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정아 Nov 11. 2019

식탐이 떠난 자리

내면의 아이에게 귀 기울여주니 식탐이 사라졌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식욕은 어때요? 폭식 같은 것도 하나요?

-음... 폭식이라기보단 쉬지 않고 계속 뭔가를 찾아서 집어먹는 때는 가끔 있어요.

-이걸 먹으면 그런 것도 좋아질 거예요.


항우울제를 처음 먹었을 때 신기했던 건 식욕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나는 미식가였지 식탐이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먹은 일주일 간은 하루 종일 끊임없이 음식을 찾던 버릇이 없어졌고, 먹으면서도 다음 먹을 걸 갈구하던 것도 없어졌다. 머릿속에 늘 맴돌던 음식에 관한 생각들이 깨끗이 사라지니 허전할 정도였다. 배가 고프질 않으니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귀찮았다. 와 이렇게 두어 달만 살면 살이 쏙 빠지겠네 싶어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는데 항우울제를 몇 가지 테스트해본 결과 모두 비슷한 부작용이 있어서 아주 짧은 경험으로만 끝났다.


한 번에 많이 먹는 것만 폭식인 줄 알았는데 쉬지 않고 뭐라도 계속 조금씩 먹는 것도 폭식증이었을까? 식욕과 우울감이 그토록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줄이야.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두 세권 빌린다. 뉴욕 퀸즈에는 아시안 인구가 꽤 있어서 도서관에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 책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올 초 도서관에서 평소엔 보지 않았던 분야의 책들을 훑어보다 건강에 관한 책을 몇 권 빌렸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중 한 권이 식욕을 이해하고 식탐을 다스리는 것에 대한 책이었다.


20대 중반 이후엔 "다이어트 중"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늘 어떤 방식으로 무슨 다이어트라도 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저녁 굶기, 아침에 따뜻한 레몬 물을 마시기 같은 생활 속 작은 변화를 실천하거나 1일 1식이나 격일 단식, 디톡스 등 건강에 좋다는 것들에 짧게라도 발을 담그고 "살 빼야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중간중간 감량을 했지만 요요가 와서 되돌아가고, 한 달 동안 절식이나 단식을 해서 크게 감량했다가 그만두면 원래보다 더 체중이 불어나 스트레스받길 반복하며 20대와 30대를 보냈다.


식욕과 식탐의 본질을 알려주는  책에는 처음 들어보는 신기한 이야기가 많았다. 사람은 마음이 허할  음식을 먹어서 채우려고 한다, 라는   번은 들어봤음직한 말이다. 허전하고 우울한 마음은 음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신적 허기를 어떤 음식으로 채우겠는가. 불안한 마음은 고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필연적으로 체중감량을 위해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하고 감량과 요요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까진 나도 어디선가 들어본 얘기였다.


어른이 된 우리 내면엔 아직도 어렸을 때의 아이가 존재한다. 사랑받고 싶고 보호받고 싶고 원하는 걸 이루고 싶은 아이인 채로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 뭔가를 계속 먹을 생각을 할 때는 그 아이가 나에게 뭔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란다.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아 걱정돼.

학교에서,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너무 힘들어.

이렇게 의미 없이 나이만 먹고 있는 게 허무하고 우울해.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거 같아서 불안해.


불안과 걱정을 전달하는 그 목소리를 듣는 대신 음식으로 달래며 잠깐 동안의 포만감으로 덮었던 거다.


나는 내가 식욕이 왕성한 사람인 줄만 알았다. 늘 음식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픈 게 인간의 본능인 줄 알았다. 여행 갈 생각을 하면 현지에서 뭐 먹을지, 내일 친구들을 만나기로 하면 어디서 뭘 먹을지를 밤늦게까지 검색하며 찾는 게 사는 낙이었다.


식욕과 심리의 연관성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행동에 옮긴 건 우선 나를 다이어트라는 족쇄에서 풀어주는 거였다. 나에게 가장 날카로운 말을 하고 칼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건 나뿐이었다.


이런 것도 못하다니 정말 한심해.

남들 다 하는 건데 너만 못해. 너만 못 참고 너만 힘들지.

이런 몸으로 평생을 살다가 죽을 거야.

한 끼도 못 굶다니 정말 의지박약이야.


남들한테는 들어보지도 못한 모진 말을 퍼부어댔었다. 책을 읽고 내 안을 들여다보니, 그 안엔 오랜 시간 저런 견디기 힘든 말들을 들으며 웅크려져 있던 내가 있었다. 다이어트의 족쇄에서 나를 풀어주며, 차갑고 아픈 말들 대신 따뜻한 목소리를 나 자신에게 건넸다.


그래 살 안 빼도 충분히 예쁜데 뭘.

아직 충분히 어리고 뭐든지 할 수 있어.

크게 아픈데 없고 건강하면 된 거야.

살 빼면 하려고 했던 것들 그냥 지금 다 해.


그뿐 아니라 '이 시간에 먹으면 안 돼, 이건 너무 기름져서 안돼' 하는 생각은 '정말 배고프고 먹고 싶어 못 참겠으면 뭐든 먹어도 상관없어, 너 하고 싶은 데로 다 해도 좋아'라고 바꾸니 마음이 가뿐해졌다. 가끔 배가 안 고픈데 음식 생각이 나려고 하면, '지금 속으로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라고 자신에게 물었으며, 그런 생각의 끝엔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던 사소한 걱정이나 불안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속 족쇄를 풀어주니 신기하게 음식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아무리 식욕을 줄이려고 약을 먹어보고 독일산 다이어트 셰이크를 몇 달 동안 마시고 음식에 간을 하지 않고 식사 전에 물을 몇 컵 마셔봐도 줄지 않던 식탐이, 아프고 식중독이 걸려도 흔들리지 않고 왕성하던 식욕이 조용히 사그라든 것이다.


그렇게 십 수년간 지속된 다이어트 굴레에서 나를 해방시켰다. 마음이 푹 놓이고 누군가 내 뒤에서 든든하게 봐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항우울제를 먹었을 때보다 훨씬 더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어 마음이 밝고 건강해졌다. 십 년 넘게 괴롭히던 지독한 불면증도 좋아져서 밤에 약 없이 잠들 수 있게 됐다.


자아존중감, 자기애라는 건 내 안의 민감한 아이에게 가장 든든하고 따뜻한 어른이 되어주는 거였다. 내 안의 자아가 불안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는, 뭐든 다 받아주는 엄마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것.


몇 달이 지난 지금 그렇게 안 빠지던 체중이 조금씩 줄어가고 있고, 예전처럼 금식과 폭식을 반복하며 감정이 널뛰기하고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어졌다. 생리 전 폭식을 하는 것도 호르몬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런 증상도 사라진 걸 보면 호르몬 탓이 아니었다.


미주에 있는 한인들 사이트에 그런 글이 올라온 적 있다. "저는 한국에 가면 미국에서처럼 폭식을 하지 않아요.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고 미국에서처럼 늘 허기져있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그렇다며 한국에 가서 몇 달을 있으면 안 먹어도 왠지 속이 든든하고 식탐이 없어진다고 댓글을 달았다. 해외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아무리 이곳에서의 생활이 안정적이어도 깊은 곳에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나 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는 내가 음식을 보고 예전처럼 환호하지 않는다며 너무 달라졌단다. 같이 저녁거리를 사러 장을 보러 가도 예전처럼 이것도 맛있겠고 저것도 맛있겠다 하며 흥분하던 모습이 없으니 재미가 없단다. 맞아 내가 그랬었지. 뭐든지 눈앞에 보이면 맛있겠다, 저걸 먹어야 되는데 하는 초조함이 있었다. 이제는 '이것도 저것도 원하면 언제든 다 먹을 수 있으니까'라는 생각이 드니 조바심이 나지 않고 여유가 있고 속이 든든하다.


마음의 허기, 음식으로 채우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올해는 보람 있는 한 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