틴은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인 캐리가 살았던 집이 극 중에서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66 Perry Street으로, 타르틴에서 1분 거리에 있다. 처음 타르틴에 갔던 건 7년 전. 언제나처럼 새로운 브런치 레스토랑을 찾다가 발견해서 가본 게 시작이었다. 규모가 협소해서 의자에 코트나 가방을 걸기도 애매하고 화장실도 손바닥만 해서 웬만큼 맛있지 않으면 오지 말아야지 했는데 음식이 빼어나게 맛있으니 몇 년째 브런치를 먹을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
먼지가 음식에 앉는 걸 싫어해서 야외 테이블은 꺼리는 편인데도 이곳에 가면 그냥 주어지는 어떤 테이블이건 감사히 앉는다. 주말에는 특히 웨이팅이 길 때가 많아서, 어디라도 앉을 수만 있으면 땡큐다. 브런치에 가면 매번 비슷한 에그 베네딕트 같은 것만 먹다가 여기서 크로크 무슈를 처음 먹어보고 다른 곳에서도 많이 시도를 해 봤지만 이 집처럼 맛있게 하는 곳이 없었다.
늘 먹는 것만 시키다 언젠가는 프렌치토스트도 시도해봤는데, 맨해튼 최고의 프렌치토스트라던 JANE보다 더 맛있어서 나도 놀랐다. 공간이 협소하고 현금만 받는 곳이어도 꾸준히 가게 되는 곳이다.
"한 번 이상 갈 일 없는" 맛없는 집들은 제외하고, 꽤 알려진 곳들 위주로만 정리를 했는데, 이 중에 내가 다시 갈 생각이 있는 곳은 Clinton St. Baking Company, JANE, Tartine 세 군데다. 예전 음식 퀄리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Spring Natural도 다시 갈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