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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Dec 29. 2020

팬데믹은 공황장애를 남기고

김구라 님,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이토록 시간이 가는 걸 하루하루 느끼며 한 해를 보낸 적이 있던가.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매일 온몸으로 뼛속까지 느낀 일 년이었다. 평생 볼 일 없을 것 같던 미국인들의 마스크 쓰는 모습은 익숙한 일상이 되어, 이제 마스크를 안 썼던 시절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비정상적인 느낌이 들 정도다.


벚꽃 놀이도 못 간다며 속상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여름, 가을이 지나 2020년의 해가 지고 있다. 이렇게 역대급 한 해가 간다.


평생 봤던 수많은 재난영화들 중 이토록 긴 재난이 있었을까. 영화 속 아무리 무시무시한 사건도 몇 주에서 몇 달이면 끝났던 것 같은데. 혹시 일 년 이상 이어진 사건들도 영화 분량 두 시간 내로 끝날 뿐이었다.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난 재난은, 새벽 두 시인 지금도 멀리서 앰뷸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날 수 없는 꿈같은 현실 상황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창문을 이따금씩 흔드는 새벽, 따뜻한 거실에 앉아있는 나는 며칠째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 년을 보냈다.


유명인들을 비롯 우리 주변의 사람들, 지인의 지인들, 나와 같은 도시에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 나와 한번쯤 같이 일했거나 어디선가 한 번쯤 마주쳤을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 수많은 사람들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마지막을 추모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조심 또 조심하며 마스크를 더 조여 쓰고 장갑을 챙겨 끼고 밖에 나갈 일을 최소화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미국에서 첫 코로나 발생지였던 뉴욕은 다행히 지금은 시스템도 더 갖추고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래도 모든 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현실이다.



패닉의 서막

지난 4월, 곧 최악의 상황이 온다고 뉴스에 연일 보도되던 시점, 면역력이 딱히 튼튼하다고 볼 수 없는 나는 겁에 질려 한 달 반 넘게 집안에만 있었다. 그러다 약 두 달만에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밖에 나가 옆동네에 가서 장을 보고 왔던 날 밤 갑자기 숨이 차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나가 한 시간 이상 있었던 탓에 호흡이 불편해졌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당연히 코로나에 걸렸다고 생각한 난 점점 숨이 안 쉬어지는 걸 보고, 당시 기사와 댓글로 봤던 폐 섬유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 어떻게 걸렸는지도 모르지만, 내 상상 속의 내 폐는 이미 하얗게 되어 곧 죽나 보다 싶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야 간신히 잠들었다 정오쯤 일어났는데, 눈을 뜨는 동시에 다시 숨이 턱턱 막히더니 단거리 달리기를 한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미 코로나가 빠르게 진행되어 죽음이 코앞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눈앞이 핑핑 돌아 앞이 잘 안 보이고 덜덜 떨리는 양손은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911에 전화해 앰뷸런스를 불렀다.


5분 내로 도착한 앰뷸런스 안에서 이것저것 확인해본 결과 나온 진단은 공황발작이었다. 산소포화도도 혈압도 지극히 정상이었고, 숨을 쉬기 힘들고 어지럽던 것도 이내 가라앉았다. 


그 후 온라인 방문으로 정신과 상담도 받고 약도 먹고 운동도 하며 많이 좋아졌지만, 한번 시작한 공황장애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고 잠을 잘 자고 마음이 평온해도 찾아오는 증상을 다스리며 하루하루 버티는 심정으로 지냈다.


한때 일하며 매일 스트레스와 압박이 심했을 때도 겪어보지 않은 공황발작이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생기다니 참으로 억울하고 속상하다. 다시 공황이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병이 송두리째 바꿔놓은 내 일상과 삶을 한탄하는 마음도 지울 수가 없다. 이제는 지하철을 타는 것도, 어느 공간 안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도, 술을 많이 마시거나 단 것을 많이 먹는 것도 두렵고,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은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2020년은 내게 공황장애라는 숙제를 툭 던져주고 지나간다.


TV에서 김구라, 정형돈, 이상민, 기안 84님 등 수많은 연예인들이 공황장애 증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 심각성을 1도 깨닫지 못했다. 아니 당시에는 나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직접 겪어보고 나니 그때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고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공황 증상 때문에 입원까지 했다던 김구라 님의 경험이 내 피부에 와 닿던 순간이었다. 아, 이런 상황일 때 입원을 하는 거구나 하는 정도의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다. 너무너무 공포스러워서 차라리 죽어서 이 고통을 끝내고 싶은 심정이라,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이것만큼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그야말로 없던 인간애도 솟아나게 하는 경험이다. 


이제 밖에 나갔다 와서 숨이 막혀도 코로나가 아니라 마스크 때문이란 걸 잘 알고 있는데도 공황발작 증상은 수시로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다. 약도 잘 듣는 것 같지 않아 운동과 다른 방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하필 이런 게 올해 찾아와서 한없이 절망적이고 속상하다가도,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올 한 해가 지나가는 것에 감사하고 올해 있었던 좋았던 일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처음 공황발작이 왔을 때 한번 왔다 가는 건 줄 알았는데 여러 번 맥락도 없이 다시 찾아온 걸 보고 그 심각성을 다시금 받아들였다. 찾아보니 정신질환이나 공황장애 병력이 없던 사람들도 올해 우울증이나 공황발작을 처음으로 겪은 사람들 수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공황발작(패닉 어택)과 코로나 바이러스 증상이 비슷한 게 많아서 더 그렇다고 한다. 


그러니 온라인으로 정신과 상담 약속을 잡는데 리뷰가 안 좋은 곳들까지 예약이 몇 달치나 꽉 차 있던 게 새삼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인종 나이 불문 다 같이 힘들었던 한 해가 아닌가. 그럼에도 무탈하게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올해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다른 많은 불치병들이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물론 더 고통이 심하겠지만, 살면서 꼬매도 보고 데어도 보고 교통사고, 허리 디스크, 맹장수술 등 다양한 통증을 겪어본 입장에서 이보다 더 공포스러운 건 없었다. 이걸 훨씬 더 어린 나이부터 겪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처음엔 속상했지만 이제는 그나마 이 병을 모르고 30대 후반까지 살아온 게 감사한 일이라 여기려고 한다. 언젠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사주를 보면 늘 말년이 제일 풍요롭고 행복하단 얘기를 들었다. 그 좋다는 말년을 어떻게든 보기 위해 우울증도 공황장애도 다 이겨내고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으리라고 다짐 또 다짐하며 매일을 산다. 살아서 버티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팬데믹도 끝나고 다시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공황장애를 겪는 분들 파이팅. 

이겨낼 수 있는 거라고 하니 저도 어떻게든 극복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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